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수를 사랑하라
▣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하라
마태복음 5장 43절 ~ 48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신비 중에 신비(神祕, mystery)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신비인지요?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 아버지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는 생각할수록 아련하고, 아픈 기억으로 떠오르는 육체의 아버지입니다. 살아 계실 때에 좀 더 다정하게 잘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만 가득한 아버지입니다. 멋있던 아버지 모습도 많았었는데 생각나는 것마다 지치고 힘드셨던 모습만 떠올라서 늘 가슴 아립니다. 반면에 하늘 아버지는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든든해지는 아버지십니다. 근심 걱정 가득하다가도 하늘 아버지께 모든 문제를 말씀드리면 없던 힘과 용기가 생기게 해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바로 세상 근심걱정이 사라지게 하는 능력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자녀이므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유산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이 낳으신 자녀요, 그분의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사탄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가져온 환란 풍파를 물리칠 권세가 여러분에게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권세로 광야에서 시험하는 사탄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권세로 사탄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항상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아들로 사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방법은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환란 풍파를 물리치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씀들을 깊이 듣고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된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원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 37절부터 39절에서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질문에 대해 첫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최상급의 질과 양으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장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자기 몸을 사랑하듯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사랑도 자기 몸 사랑하듯, 이웃 사랑도 자기 몸 사랑하듯 하라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사람마다 자기 몸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하나님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한 예수님의 순종입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한 사랑 역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희생입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희생과 수치를 감당해야하는 사랑이 어찌 쉬울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주는 자가 사랑의 댓가를 치름으로써 그 진실의 속살을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포함해서 모든 이웃을 항상 진실하게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기에 머리 둘 곳도 없이 떠도는 삶을 살아가면서까지 병든 자, 귀신 들린 자, 가난한 자, 마음 상한 자, 배고픈 자들을 찾아가셔서 치료하시고,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웃은 철저히 예수님을 원수로 삼았고 배반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시기 위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되 하나님 사랑하듯 사랑하라는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거기에 더하여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사랑은 예수님의 교훈 중 최고의 교훈입니다. 당시의 유대 공동체에서는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히 여기도록 가르쳤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적어도 당한만큼은 갚아줘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할 만한 이웃만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고 보복하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 살지 않는 태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같은 개념으로 보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원수를 위해 십자가를 지라는 요구입니다. 자기 십자가 지고 예수님을 따라오는 자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요, 예수님의 형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사랑의 수준은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해주는 사랑”입니다.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마땅히 사랑해야 할 이웃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가 어찌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지요? 때로는 부모, 자녀, 형제, 부부 사이에서도 미움과 원망으로 등을 지고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는 도저히 되지 않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사람은 사랑하고, 미움 받을 만한 원수는 미워하는 게 보통 사람의 성정입니다. 그것을 다 아시는 예수께서는 성령을 보내 주셔서 원수를 사랑할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다 하시기에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고 그 사랑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해 주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은 늘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로 성령충만 받아야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성령의 능력으로 원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하는 하나님 자녀가 다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2.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저 하늘보다 높고 저 바다보다 깊다고 찬송합니다. 헤아릴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가 받은 하나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음도 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나누는 일에 있어서 몹시 서툴고 인색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늘 그랬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 사랑을 받기만 했지 나누고 전하는 일에는 너무 인색하고 서툴렀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께 사랑받아야 했고, 이방인은 다 미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사랑할 만한 사람끼리만 사랑하는 그들 모습이 세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당시의 “세리”라는 직업이 어떤 평가를 받았습니까? 도둑이요, 강도, 매국노, 죄인 중에 죄인이요, 이방인보다도 더럽게 여겨지던 자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끼리끼리만 사랑하는 그들을 세리와 동급의 죄인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이기적으로 계산하는 도둑들이 무슨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된 모습이겠습니까? 그렇게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에게 사랑의 넓이와 폭을 넓히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또 다른 종류의 편협한 모습에 대해서도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친한 사람들끼리만 인사하는 모습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독특한 낯가림이 있습니다. 일종의 선민사상 같은 것입니다. 자기들만 하나님께 선택받은 정결한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지배국가인 로마제국 역시 이방인일 뿐이라는 거리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제국 역시 유대인에 대한 통치권을 가진 자로서 그들을 무시하고 존중해주지 않았습니다. 피차일반으로 겉으로만 로마와 유대가 평화 공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유대인들의 태도가 하나님 자녀로서 합당하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로마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지요. 비록 로마제국이 자기들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억압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영혼들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로마인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야 할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자비와 긍휼을 공평하게 베푸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에게는 해가 비추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의 땅에는 비를 내려주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일상에서 항상 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죄를 짓지 않은 사람도 환란 풍파를 겪을 수 있고, 악인이 잘 먹고 장수하기도 합니다. 정직과 성실로 열심히 수고하고 애를 써도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렁설렁 대강대강 사는 것 같은데 크게 성공하고 명예를 얻는 사람도 많습니다. 착한 효자에게 복을 부신다고 약속하셨는데도 하는 일마다 망하는 효자도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한 의인인데도 최악의 고난을 당했습니다. 가인은 질투로 동생을 죽인 살인자지만, 에덴 동편에서 천수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그의 몸에서 예수만 나타내며 사역했던 바울 사도는 가장 많은 고난을 감당했고 참수를 당함으로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면 안 되지!’라고 우리가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때에 천하에 몹쓸 인간도, 천국에서 주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 것 같은 착한 사람도 하나님은 다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혼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한 사랑임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악인도 불의한 자도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기다리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그 자녀들도 행하기를 원하시기에 원수들을 사랑하는 데에 까지 사랑하는 마음을 확장시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의 역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게 이해가 되지 않고, 옳지 않은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고 해서 하나님이 선하심을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이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그 모든 일들의 결말을 보여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긴 기다림의 시간들을 온전히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가 형통하고 장수하며 행복할 때에 시기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해를 비추시고,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비를 내려주시듯이 자녀인 우리도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을 구해야 하겠습니다.우리를 사랑하는 자도 사랑하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원수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와 내 마음을 괴롭게 하는 사람에게도 문안하며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야 할 온전한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자녀 된 모습은 사랑하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자녀들은 원수를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해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친한 이웃과만 문안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어색하고 껄끄러운 사람에게도 문안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태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은 온전한 자녀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는 문제와 관련된 명령입니다. 성도의 ‘온전함’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이웃을 사랑하고 축복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에게서 가장 온전한 성품이 나타날 때는 원수를 사랑함으로 위하여 기도해줄 때입니다.
원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원수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원수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듯이, 내 몸 사랑하듯이 사랑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원수 사랑을 십자가에서 실천하신 예수님의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으로 높여주신 하나님이심을 깊이 생각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성경 >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0) | 2021.02.20 |
---|---|
정체성 (0) | 2021.02.14 |
고난을 뛰어 넘는 믿음 (0) | 2021.01.30 |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을 바라봅시다 (0) | 2021.01.23 |
우리의 도움이며 방패이신 하나님 (0) | 2021.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