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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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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 Missio Dei) 

하나님께 사용되는 몇 사람들 

선교지 교회로 파송받은 최초의 목회자 바나바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어지도록 사용된 사람 

사도행전 11장 19절 ~ 26절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 11장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처음 등장하는 역사적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탄생하게 된 경위를 말씀 안에서 찾아보고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어 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라는 명제는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당부대로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때마다 회개하는 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사도들이 안수하면 성령의 역사하셔서 예수님이 행하시던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불길 번지듯 일어나는 부흥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도들은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신비한 역사들을 나누느라 모이는 일이 재미있고 신이 났습니다. 그 분위기에 젖어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하신 선교 명령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으로 퍼져나가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예루살렘에만 집중하며 날마다 모여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되고, 사울은 모든 믿는 자들을 다 잡아 없애려하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9절이 그때의 일을 증언합니다. 여기서 그때는 예루살렘에 임했던 큰 기쁨의 흥분에 찬물이 끼얹어진 시기를 말합니다. 교회의 충성된 일꾼이요, 성령 충만한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때요, 한 편으로는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성령이 그곳에 임한 때를 말합니다.

 

누가는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의 신비한 체험을 통해 이미 이방인선교를 시작하신 하나님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11장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예루살렘교회의 책망을 듣고 변론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하나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를 체험했다는 보고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회개의 구원을 베푸심을 인정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기적들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선교 명령을 잊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으로 퍼져나가도록 일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교(Mission of God, Missio Dei)가 시작된 것입니다.

 

선교는 선교사가 가서 복음을 전하고, 개종을 시키고, 교회를 세우는 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시며, 선교 대상은 온 세상이고, 선교 목적은 그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사용되는 몇 사람들
핍박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온 대부분 사람들이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할 때에 헬라인을 찾아 나선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은 아마도 디아스포라 유대인 중에 개종한 사람들 같습니다. 말하자면, 예루살렘 본토에 살던 유력한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북이스라엘 멸망 당시에 끌려간 지파의 자손일 수도 있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그들을 자기네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러나 타국에 적응하며 살았던 그들의 경험은 헬라인들에게 접근하기 쉽게 했습니다.

 

서러운 타향살이가 하나님의 선교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는 훈련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중요하게 여김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 중요하게 여김을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누가는“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다”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용하셨음을 말합니다. 수많은 헬라인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도록 하나님의 선교에 사용된 것은 몇 사람입니다. 지극히 작은 저와 여러분도 성령 충만 받고 하나님께 중요하게 사용되기를 축복합니다. 

 


3. 선교지 교회로 파송 받은 최초의 목회자 바나바
아웃사이더 몇 사람을 통해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문이 예루살렘에 들렸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곧바로 선교지 교회를 돌볼 믿을만한 지도자를 파송했습니다.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로 세워졌음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헬라인 성도들이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기를 권면했습니다. 바나바는 어떤 방법으로 모든 사람이 주와 함께 머물러 있게 했을까요? 틀림없이 말씀과 기도로써 주와 함께 머물러 있게 했을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 받으면 항상 주와 함께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을 가르치는 가장 근본은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 받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나바는 파송받은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나바에 대해서 누가는 24절의 칭찬으로 평가를 했습니다.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큰 무리를 주께로 더한 사람” 모든 그리스도인이 들어야 할 바람직한 평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평가를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어 지도록 사용된 사람
구브로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 태어난 바나바는 사실상 사도라 칭함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이름은 원래 레위 요셉인데, 사도들이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에게서 위로하고 돕는 은사가 크게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 돈을 자기 권한대로 사용하지 않고 사도들에게 맡겨 교회가 사용하게 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9장에서는 회심한 사울을 위해 사도들에게 중재를 했습니다. 그의 특출한 인격과 신앙은 25-26절에서 더 빛이 납니다. 사울이 완전히 거듭난 성도가 되었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게 중재받고 난 후, 사울은 다소로 돌아갔습니다. 그 후로부터 오랜 세월, 1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세월을 다소에만 머물고 있었던 사울에게 관심을 둔 사람은 바나바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목회하는 안디옥교회가 계속 부흥되어 가고 있을 때,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와서 교회의 공동 리더십으로 세웠습니다. 사울이 성령 충만한 새 사람이 되었으니 불같은 열정과 해박한 지식을 바쳐 주님께 헌신하도록 도운 것입니다. 결국 바나바는 사울을 두 번이나 주님을 위해 사용되도록 도와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동역으로 양육과 훈련을 받은 성도들은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착한 사람,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 사울과 동역한 바나바. 그 사람에게 1년 동안 배운 제자들이 큰 무리를 이루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잘 가르쳐서 세운 제자들의 큰 무리를 보고 안디옥에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기름 부으심 받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준 것입니다.

 

유대 본토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나사렛 이단(행24:5)”, “그 도를 따르는 사람(행9:2)”으로 폄하하여 불렀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그리스도인”으로 불리어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안디옥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의적인 호칭으로 불리어지게 한 중심인물이 바나바라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바울은 일을 잘 한 그리스도인이요, 바나바는 사람을 잘 세운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울이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로 사용되도록 그 길을 열어준 도구가 바나바였으며, 청년 마가가 역사상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와준 도구도 바나바였습니다. 두 사람의 1차 선교 여행에 따라갔던 마가는 어려움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했습니다. 바나바는 2차 선교 일정에 마가 요한을 다시 데리고 가자고 했고, 바울은 결사반대를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두 사람이 크게 다투고 각자 선교를 떠났습니다.

 

바나바가 구브로로 데려간 마가요한은 훗날에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의 기록자가 됩니다. 또한 디모데후서를 보면 노년의 바울 역시 마가를 유익한 자로 부르며 가까이합니다. 낙오자조차도 훌륭한 사역자로 길러낸 바나바는 어떤 사도보다도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을 교회의 중요한 리더십으로 세운 바나바는 인재를 볼 줄 아는 영안이 열린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해 주고 뒤로 물러날 줄을 아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런 바나바이기에 그가 가르친 안디옥교회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1세기에 생겨난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이천 년이 지난 21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 호칭은 이천 년을 한 결 같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을 부르는 호칭이 되었으며, ‘기름 부으심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칭호가 되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바나바와 바울과 성도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영원한 호칭을 만들어 내도록 역사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될 역사를 이루시게 사용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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