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 품기
▣ 예수님의 복종을 마음에 품기
빌립보서 2장 5절 ~ 11절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을 성실하게 찾는 사람을 주님이 만나주시고, 주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주님도 많이 사랑해 주십니다. 자신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며 많이 기도한 사람이 기도 응답도 많이 받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온 세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요,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고 나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많이 체험하시고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통전의 복을 받는 우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유대인의 격언 중에 ‘많이 가진 자는 신을 주머니 속에 모셔 두지만, 가난한 자는 마음속에다 신을 모셔 둔다.’는 글이 있습니다. 부자는 자기 주머니 속의 돈을 믿고 살지만,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믿고 산다는 뜻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굳건한 믿음으로 사는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은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기억 등이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을 말합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 안에 실재하는 공간이요, 여러 감정들을 담겨 있는 곳입니다. 기쁜 마음, 슬픈 마음, 즐거운 마음, 분노하는 마음, 괴로운 마음, 수치스러운 마음, 행복한 마음, 겸손한 마음 등의 모든 감정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곳입니다. 그 마음 깊은 곳, 믿는 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성전을 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을 인도하시기 위해 계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마음을 잘 지키라고, 그 곳이 생명의 근원이 나는 곳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가장 뛰어난 지혜와 부귀를 선물로 받은 솔로몬의 가르침입니다. 건강도, 돈도, 가문도, 지식도, 미모도 지킬만한 것이 아니요, 자기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보다 칠백년 후에 태어난 사도바울 역시 빌립보교회에 편지해서 그들의 마음을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솔로몬이 사용한 “생명의 근원”이라는 용어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수정해서 당부한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이심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떤 마음을 생명의 근원으로 마음속에 품어야 한다는 것일까요?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 말씀을 통해서 함께 깨닫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 품기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바울에게 후원을 아끼지 않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쓴 것이 빌립보서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빌립보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빌 1:27-30)이런 소식은 갇혀있는 바울에게 몹시 애가 타고 마음 아픈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 평생을 이런 공격을 받아왔기에 같은 고통을 당하는 빌립보성도들이 안쓰러운 것입니다. 대적자들과의 다툼을 피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는 글이 2장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권면, 사랑의 위로, 성령의 교제와 자비의 마음이 성도들 안에 있는지 확인하라고 합니다.
2절은 대적하는 사람과 맞붙어 시비를 가리며 싸우지 말고 사랑으로 한 마음 한뜻을 품으라고 합니다.
3~4절은 겸손히 자기보다 남을 더 훌륭하게 여기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돌보라고 합니다.
즉, 대적의 공격보다 내부의 하나 됨에 마음을 쓰는 공동체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 공동체, 가정 공동체가 된다면 어떤 대적도 이 공동체를 해칠 수 없게 됩니다. 그런 빌립보교회의 모습이 될 때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의 마음도 기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편 저자들이 하나님께 원수를 갚아달라고 탄원하던 믿음의 수준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원수를 갚아 주세요’를 넘어서서‘사랑과 겸손으로 원수에게 본을 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를 대적하는 원수를 사랑하고 겸손하게 섬기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까? 더군다나 복음을 대적하며 교회를 훼방하는 원수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인데 어떻게 사랑으로 겸손히 섬길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에게는 없는 겸손을 실천하기 위해 예수님의 겸손을 그들 마음 안에 심어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本體)로서 하나님과 동등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지니셨습니다. 태초부터 한 본체로 계셨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성자하나님께서 거룩과 공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비워내시고 종과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영원히 죽어야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영광을 비워내신 것입니다. 자기 안의 영광을 비우시고 겸손한 마음을 준비하신 예수님처럼, 우리 마음도 비워야 합니다. 타락한 인류의 마음에는 온갖 죄악들이 가득하기에 그 더러운 악덕들을 비워내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담아야만 합니다. 깨끗하게 비움이 없이 채우면 불순물이 섞이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에게도, 믿는 자들에게도 많은 비방과 핍박을 받으며 복음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복음 대적하는 최고 선봉에 섰다가 회심하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기에 그의 평생에 그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붙여준 꼬리표가 따라다니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떤 비방도, 격려도 다 받아들이고 묵묵히 복음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해냈습니다. 