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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우리에게는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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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과 저주를 선택할 자유의지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히브리서 6장 7절 ~ 10절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2020년 한 해,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심각성에 노출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역경을 지나가는 동안 끊임없이 말씀과 기도를 통해 ‘희망’을 꿈꾸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노라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희망’은 앞일에 대하여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의 장래에 희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을 기대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약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저자가 밝혀지지 않은 히브리서는 유대교로부터 개종한 유대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저자 또한 개종한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해 구약을 재해석하여 복음의 완전성과 절대성을 일깨우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저자는 핍박으로 인해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성도들이 배교의 유혹을 이기도록 믿음을 북돋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신앙은 작은 난관에도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A.D.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이 다가오고 있는 박해의 시대를 살고 있는 메시아닉 쥬들에게 어떠한 절망의 상황에서도 처음 믿은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세상에서 좋은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믿음을 지키는 자들에게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약속된 “보다 더 좋은 것”이 우리에게도 약속되었어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1. 복과 저주를 선택할 자유의지
신명기 28장은 1~14절까지는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복을, 15~68절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받을 저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복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심을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께 저주받는 자녀들을 바라보셔야만 하는 고통을 안겨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결국 저주 가운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자녀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죄를 사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다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음을 믿으면 저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복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삶을 살기로 매 순간마다 결단하는 자녀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멘.   
 
본문의 6~7절에서도 복을 받은 땅과 저주를 받은 땅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때를 따라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좋은 땅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땅이요, 그 땅에서는 수고한 농부들에게 합당한 채소들을 많이 산출합니다. 반면에 똑같은 비를 흡수해도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땅은 저주받은 땅입니다. 농사를 망친 농부는 그 땅의 가시와 엉겅퀴를 불로 태워서 다음 농사를 위한 거름을 준비합니다. 이 당연한 말씀을 한 까닭이 4~6절에 있습니다. “한번 비췸을 받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죄를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진리가 아무에게나 다 깨달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배움이 많은 사람들도 말씀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고 합니다. 반면 배움이 전혀 없는 사람이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은혜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구원의 진리를 듣고 깨달아져서 회개하는 것은 영적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빛을 발견하는 체험인 것입니다.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었다”는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과 같은 제2의 은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들을 체험하는 신앙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았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알 수조차 없는 하늘의 비밀들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즉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 죽은 자의 부활과 천국의 기쁜 일들, 심판과 지옥의 두려운 일들에 대해 믿게 된 것을 뜻합니다. 완전히 새 피조물이 되었음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한 신앙입니다. 이런 영적 세계는 물질세계인 3차원에서는 도저히 알 수도 체험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체험할 수 있으며, 분별할 수 있습니다.
 
“타락한 자들”은 이런 영적은혜를 체험한 신앙에서 떨어져 나가 진리를 배반한 자들 즉 배교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으며 드러내 놓고 욕을 보이는 배교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시와 엉겅퀴를 낸 땅에 농부가 불을 지르듯이, 마지막 날에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던져질 저주받은 운명이 될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세례를 받은 후의 신앙여정에는 많은 도전과 공격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 신앙을 저버리고 나서 회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유신론적 실존주의자인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S, A. Kierkegaard)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저서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요, 그 ‘절망’은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처럼 비참한 절망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상실되고 단절되는 원인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이 좋아 보이고, 쉬워 보이고, 빨라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내게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불순종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탐욕입니다. 대신에 세상이 주는 복을 외면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땅이 비를 흡수해 좋은 채소를 산출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선택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세상에서 잘 사는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라면, 물질을 지으실 때마다 “좋았더라”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너희로 부요케 하려함이라 말씀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물질로 잘 사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가장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누리며 나누며 잘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히브리서 저자는 세상 복보다 더 좋은 복을 주실 하나님에 대해 말을 합니다. 9절의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입니다. 자녀가 좋은 것을 소유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모든 부모가 본성적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친아빠이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구원을 받지 못한 자녀는 하나님의 큰 아픔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구원의 은총을 입고 사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구원에 속한 것’이라는 원어 ‘에코메나 소테리아’는 ‘구원에 수반하는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에 수반하는 열매들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인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메시아닉 쥬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고 있음을 확신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사랑의 수고로 성도들을 섬겼고 또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아웃을 선하게 섬기며 박해를 견디는 삶으로 실천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박해자들은 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절제하며 희생하는 삶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롭고 선한 행위들을 다 기억하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확신시키는 저자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은 것들을 예비해 두셨을지 말한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같은 위로로써 격려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기대를 초월해서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신 분이심을 믿읍시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의 첫사랑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한 것들은 세상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좋은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말씀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약속으로 주시는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좀 더 힘들고 피곤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다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 아니면 나도 한 성깔 있고, 나도 지기 싫어하고, 나도 이런 잘난 척 저런 잘난 척 다 할 수 있지만, 오직 주님 이름의 영광을 위해 자원하여지는 자가 되기로 마음 정합니다. 욕심이 가득한 이웃인 줄 알면서도 이번에도 한 번 더 손해 보기로 결단합니다. 자기 잘못을 감추기 위해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이웃에게 먼저 손 내밀고 내가 잘 못했다고 말합니다. 수 십 년 복음을 전해도 냉랭하고 무시하는 말로 받아치는 이웃을 축복하며 복음 전합니다.  


복음이 전혀 필요 없다는 이 땅 영혼들에게 생명이 들어갈 길이 안보여 낙심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날 이 땅 백성을 위해 다시 기도자리에 앉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침 뱉음 당하고, 뺨 맞고, 머리를 맞고, 눈 흘김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한 번 더 바보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선한 행위요,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온 삶을 다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를 위해 손해를 당한 것을 다 기억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이 좋은 것들을 구원의 은총으로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좋은 것들을 많이 받으시고 누리고 나누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법을 지키며 부지런하게 살아도 잘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부지런히 살면 잘 살 수 있는 것이 세상 법칙입니다. 영적 세계에서도 성실하게 법을 지키며 살면 더 좋은 것을 누리는 영적 법칙이 있습니다. 그 영적 법칙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선택하고, 이웃을 위해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어떤 박해를 받더라도 변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행한 모든 산한 일들을 다 기억하시고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세상의 금은보화 명예와 부귀를 누리는 많은 날들이 좋다한들, 하나님 나라 문지기로 사는 하루보다 못하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시 84:10)저와 여러분도 이와 같은 고백을 하며 감사와 행복으로 사는 삶이기를 축복합니다. 

나그네와 같은 인생사는 동안 겪게 되는 많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항상 있습니다. 지치고, 불편하고, 마음 상하고, 억울한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누구도 내 마음 깊은 곳의 고독과 아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내 깊은 아픔과 상처를 다 치료하시고 위로를 해 주십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어둠의 죄들을 다 해결해 주시고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을 주십니다. 하늘 평안이 어떤 것인지 그 기쁨의 맛을 보게 해 주십니다. 지극히 작은 우리의 선행을 다 기억하시고는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로 되갚아 주십니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어찌 다 말로나 글로 표현 할 수 있겠는지요?

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해 주시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시48:14)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선택권으로 항상 하나님을 선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순종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설영의 열매 맞으며 작은 예수의 삶을 살도록 애쓰시기를 축복합니다. 결코 주님을 버리고 뒤돌아서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더 좋은 것들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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