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대 긍정의 믿음
▣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
▣ 자족하는 믿음
▣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는 믿음
히브리서 12장 2절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전히 회개하고 돌아서는 우리에게 지혜 주셔서 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잘 견디고 이겨 승리하는 새 힘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증거 하듯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모든 부끄러움을 참아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일에 절대적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도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믿음의 삶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신앙이 자라게 되는 것 입니다.그 믿음을 가지고 천국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믿음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될 때 하나님께서 복에 복을 더해 주십니다. 똑같은 신앙생활을 해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지만,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항상 삶의 가벼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큰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늘 간구하며 다음과 같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1. 절대 긍정의 믿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늘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우리를 축복의 삶으로, 승리의 삶으로, 기적의 삶으로 인도합니다. 마음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자꾸 낙심하고 상처 받고, 마음이 소심해서 매사가 불안하고 염려가 앞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같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다른 태도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늘 감사가 넘쳐나야 합니다.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이, 자식이, 때때로 이웃이 내 마음에 흡족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 긍정의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상대방을 알려고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잘 아는 것 같아도 내가 틀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알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의 마음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집착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시는 주님을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신비도 알기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을 알려고도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바라는 것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랍니다.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것이 커다란 행복인 양 살아갑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면서 주님을 향한 사랑이 나올 수 있을 까요? 우리 모두 주 안에서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
사람들은 반드시 두 번 태어나야 합니다. 첫 번째 출생이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났다면, 두 번째는 곧 ‘거듭남’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 거듭남의 증표가 세례인데 이 세례는 물로 씻기는 종교적 의식이나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신고식 따위가 아닌 것입니다. 세례의 본질은 거듭남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인 것입니다. 탐욕에 끌려 살던 삶에서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서의 근본적인 회심인 것입니다. 세례는 본능을 쫓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사는 새로운 삶의 출발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된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수준이 아니고, 마음의 중심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회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전의 이기심과 욕심, 본능을 쫓아서 나의 만족과 유익을 구하며 살았다면, 이후로는 진리의 말씀과 영원한 가치를 쫓아 사는 삶으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베푼 세례 곧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가 ‘물세례’라면 예수님께서 친히 베푸실 또 다른 차원의 세례를 가르쳐 ‘성령세례’ 또는 ‘불세례’라고 증거 합니다. 물세례 곧 ‘죄사함’을 얻게 하려는 회개의 세례는 스스로 의지적인 결단에 따르는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한마디로 나로부터, 아래로부터의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삶’은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거듭남은 물세례로 시작되어서 성령세례를 통하여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타올라 삶을 온통 불사르는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인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지속적으로 완수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용서 해야지’ ‘사랑해야지’ 결심해보지만 현실에서는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흠 없고 순결한 사람이 과연 있을 까요? 우리 자신의 더러움을 인정하며 날마다 목욕하여 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처럼, 날마다 우리의 죄를 씻어내야 하며, 이러한 수고를 감당하는 사람이 진정 깨끗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질책한 이유는 외식하는 신앙의 추악함을 회개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들을 자행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처럼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위선적 신앙의 심각한 문제점은 결국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감추고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사실상 단 한 걸음도 새롭게 변화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성령을 의지하여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자족하는 믿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를 합니다. 직업, 수입, 외모, 성격, 출세, 소유하고 있는 것들, 영성 등등... 비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모두 비교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곁눈질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곁눈질하는 모습은 떳떳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상대방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과연 좋아 보일까요?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활 자체도 원만해 질 수가 없겠지요!
떳떳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은 비교가 아니라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이런 모습도 있고’, ‘이런 것도 가지고 있으며’ , ‘나 역시도 잘할 수 있는 것이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들은 물론이고 내 자신까지도 시원하게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자신 없는 소극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보면서 남과 비교하고 또한 지금 가지지 못함에 불평불만을 간직하고 있다면,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기를 바랍니다. 너무도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굶주림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 자족하며, 모든 환경에 만족하는 비결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불평보다는 범사에 기뻐하며 감사로 자족하는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하는 믿음
어느 날 다윗왕은 반지가 하나 갖고 싶어서, 반지 세공사를 불러 그에게 ‘나를 위한 아름다운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 고 말합니다. 단 “내가 승리를 거두고 너무 기쁠 때에, 교만하지 않게 하고 내가 절망에 빠져서 시련에 처했을 때엔,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넣어라 “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네 폐하 잘 알겠습니다.” 세공사는 그 명령을 받들어, 멋진 반지를 만들었습니다. 반지를 만든 후 어떤 글귀를 넣을지 고민 하였습니다. 계속 생각을 했지만, 다윗 왕이 말한 ,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고민을 해도 떠오르지 않아 다윗의 아들 지혜의 왕인 솔로몬을 찾아갔습니다.
왕자시어! 다윗 왕께서 기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기라고 하시는데...어떤 글귀를 적어 넣으면 좋겠나이까? 솔로몬이 잠시 생각한 후 말합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지혜서 미드라쉬에 나오는 유대인들이 항상 즐겨 읽는 구절입니다. 나치 학살 시에도, 이 구절을 붙잡고, 유대인들은 그 당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 대십니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다. 지금 너무 괴롭고 슬퍼서 하루 살기가 힘드신가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누구든지 찾아온 기쁨이 영원할 수 없고, 괴롭고 슬픔 역시 영원할 수 없습니다. 모두 지나갈 것입니다.
지금 너무 힘들고 어려워도, 꿈꾸던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늘 긍정의 힘으로 살아가면서 어떠한 환경에도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환경은 달라질 것입니다. 불평불만으로 살아가면 절망의 감옥이 될 것이고, 기뻐하고 감사하면 축복의 자리로 바뀌는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감사가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협력해서 선을 이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비록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온 세상이 어렵고 고통 중에 있지만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불평과 불만보다는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합니다.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물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늘 동일하시며 무궁무진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절대긍정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여 간증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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