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복을 위한 진실한 회개의 촉구
▣ 백성들을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는 하나님
호세아 6장 1절 ~ 6절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말기 여로보암 2세 치세에 선지자로서 활동을 했습니다. 호세아의 이름은 “예수”의 뜻과 마찬가지로 ‘구원’이라는 의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부르심은 상식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란한 여자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이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으라는 이상한 명령에 그는 순종했습니다. 아내의 간음으로 상처를 받은 영혼이 된 호세아는 백성들의 우상숭배가 얼마나 하나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뼛속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을 약속했으나 계속해서 배반하는 아내로 인한 호세아의 고통은 하나님의 고통이었습니다.
호세아서의 주제는 심판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깊은 우상 숭배에 빠진 북 왕국을 책망하시면서,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과 멸망을 보내겠다고 강력히 경고하셨습니다.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의 결국은 어떻게 된다고 하셨는지요? 결론은 멸망이요, 버림당함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서 우상 숭배와 말씀을 버리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불순종한다면, 멸망과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고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짜 마음이 아닙니다. 그들을 용서하시고 다시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생각을 계속 계속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재앙이 아니라 장래와 희망을 주시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계속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생각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오늘 호세아 6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장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가 새롭게 체험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1. 회복을 위한 진실한 회개의 촉구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음란한 고멜과 결혼했지만 고멜의 음란은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부부의 서약을 맺고 결혼했지만, 고멜은 계속 호세아를 배반했습니다. 고멜의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배반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우상숭배는 배고픈 사자처럼 그들을 찢어 놓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6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셨으나 다시 낫게 하실 것을 전했습니다.
호세아는 음란한 아내를 위해 값을 치루고 데려와서 계속 남편과 아내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신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호세아는 음란한 백성들을 데려와서 다시 사랑해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자처럼 우리를 찢으셨을지라도 우리를 고쳐 주시고 다시 사랑해 주실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회개란 나 중심적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 삶으로의 변화를 뜻합니다. 나 중심으로 살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 후, 이후로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회복의 은혜가 입합니다.
“살리신다”는 “revive, 부활”, “일으키신다”는 “restore, 회복”, “살리라”는 “live”입니다. 죄인이 의인으로 다시 살아나는 새 신분을 주시고, 심판의 고통으로 쓰러진 자를 일으키셔서 평안으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 앞에서, 즉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은 죄인이었던 자가 죄 없는 의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회개는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살게 해 줍니다. 또한 이틀 후에 살리시고 삼일 후에 일으키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회복이 아주 신속하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말입니다.
호세아는 진정한 회개와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잘 알자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배반했던 모습이 어떤 것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죄가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방법이 말씀과 기도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다가 말씀 속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이것이 죄였어?’하고 놀라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때 진정어린 회개가 터지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말씀 묵상, 자신의 삶에 적용, 성령께 의지하는 기도로 이루어집니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것처럼 회개를 드리는 자에게 회복이 임함이 정해진 이치임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죄를 깨달음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잘못했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어”하고 깨닫는 것은 후회, 뉘우침, 회한입니다. 후회와 뉘우침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아가지도 못합니다.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은 유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했으나, 회개하지 않은 채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주와 함께 사는 은총을 얻지 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했기에 스스로 죽은 것입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는 삶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자기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했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기 때문에 자기들이 믿고 싶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백성들을 향해 진심이었지만, 백성들은 하나님께 진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보다 이웃나라가 신을 섬기는 방식을 더 좋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곧 그들의 우상숭배였습니다.
호세아는 그런 백성들에게 진실한 회개를 촉구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도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우상이 없는지 깊이 헤아리고, 다 소멸시켜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때 원죄들은 단 번에 없애주셨지만, 날마다 짓는 범죄들은 매번 회개해야 합니다. 매일 저녁 잠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그날의 죄들을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과 함께 침상에 눕는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매일 밤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를 통해 거룩의 회복이 여러분 모두의 소유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백성들을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는 하나님
1~3절의 회개 촉구에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가 4절 이후부터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에브라임아 유다야 너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사랑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과 같구나. 너희 입술에는 허무한 말잔치만 가득할 뿐, 너희 태도에는 진실한 사랑이 없구나. 이런 탄식을 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을 심으면, 30배, 60배, 100배의 진심을 거둡니다. 반대로 거짓 사랑, 입술로만 떠드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멸시하면 어떻게 반응하시겠는지요? 오늘 5절의 말씀을 보면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과 회복하자, 하나님 앞에서 살자 외쳤지만, 안개와 같은 헛된 입술의 울림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그 사랑은 몹시 허무하고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쉽게 반역을 했습니다. 마치 고멜이 호세아 선지자의 사랑을 무시하고 가출하여 음란한 생활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업신여긴 사람에게는 심판의 말씀이 임합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망령됨에 대하여 심판으로 책망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정오의 빛과 같은 공의로 심판하실 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 마음은 아프고 괴롭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진실함이 없는 백성들의 사랑과 제사를 거절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애, 헤세드, Love”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잘 못된 지식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들에게는 ‘인애’가 없습니다. “인애, 헤세드”는 ‘어진 마음으로 사랑함’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알고 믿는다면 그 마음과 생각에 항상 하나님을 사랑함이 있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다. 이런 진실한 “인애”가 있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다”라고 하신 말씀은 형식적인 예배를 원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웅장한 예배, 세련된 예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두 세 사람이 모였을지라도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예배가 기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두바이순복음교회의 예배가 인애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번제 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노라’는 말씀은 물질을 바치는 행위로 예배의 의무를 다했다는 주장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번제에 드릴 제물을 잘 드렸으니 그것으로 예배 잘 드렸다는 착각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물질이 많고 적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십니다. 외모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마음 중심으로부터 인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잠시 세상에 사는 동안 잘 사용하도록 맡겨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많이 드린다고 생색내고 자랑스러워할 일이 전혀 없습니다. 또 지극히 적은 것을 드릴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드리는 진실한 마음과 손길에 에 축사하시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도로 안겨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재물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과 하나님을 힘써 아는 것이 기쁘다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여호와께 징계 받는 백성들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들을 용서하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회개에는 하나님께 진실함과 사랑함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회복대신에 그들을 공의로 다스리시며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을 징계로 심판하심은 하나님의 본래 마음이 아닙니다.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한대로 그들에게 장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징계 받는 백성들이 회개하며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어김없이 밝아오는 새벽빛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 같이 회개한 자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영원토록 신실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진실한 회개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과 하나님을 힘써 아는 것을 기뻐하시고 원하십니다. 자비와 긍휼을 구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고자 하는 열심을 가진 자에게 말씀을 묵상하고, 무시로 기도하도록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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