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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나의 목자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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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하게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완전한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

선한 목자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시편 23편 1절 ~ 3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편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편입니다. 다윗의 시인 이 시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신뢰와 사랑의 고백을 듣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부족함이 전혀 없도록 채워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주를 신뢰하고 따르는 삶을 살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던 다윗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다윗과 같은 은혜를 입으시기를 축복합니다.

1. 극진하게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
베들레헴 유다지파 이새의 막내아들이었던 다윗은 어린 목동에서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으로의 큰 격변을 이룬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표현한 것은 목자로서의 다윗의 체험적 통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목동이 통일 왕국을 세우고 최고의 성군이 되기까지의 그의 삶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파란만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보다 더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인생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는 것만이 해결책임을 다윗은 자신의 생애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이 바로 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그의 인생의 격변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다윗은 하나님을 깊이깊이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호칭했는데, 이는 하나님과 자기는 언약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확신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노예 생활에 지친 백성들을 출애굽 시킬 모세에게 직접 계시하신 성호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대화하시고 언약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입니다. 그 언약의 하나님이 지금 자신도 언약을 맺고 계심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조상들의 이름을 불러 주셨고, 지금은 자기의 이름을 불러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자신이 절대 의존하며 사랑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누군가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도와주는 분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늘의 하나님이 자기를 이렇게 대해주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고 확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목동이었던 다윗은 양과 목자 사이의 절대적 의존관계처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맺었습니다. 목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목자 가까이에 있고, 그 음성을 따라가는 양은 모든 것을 목자가 책임져 줍니다. 그러나 목자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가고, 자기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양은 길을 잃고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가거나 독풀을 뜯어먹고 탈이 나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 때문에 양은 목자를 믿고 착실히 따라 다니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목동이었던 다윗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다윗이 목동이었을 때에 양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양들을 만족하게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가 극진히 돌보아 주었던 양들과 자신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도 자기를 극진히 돌봐주시는 목자이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얼마나 부러운 인생입니까? 그가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어서 부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맺고 돌봄을 받았던 사람이기에 부러운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극진한 돌보심을 받는 양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완전한 만족을 주시는 하나님
좋은 목자는 양들을 푸른 풀밭에 누이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다윗이 시를 쓴 곳 팔레스틴은 중동에 위치해 있습니다. 삼천 년 전에 다윗이 목동일 때에의 팔레스틴에서는 푸른 풀밭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내는 게 목자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목자가 애써서 찾아낸 풀밭으로 인도된 양들은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거 다 먹고 나면 어디로 가서 먹을 곳을 또 찾아야 하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이미 목자가 여기서 다 뜯어 먹고 나면 어디로 가서 먹어야 할지 정탐을 해 놓기 때문입니다. 양들이 풀을 먹고 있는 동안 어디에 좋은 물이 있는 지를 찾아내는 것도 목자가 다 알아서 합니다.

양들은 흐르는 시냇물은 먹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수풀 사이에서 토끼가 나타나기만 해도 수천 마리의 양들이 혼비백산을 하고 도망을 칠 정도로 겁이 많기 때문에 흐르는 물소리가 두려워서 시냇가로 다가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또 온 몸을 털로 덮고 있는 양들에게 물이 닿으면 털이 물을 흡수해서 무거워지기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거나 쓰러진다고 합니다. 넘어지거나 쓰러진 양은 혼자서는 일어날 능력도 없어서 곧바로 발라당 뒤집어져 버둥거리다가 한 나절도 지나기 전에 심장이 멈춰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반드시 목자가 가서 일으켜 줘야만 다시 일어나 살 수 있는 것이 양의 모습입니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떼를 지어 목동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자립심도 없고, 강단도 없고, 뒷심도 없는 양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우리와 같은지요. 

주님은 우리가 이런 양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아시고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이 원하는 대로 양들의 평안을 위해서 다 섬겨 줍니다. 결국 목자가 떠다 바치는 물을 방해 없이 먹은 양들은 비로소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실컷 먹지 못했거나, 목이 마르면, 즉 만족스럽지 않으면 절대로 눕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만족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 앞에서 편안히 누운 양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던 목자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의 모습이 꼭 만족스러운 양과 같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 완전한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이러한 완전한 만족을 느끼고 살고 계십니까?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는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을 완전하게 만족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셨는지요? "참으로 좋은 일이 있다고 금방 기뻐할 일이 아니고, 나쁜 일이 있다고 금방 절망할 일도 아니야.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는 거야.“ 이것이 인간만사 새옹지마를 살고 있는 인생들의 고백이 아니겠는지요? 그리스도인의 인생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늘 형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환난이나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야 하는 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의 다윗 역시 많은 사건들 속에서 새옹지마와 같은 그러한 생을 살았습니다.

