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하시는 하나님
▣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함
▣ 참 선지자적 사명 감당
예레미야 29장 10절 ~ 14절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할렐루야!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해 구주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세상을 어머어마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평안한 삶이 별로 안보입니다. 남 유다 멸망 직전, 예레미야가 살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 신탁을 받아 나라의 멸망을 계속 예언해야 했던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바벨론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는 멸망을 당했습니다. 나라가 멸망하기 전에도 자기의 생각을 전하던 거짓 선지자가 많았었는데, 나라 멸망 후, 포로로 잡혀온 상황에서도 여전히 거짓 선지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에게 헛된 꿈을 꾸게 하고 그릇된 삶으로 인도했습니다.
우리가 처해있는 요즘의 상황도 만만치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영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요즘입니다. 이 사람은 이렇다고 전하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자기 견해를 말하고 다닙니다. 어떤 말이 참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서로 가짜 뉴스라고 공격하며 주장합니다. 혼란의 시기에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나아갈 길을 잘 분별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1. 위로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29장 1절은 예레미야가 이 편지의 발신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2절에서는 편지를 보낸 시기에 대해 전합니다. 여고니야는 여호야김왕의 아들로서 “여호야긴, 여고냐, 고니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여고니야왕이 즉위 석 달 만에 바벨론의 1차 포로로 잡혀 간지 얼마 안 된 때였습니다. 성전을 파괴시키고, 성전 기물들을 갈취해 간 바벨론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혼란이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입니다. 3절에서는 편지를 전달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폐위된 여고니야왕 대신에 세워진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왕에게 사신들을 보냈습니다. 편지를 전달 한 엘라사와 그마랴 두 사람은 예레미야가 신뢰할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문화, 자기 나라를 멸망시킨 느브갓네살 왕.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마음 둘 곳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 땅에 집 짓고, 농사도 짓고, 결혼해서 아기도 낳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게다가 원수나라인 바벨론을 위해 평안도 빌고, 축복하며 기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기를 저주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들을 축복하는 말을 들으시고 그들이 사는 땅을 평안하게 하시고, 그 땅에서 사는 자기 백성을 평안하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너희에게 행하겠다”(민14:28)고 맹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성읍(바벨론)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7절 하)”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바벨론에서 행복하게 살도록 백성들을 위로하시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뿐이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길은 원수를 위하여 평안을 빌어 주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원수를 위해 빌어주는 평안의 기도는 결국 우리 자신을 평안하게 해주는 지름길이 됩니다. 여러분을 많이 아프게 한 원수가 있습니까? 그분을 미워하고 저주하는 대신 많이 고마워하십시오. 그 원수님 때문에 부르짖게 되고 원수님을 축복함으로써 내가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위해 평안을 많이 빌어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축복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평안의 대로를 걷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2.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해야함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성전도 파괴되게 하실 것을 예언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 때문에 전 국민적인 미움을 사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대부분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실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만군의 하나님이 이방나라 왕에게 패배한다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듣기에도 좋고, 생각하기에도 좋은 위로의 거짓말들을 백성들은 듣기 좋아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겠느냐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한다는 예레미야의 선포는 그를 미치광이로 보이게 하고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참선지자는 그가 한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구별됩니다. 망한다 망한다 하던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나라가 멸망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제는 거짓선지자들이 사라지고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선포가 하나님의 신탁임을 믿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처럼 바벨론에서도 거짓 예언자들이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 편지를 쓰게 하신 것입니다. 이 편지의 목적은 거짓 선지자의 말에 속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신탁을 받은 것처럼 속이면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거짓말쟁이들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점치는 사람들이 하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스스로 꾼 꿈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 점쟁이, 꿈 이야기하는 말쟁이들이 포로지 백성들을 멸망의 길로 다시 이끌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의 상황도 매우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누가 코로나 감염자인지 알 수 없기에 언제 확진자가 될지 모르는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경제 활동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고,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신용불량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남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사귀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잠20:19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어려운 상황일수록 말하기보다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혼란스러울수록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불안할수록 더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자기를 붙잡아 십자가에서 처형할 사람들이 겟세마네로 올 것을 아시면서도 주님은 거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그런 것 아닙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팔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려 그곳에 계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참 선지자의 모습이 어떤 것임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습니다. 자기가 예언했던 영광스러운 일들이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참 선지자는 자기가 예언했던 일들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평안을 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위기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평안과 위로를 전하는 참선지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참 선지자적 사명 감당
참 선지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예언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70년이 차면 이스라엘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예언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칠십년”은 이 편지를 쓸 때 처음 신탁 받은 말씀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멸망 전에 이미 예레미야가 선포했던 말씀입니다. 선포된 하나님 말씀은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습니다. 그 입에서 내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내십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포로지 백성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칠십년을 바벨론 포로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어찌 들으면 저주의 말일 수도 있습니다. 사로잡혀 온 사람 중에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길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뿐인데, 이제는 들어갈 성전도 무너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면 칠십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칠십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겨야 한다는 이 말이 “하나님의 선한 말씀”이라는 선포를 듣고 어이없어하는 백성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선포됩니다.
‘망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 재앙이다’는 생각이 백성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렇게 절망한 포로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을 주는 것입니다.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하는 것이 참선지자의 사명입니다. 미래와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찾는 기도”임을 전합니다.
악한 길을 떠나 스스로 겸손하게 기도하며 하나님 얼굴을 구하는 것이 부르짖음입니다.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전심으로 부르며 찾는 기도가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회복이 일어나게 합니다. 이제 포로지의 백성들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곧 회복될 것이니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짓 선지자의 사탕발림을 믿을 것인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며 인내로 부르짖어야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참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믿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 역시 위기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COVID-19라는 이 기괴한 바이러스 앞에서 어떤 선지자의 음성을 믿어야 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2019년 연말로부터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은 여전히 불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극적으로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존의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과거 역사는 성경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가장 극적인 삶의 첫 변화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이후였습니다. 창조의 영광이 가득했던 에덴동산은 폐쇄되고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난 땅에서 온피조물과 함께 저주를 받는 고통의 삶으로 옮겨졌습니다. 상상 할 수 없는 격변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홍수 심판 이후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 가족도 격변한 세상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이전에 경험한 적 없던 ‘추위와 더위’에 직면했고 동물과 사람의 관계도 변화되었습니다. 의인이었던 노아라 할지라도 심판 후의 악화된 환경에 그대로 적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바벨탑 심판 때도 그랬습니다. 좀 전까지 말이 통하던 사람과 말이 안 통합니다. 대화가 안 됩니다.
결국 말이 통하는 사람별로 흩어지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본문의 상황은 유다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왕과 귀족들과 기술자들이 사로잡혀갔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거처인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인에 의해 파괴된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상태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더 많은 격변의 상황들이 성경에 나오고 있지만, 모든 격변의 공통적 원인은 “죄”였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COVID-19로 말할 수 없는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COVID-19도 “죄”의 결과인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이 혼란의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실지를 기대해야합니다. 모든 위기는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위기는 큰 축복이기도 합니다. 위기를 통해 참선지자의 책망을 듣게 되고 부르짖는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되고, 내 마음을 겸손하게 하며, 지금까지의 내 신앙과 삶을 돌아보게 되어 새롭게 변화되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위기 가운데 발견하는 부르짖는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은 모든 위기를 이기고 반드시 승리하는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안타까운 온 세계와 우리 주변과 민족이 위기에 직면한 모습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은 참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며 부르짖는 기도의 자리에 설 것을 결단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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