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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선택하시는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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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연약한 자들을 선택하십니다.

영원한 사랑으로 인해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이 맺은 약속에 신실하시기에 선택하십니다.  

 

신명기 7장 6절 ~ 8절
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세상의 속설이 있습니다. 이 말은 거의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맞는 말은 아닌 이유는 사람에게 변화될 때가 있음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안에서 내가 죽고 주님이 사시는 그 때가 사람이 변하는 때입니다. 예수 안에서 변화된 사람들은 존재가 달라집니다. 영원히 죽을 죄인이 용서 받은 의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존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셔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물론 사람도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선택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에는 가장 좋은 것을 골라야 잘 선택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가치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르고 골라서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불만 불평이 생깁니다. 왜일까요?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도 지상 만민 중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기준으로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을 고르셨는지 살펴보기 원합니다.

1. 가장 연약한 자들을 선택하십니다.
돈 많고 신분 높은 사람을 고르는 것이 세상 사람의 선택 기준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돈 없고 신분도 낮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셔서 자기백성 삼으셨습니다. 고르고 골라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세상의 선택과는 질적으로 다른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근동지방에도 괜찮은 인재들이 꽤 있었습니다. 욥과 욥의 친구들과 같은 부자에다가 지혜로운 자들이 있었습니다. 멜기세덱과 같은 훌륭한 왕이요,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색의 아들 아브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직업도 훌륭하지 못한 데다가 75세가 되도록 자식도 하나 없는 못난이를 선택하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도 갈릴리 촌 동네 어부와 세리들을 선택하셨습니다. 돈 있고 신분 높은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개척도 그렇습니다. 고린도는 당대 최고의 철학의 도시라서 수사학과 변증학이 발달했습니다. 철학적 사고와 합리적인 논리가 아니면 인정을 받지 못하는 교육과 철학의 도시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 사도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미련한 것”라고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우리 고린도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런 말을 믿으라고 하느냐?” 이런 반응을 한 겁니다.

그런데 고린도 사람들 가운데 예수 믿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후서가 생긴 겁니다. 그러면 누가 고린도교회에 들어왔습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돈 없고 신분이 낮은 사람이 고린도 교인이 되었다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못나고 미련한 사람들을 택해서 잘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은 민족을 택해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시지 않으면 짓밟히고 고통당하며 종노릇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선택해 주신 것도 똑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그러니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와 소망이 됩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마다 못난 모습 그대로 죄지은 모습 그대로 나아올 수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하고 못난 모습을 싫어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받아 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나고 힘 있고 대단한 사람들을 선택해서 자기 유익을 채우려 합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고 못나고 미련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와 이웃을 유익되게 하십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이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영원한 사랑으로 인해 선택하십니다.
다음으로 신명기 7장 8절 상반절은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택했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해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임을 믿어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에는 온통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노래로 가득합니다. 그 사랑의 부르심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사랑으로 반응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불행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부르신 사랑노래도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전한 사랑 노래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열렬한 사랑으로 가장 작은 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그 증거를 보여 주세요’ 하며 대드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인류를 사랑하시되 영원히 사랑하셨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되 끝까지 배반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절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영원한 그분의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수 천 년을 지나도 이기적 욕심에만 눈이 먼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하기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3. 하나님이 맺은 약속에 신실하시기에 선택하십니다.  
신실(信實, faithful)은 믿음직하고 성실한 하나님의 성품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지요. 본문 7장 8절하반절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에 대해 말씀합니다. 출애굽의 근본 원인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연대를 성경학자들은 주전 2000년대로 봅니다. 출애굽은 주전 1400년대입니다. 즉, 600년 전에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들을 그 후손에게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이후로 약 4000년이 지난 오늘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너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창 12:3)” 약속하신 언약에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4000년이 지난 지금도 작고 연약한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를 초월하여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을 인해 우리를 선택하신다고 히브리서 1장 1~2절에서 증거 합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심도, 이스라엘을 선택하심도, 우리를 선택하심도 천하 만민을 위함입니다. 시대는 달라도 하나님께서 힘없고 신분도 낮은 못난이들을 선택하시는 이유는 천하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선한 목적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를 헤아리고 그분의 선택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이 긍휼과, 사랑과, 축복의 맹세를 우리도 전하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은혜로 선택받고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작은 자를 통하여 하늘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시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사 약속하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또 하나님은 작고 소외된 자들을 선택하셔서 백성 삼으시고, 영원히 사랑해 주고, 성경에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라는 거 하나님이 아시고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고 못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복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 같은 연악한 자를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선택받은 자의 특권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 특권을 자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조상이 되기를 애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처럼 소외되고 낮은 이웃에게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순종하자고 전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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