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에 처할 때
▣ 기도의 응답이 늦어 질 때
▣ 지은 죄가 클 때
이사야 49장 13절 ~ 17절
13.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14.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17.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은 너를 떠나가리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 시간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이 찾아내신 참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사람들은 현재의 일들이 잘되고 평탄하게 될 것을 기대하면서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기대’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기대’가 유익한 것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를 꿈꾸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본문의 말씀을 전할 때의 상황은 평탄하고 기대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나라의 멸망으로 혼돈에 빠져 절망하는 벡성들에게 반드시 그들을 도와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사람의 판단으로 볼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실 때 인 것을 확실하게 믿으라는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사람의 경험과 계산, 지식들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믿음이 생기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14-16절)"라고 간곡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오랫동안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거나 잊어 버렸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낙심할 때에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고난과 역경 앞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것은 하나님을 근심하시게 하는 마음이요, 생각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이 될 때에 더 '하나님을 기대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 고난에 처할 때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사람은 아무런 고난도 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고난과 시련을 더 많이 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를 세워야 할 사명자로 선택된 야곱은 태어 날 때부터 형 에서에게 눌려서, 일찌감치 부모 곁을 떠나 외가살이를 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더부살이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형이 두려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그가 당한 고난과 풍파로 이루 다 할 수 없는 역경과 아픔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에 의해 애굽으로 이주한 야곱이 바로 왕 앞에 섰을 때 바로 왕이 몇 살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7-10)' 대답했습니다. 일생동안 누구보다 고난을 많이 겪는 동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대함으로써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를 살펴보면 어려서부터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 고생을 했습니다. 또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쳤을 때 하나님은 칭찬과 상급 대신에 도리어 억울한 감옥생활을 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창39:20-21)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에게 고난이 많을수록 사랑(인자)을 더 많이 베풀어 주셨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고 고난과 시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형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역경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고난 후에 주실 예비하신 축복을 기대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난이 큰 만큼 그 다음에 오는 축복도 크고 더 귀한 하나님의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보자기에 복을 싸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이 온 우주에 가장 뛰어난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크게 사랑하는 자에게는 고난도 더 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는 ‘이 고난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좋은 것을 주시려나?!’기대하면서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기도의 응답이 늦어 질 때
사랑하는 여러분, 때로 기도 응답이 늦어진다고 해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고 문제 해결이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아! 하나님은 내 기도는 듣지 않으시나 보다'하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눅 18:1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지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라고 하시며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위로 하나님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아래로 사람도 사랑할 줄 모르는 재판관이지만 낙심치 않고 끈질기게 부르짖으니까 그 과부의 원한을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않겠느냐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도 6일 동안 아무 조짐도, 변화도 없었습니다. 일곱째 날 마지막 회를 돌고 난 뒤에야 단 번에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서 점령했던 것입니다. 요셉도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를 종살이로, 감옥살이로 지내야 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던 중에,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더니 반드시 왕에게 말해서 사면시켜주겠다고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술 관원이 2년 동안이나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던 요셉은 하나님의 때가 되매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응답이 더딜지라도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죄악이 만연하고 고통이 내 곁에 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향해 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영광 중에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그분을 소망과 기쁨 가운데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이 늦어진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맙시다. 축복이 더디 온다고 의심하지 맙시다. 원래 큰 응답과 큰 축복은 더디 오는 법입니다. 고난이 지나고 나면 축복이 오는 것을 성경은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고난이 오면 큰 축복이 있음을 기대하며 인내하는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지은 죄가 클 때
하나님은 어떤 죄인이라도,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고 돌아설 때 다 용서해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그물을 가지고 고기나 잡으러 나갔습니다. 나 같은 죄인이 무슨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는가, 어부 노릇이나 하다 죽어야지’하는 마음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고기나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용기와 사명을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범죄하고 실수가 많은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후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으면서까지 주님을 증거하는 수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밧세바와의 범죄는 그를 간음죄와 도적질한 죄와 거짓말한 죄와 살인죄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한 그의 죄를 지적하는 나단 선지자의 고발을 듣고 그는 회개하며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51:10-12)”고백하며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16절에서도 하나님은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고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젖먹이를 품은 어미의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하게 여기고 계속 사랑하시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사랑의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대하는 자를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믿으십시오,
믿음의 기다림은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주위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들을 보게 해줍니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눈들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고난에 처했을 때, 기도를 해도 해도 응답이 되지 않을 때, 어쩌다가 그랬는지 주님께 아뢰기도 죄송한 큰 죄를 지었을 때,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을 기대해야 할 때’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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