미소년이던 다윗이 어느 날 양을 치던 현장에서 사무엘 선지자 앞으로 불려나와 사울의 뒤를 이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장에 아버지 심부름하러 갔다가 골리앗을 쳐 죽이고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빈들과, 야산과 동굴로 숨어 다니면서 사울 왕에게 쫓기는 도망자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위를 주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한가로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어느 날 다윗은 충성된 신하 우리야의 아내를 보고 한눈에 반해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그 간음을 은폐 시키려고 살인교사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범죄로 인해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고 엄히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죄 때문에 간음으로 잉태된 아기가 죽임을 당합니다. 

다윗은 갓 태어난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자식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끔찍한 일을 전해 들어야 했으며, 심지어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도모하는 바람에 야반도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성을 탈환하고 왕위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입었습니다. 실로 다윗의 생애는 고난과 고난의 연속이었고 그러한 순간순간이 다윗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 즉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때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새옹지마와 같은 생애를 살았던 다윗이 노년에 지은 시가 시편 23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의 모든 만족은 새옹지마일 뿐입니다. 어제는 만족스러웠지만, 오늘 보니까 영 신통치 않습니다. 오늘은 매우 속이 상하고 고통스럽지만, 몇 년 후에는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말로 세상에서의 모든 일들은 새옹지마일 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히 완전한 만족을 주는 목자가 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3. 선한 목자로 찾아오시는 하나님
다윗은 도둑이 양들을 훔치러 오고, 사나운 짐승들이 양들을 움키러 올 때에 목숨 걸고 양들을 지켜주었던 선한 목자였습니다. 하물며 사람인 다윗도 이렇게 양들을 돌보았는데, 선한 목자 되시는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더 확실하게 돌보시며 지켜주시겠습니까? 아멘!!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선한 목자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려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양처럼 연약할 때였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을 때였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의인도 선인도 아닌 죄인을 사랑하셨기에 주님은 기꺼이 죽음으로 사랑의 길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스스로를 ‘선한 목자’로 밝히신 것입니다. <믿음>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우리의 완전한 만족이 있음을 알고, 믿고, 따라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의 돈으로 만족하는 것, 명예로 만족하는 것, 권세로 만족하는 것, 인기로 만족하는 것, 쾌락으로 만족하는 것, 이 모든 것들도 일시적인 만족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만족, 완전한 만족은 하나님을 목자로 삼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삼지 않은 사람들 중에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엽기적 일탈을 자행하는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계속 있어왔습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광기에 희생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재적 예술가라고 자기를 평가한 네로황제는 자기의 예술적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서 새로운 로마시 건설을 꿈꾸며 로마 구도시에 불을 질렀습니다. 로마시가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트로이의 몰락을 하프로 연주하며 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네로는 불탄 도시를 밀어버리고 황금궁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만족을 위한 연주도, 노래도, 새로운 도시의 건설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종교적 박해도 그를 만족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그의 예술적 엽기 행동은 국가에 중대한 반란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자 경악한 원로원은 네로를 폐위시키고 사형을 결정하는 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는 '세상은 나와 더불어 내 안의 위대한 예술가를 잃는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고 합니다.

네로가 제거된 후 황금궁전은 파괴되고 자갈로 메워졌습니다. 네로의 뒤를 이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네로황금궁전의 인공 호수 위에 콜로세움을 건설하였고, 트라야누스 황제는 옛 궁전의 폐허 위에 트라야누스의 목욕탕을 건설하였습니다. 세상에서의 권세와 명예와 부를 통해서 만족을 누리려던 사람들. 그들이 잠시 누렸던 만족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가운데서 수 없이 보고 듣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들이 되어 인생을 살다보니 자기 스스로 자기가 따라갈 목자들을 만들어 살게 된 것입니다. 명예와 부, 권세와 쾌락, 문화 등에서 자기의 목자를 찾으려 한 사람들의 결말은 멸망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면 할수록 바닷물을 마신 것과 같이 끝없는 갈증만 더해질 뿐이요, 만족이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이 누릴 수 있는 명예, 부, 권세, 쾌락, 지식과 지혜, 등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누렸던 솔로몬의 인생 결론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였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을 신뢰하고 따라간 파란만장 했던 인생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었도다”라는 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헛되고 헛된 물질에서 만족을 얻으려던 구습을 벗어버리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축복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영혼이 소생되고 의의 길로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을 신뢰하며 따라갔던 양들이 다윗 앞에서 보호받고 만족함을 얻고 누울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분 앞에 평안히 쉴 수 있게 해주시는 주님만을 신뢰하며 따라갑시다.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 선한 목자가 되어주신 예수님을 신뢰하며 따라갈 때에 우리 삶이 완전한 만족을 느낄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목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목자 가까이에 있고, 그의 음성을 따라가는 양은 모든 것을 목자가 책임져 줍니다. 오늘 다윗처럼 주님을 따라갑시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고백을 드리며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양식인 말씀을 먹고,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물인 성령을 마시고, 주님이 주시는 완전한 만족함을 얻고, 주님 앞에서 평안히 눕는 양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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