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을 만났을 때의 태도
▣ 사고의 관점을 달리하라
▣ 성숙을 위한 필요한 성분은 고난이다
로마서 5장 3절 ~ 6절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란은 피할 수 없습니다. 환란으로 인하여 오는 고통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환란과 풍파는 시시때때로 찾아옵니다. 우리 주위에만 보아도 설명할 수 없는 문제로 환란과 풍파를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이웃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란과 풍파를 만났을 때, 각자가 각기 다른 방법으로 헤쳐 나가기도 하고, 고통 속에서 좌절하는 사람과 그 고통을 극복하고 결국 승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부닥친 많은 문제들을 사람들이 경험하는 여러 삶과 방법이 있지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떠한 지혜를 갖기를 원하는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고난을 만났을 때의 태도
누구나 고난을 피해만 갈수 없습니다. 우리 앞에 어려움이 왔을 때, 우리의 태도에 따라 우리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도 있지만 최상의 길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는데, 힘들어하고 절망합니다. 그리고 분노하고 불평불만을 쏟아 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힘들어 불평불만을 하였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에 응답해야 합니다. 응답과 반응은 다릅니다. 반응은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지만, 응답은 우리의 의지가 담긴 믿음의 행동인 것입니다. 본능적 행동을 거부하고 믿음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의지적으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다가왔을 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체념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에 봉착되었을 때 반응하는 것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나에게 다가온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합니다.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어려움과 고통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이 있을 것을 믿음으로 믿고 기대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응답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 다니엘은 범사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응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환란 속에서 믿음으로 응답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고난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생활하면 우리의 사고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에게 닥친 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둘러싼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원망하고 불평을 하는 것으로는 길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과정에서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오자 모세를 향해 분노와 불평을 쏟아냈습니다. 길은 보이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길이 없습니까? 길은 반드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길을 내실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시각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믿음은 큰 그림을 보게 합니다. 상황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시각은 상황을 둘러싼 주변 모두를 보게 합니다. 우리 삶 속에 닥친 수많은 어려움에 떠밀려 다니지 말고, 오히려 나에게 닥친 고난을 통해 믿음의 시각으로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고의 관점을 달리하라
우리에게 고난이 다가왔을 때, 고난 자체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고난에 대한 관점을 바꿀 수 있습니다. 고난에 대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내가 무슨 죄가 많아 이러한 고난을 격어야 하지!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버리시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에 대해 성경적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고난과 시련을 부정적으로 다루지 않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합니다. 환난이 좋고 즐겁다는 것은 아닙니다. 환란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인내하며 연단 받는 가운데 마침내 이루어질 긍정적 결과를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그 환란을 통해 하나님의 연단 속에 들어가고, 연단이 끝났을 때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난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시편 119편 71절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았다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삶에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다 이해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체험하며 배운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제대로 습득되어 제대로 배운 말씀이 됩니다. 고난을 통과하지 않으면 삶이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의 진리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인간의 한계이자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 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늘 믿음으로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어떠한 고통과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인내하는 것이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이 하나님 원하시는 삶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죽으신 사건입니다. 예수께서 고통 가운데 계실 때 하나님은 아들의 고통을 경감시켜주지 않았습니다. 고통의 마지막 쓴 잔 한 방울까지 다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지고, 우리의 고통을 안고 고난의 한가운데 들어가심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가 강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근육은 우리 신체에 매우 중요합니다. 육체에만 근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영적 근육이 필요합니다. 고난을 통해 영적 근육이 강화되면 우리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영적 근육이 생기기를 원하십니다. 더 큰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이겨낼 힘을 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관점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와 동물원에 갔습니다. 사자 굴 앞을 지나갈 때, 크게 울부짖으며 어슬렁거리는 사자에 놀라서 그 남자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 있니?"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 사자가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철장도 함께 보고 있단다." 여러분은 사자를 보고 무서워하는 어린이의 믿음입니까? 아니면 철장을 보고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재판을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아서 패배한 사탄을 감금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양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누구나 불화살을 압니다. 인디언들의 불화살은 건물과 창고와 건초 더미 등에 불을 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전술의 의도는 적진에 불을 놓아 정신없게 함으로 방어를 소홀히 하게 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사탄은 우리가 정면적인 맹공격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하려고 불화살을 쏘면서 공격합니다. 우리가 불에 마음이 다 빼앗긴다면 공격하기에 쉬운 표적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잊지 마십시오.
방패는 든든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빗발치는 화살을 방패로 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께 똑바로 집중되었다면, 그 믿음이 아무리 작은 믿음일지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을 이겨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점의 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긍정적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숙을 위한 필요한 성분은 고난이다.
우리에게 고난이 왔을 때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나기보다는 믿음으로 경험해야 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경험해야 알 수 있습니다. 남의 고난에 대해 아무리 들어도 내가 겪는 것과는 다릅니다.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고난의 참관자이지 참여자는 아닙니다. 같은 고난을 경험해 본 자는 현재 고난을 겪고 있는 상대의 마음을 가슴으로 같이 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간접 경험 또는 자신의 얕은 지식으로 바라봅니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고통을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참으로 위험한 시각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머리로 주님을 믿는 믿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 믿음에 힘이 있을 까요? 생동감이 있을까요? 그러한 믿음으로 성경을 열심히 읽어도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습니다.
그러한 믿음은 가볍습니다. 기도도 가볍고, 묵상도 가볍습니다. 그러나 영혼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기도와 찬양은 다릅니다. 고통을 경험한 성도가 영혼의 밑바닥에서부터 부르는 찬송은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기도도 묵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도 고난의 깊이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고난의 밑바닥까지 경험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의 강도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꼭 저주만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만난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습니다.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빵은 절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끼니 문제로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 끼니를 위해 기도하는 간절함은 의미가 남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설교를 듣고 말씀을 읽고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말씀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지식에는 인식적 지식 즉 머리로 아는 지식이 있고, 직접 경험하여 얻은 경험적 지식이 있습니다. 경험적 지식은 고난을 통해 경험한 지식입니다. 이론적 지식이 아니라 실제적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에 대해 말하며 측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통해 그것을 경험했습니다.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십자가를 계속 말한 것은 십자가와 계속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 한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십자가를 깊이 경험할 수 없습니다. 고난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갔을 때 십자가를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경험적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로 나아갔을 때 우리 마음의 응어리기 풀리고, 아픔이 치유되고, 고통에 대한 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고통이 십자가와 만나면 다른 사건으로 변합니다. 십자가 없이 우리가 홀로 당하는 고통은 저주와 같지만, 십자가를 만나면 고통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영적 경험이 쌓일 때 우리의 믿음이 자랍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서 치열한 싸움을 하며 십자가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 우리의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십자가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믿음은 어떤 고난이 와도 십자가로 맞서고 고난에 응답을 하며 멋진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론적 하나님이 아닙니다. 실존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온 몸으로 경험하며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온 몸으로 만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고통을 당할 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더 가까이 다가오시며 우리를 더 깊이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와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맞섰을 때 고난은 축복이 됩니다. 고난 속에서 십자가를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 속에서 믿음으로 응답하여 승리하는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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