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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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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 하나님 나라에 심겨진 겨자씨

 

마가복음 4장 30절 ~ 32절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지금의 날들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생각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어려움들이 너무 고달픈 것 같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도 지나가리라!’하며 견디시는 동안 점점 더 내공이 쌓여 인생 승리자가 되어 갑니다. 주님 안에서 감사로 기도하시면서 지금의 모든 어려움을 잘 이겨내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전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우리 위해 일하고 계심을 믿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고 계셨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더 온전하게 이루어져 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이미 우리 안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정통하고 율법도 잘 지키는 지도자로서 자긍심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가르치는 율법사일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로마제국보다 더 강력한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에 정치, 경제, 신앙적 자유를 가져올 권세 있는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세상 기준인 정의와 힘의 논리로 세워지는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나라가 아니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는 나라요, 너희 안에 있는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 중에서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했지만,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은 회개할 것이 없었습니다. 회개하지도 않고 복음을 믿지도 않았기에 하나님 나라를 알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미 임한 하늘나라를 알지 못하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전파하도록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를 알지도 못한 채 살고 있다가 교회로 인도해 준 사람들 덕분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 땅의 교회들과 우리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하나님 나라의 전파입니다. 이 땅에 사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아라비아반도 걸프 중동의 조상들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들입니다. 이사야 21장에 보면, 이사야가 이방나라들에 대한 경고를 신탁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 11절부터 아라비아에 대한 경고에 두마, 드단, 데마, 게달 등의 지명이 등장합니다. 이 지명들은 이스마엘의 12 아들들의 이름과 정착지로 창세기 25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장례를 치룬 후에 이삭과 헤어진 이스마엘이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것입니다. 이들이 알라의 계시를 받고 이슬람교를 창시했다는 무함마드의 조상입니다. 걸프 중동국가, 아라비아반도 국가로 불리는 이들을 이슬람 종주국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지 못한 이 이스마엘의 후손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했음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곳에 교회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대한민국에 전해 준 선교사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진 복음의 빚을 이스마엘 후손들에게 갚아야 합니다. 그 사명을 위해 부르심 받은 사람들이 지금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마엘 후손들에게 전파해야 할 사명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을 아름답게 이루어 드리는 하나님의 나라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2. 하나님 나라에 심겨진 겨자씨
교회의 역사는 지극히 작은 씨앗 한 알이 심겨 많은 씨앗을 맺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 작은 씨앗은 부르심 받은 작은 사명자의 “믿음”입니다. 부르심에 순종한 사명자에게는 작은 믿음의 씨앗이 땅을 뚫고 올라와 새싹을 낼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없고, 귀에 들리는 것 없는 시간들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명자안에 있는 작은 믿음의 씨앗을 하나님의 텃밭에 심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심겨진 씨앗이 싹을 내고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들이 교회를 위해 또 필요합니다. 새싹을 위해 잡초를 뽑아주고, 적당한 물과 비료를 주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 일을 하다가도 이 새싹이 잘 자랄 것 같지 않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람의 생각입니다. 


본문에서 마가는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많은 씨앗들 중에 겨자씨 한 알을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신 예수님의 의중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을 헤아리기 위해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여러 종류의 겨자가 있는 데, 겨자마다 보통 60~300cm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봄이 오면 겨자는 갈릴리 호수 주변과 언덕들을 노란 꽃으로 물들여 마치 제주도의 유채꽃을 연상하는 군락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 씨앗은 직경이 1~2mm 정도로 작고, 다 자란 후에는 그 줄기의 굵기 또한 매우 굵어서 새들이 앉아서 쉬기도 하며, 그 씨앗은 가을에 새들이 즐겨 먹는 먹이라고 합니다. 2M 이상으로 자라 거대한 군집을 이룬 야생 겨자 풀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들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늘 볼 수 있었던 이런 장면을 제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의 겨자는 종려나무처럼 크게 자라지 않으며, 씨앗 중에 가장 작은 씨앗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장 흔한 야생초인 겨자를 비유로 가장 평범한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에 비유하신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겨자씨 비유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 자라서 엄청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살 수 있게 된다고 상상하는 것은 다분히 사람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땅과 하늘이 다른 것 같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땅에 심겨진 한 알의 겨자씨”라고 하셨습니다. 야생에서 군집해 자라고 있는 겨자씨가 아니라, 선택되어 심기는 한 알의 겨자씨를 심으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기에게 익숙한 삶의 방식대로 무리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하나님 텃밭에 심어주시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신이 지극히 작은 자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고백하는 한 사람, 하나님께 자기를 전적으로 맡기는 그 사람이 모든 씨보다 작은 씨요, 선택된 겨자씨 한 알입니다. 즉, 물리적으로 가장 작은 사람을 심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겸손하게 자기를 내려놓으며 자발적으로 작음을 선택하는 사람을 심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기로 결단한 작은 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심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홀로 하나님께 심겨진 겨자씨 같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이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모든 풀보다 더 커지고 큰 가지를 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해, 또 한 해를 지나며 겨자나무에서 떨어져 심긴 다른 겨자씨들과 함께 큰 가지로 자라게 하시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깃들게 하셨습니다. 겨자 가지에 온갖 아름다운 새들이 와서 둥지를 짓고 살게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왜,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크게 자란다고 하셨을까요?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생각해 보면 그것들은 피곤합니다. 그 새들에게는 피곤한 날개를 쉴 곳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는 인생이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와 같이 피곤한 인생이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와 같이 피곤한 인생들에게 쉼터를 마련한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피곤하고 지친 사람들이 와서 주님의 품안에서 안식하는 곳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의인보다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피곤한 사람들을 위하는 것, 이것이 세상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큰 구별성입니다. 세상에서는 화려한 곳, 뛰어난 곳, 멋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찾아다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곳, 병든 곳, 슬픈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갑니다. 그들에게 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작은 겨자씨 한 알을 심는 심정으로 작은 겨자씨 같은 사람을 찾아가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일 하시는 것을 바라보며 자라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을 심으시는 하나님에 의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하여 심겨진 작은 겨자씨인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교회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모두 다 가장 작은 겨자씨 한 알로 하나님 나라에 심긴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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