육체의 소욕으로 가득했던 외식된 유대교 신앙을 깨끗하게 비워버리고, 참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의 마음속에 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헛된 죄인의 교만들과 시기와 질투, 비방하는 죄악들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마음이 악할 뿐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마15:19)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마음속을 점령했던 악한 생각들을 다 비워버리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담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새 피조물의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중세 기독교의 최고 신학자이자, 영성가인 성 어거스틴에게 한 수도자가 기독교의 제일 되는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 큰 덕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시 “겸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기독교의 큰 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세 번째도 역시 “겸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면, 겸손은 신앙의 덕목이 아니라 필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천사를 마귀로 돌변하게 한 것은 교만이었다. 반면 사람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면서도 마음속에 육체의 소욕을 가득 담은 채 산다면, 참 평화가 없습니다. 가시나무 같이 바짝 메마른 마음으로 자기도 찌르고, 남도 찔러대는 고통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바짝 마른 가시나무들을 잘라내고 비워내야만 합니다. 그 빈자리에 하늘 영광을 다 비우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가장 영광스러운 하늘 영광까지도 비워내신 예수님의 겸손을 우리 마음에 담는다면 내 안에 누군가를 위한 작은 공간이 반드시 마련될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담은 우리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 되어 날마다 새 생명을 공급받으며 살게 될 것을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2. 예수님의 복종을 마음에 품기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신 것은 철저한 복종을 위한 준비였습니다. 태초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복종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었습니다. 천지창조의 때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사람과의 사이에 법칙을 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사명)을 주시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신 법칙입니다.(창 2:15-17)에덴동산의 관리자로서 모든 과일을 다 먹되 선악과만은 먹지 않는 것이 유일한 법칙이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은 이 법칙을 지키지 못했고, 이것이 인류의 죄악의 시작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악임을 성경이 뚜렷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비워버리시고 사람으로 낮아지신 사명은 말씀에 다시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드리시며 복종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복종하기 위해서 성도는 말씀을 매일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루 세끼 식사를 하듯이 날마다 말씀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복종하는 훈련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신 그분이 바로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다가왔지만,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생명이 모든 사람에게 다시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영광 받으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 영광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진 사람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죄도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마다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사람들은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고 그분을 경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자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복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을 받는 영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는 삶이었습니다. 그 철저한 복종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뜻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 드렸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고 모든 민족이 그 이름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철저한 복종으로 말씀을 살아낼 수 있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은 반드시 높여 주십니다.
낮아지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은 매우 희귀할 것입니다. 겸손하게 낮아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고통과 아픔을 경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고통과 아픔을 묵묵히 받아들이시며 낮아지셨습니다. 하늘 보좌를 떠나 여인의 작은 자궁에 열 달을 갇혀 있다가 좁은 산도(産道)를 통해 고통스럽게 태어나는 것이 어찌 즐겁고 기쁜 일이겠습니까? 갈릴리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행k는 것이냐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시달림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어찌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가난한 자, 병든 자, 슬픈 자, 배고픈 자, 불구로 태어난 자들과 지내며 가진 자, 누리는 자에게 조롱당하는 일이 예수님 평생의 삶이었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하나님께 형벌을 받는 자들로 보이는 비천한 자들에게 태초의 복을 다시 주시려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복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 겸손하게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에 빌립보에 세운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편지에 담아 보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무시하지도 말고, 예수님 마음으로 품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마음은 자기의 영광을 비우고 철저히 낮아지는 겸손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마음은 하나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예수님 마음을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에 품고 대적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바울은 권면한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 하나님의 능력이기에(벧전 4:8), 빌립보 교회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품으면 고난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겸손과 복종의 이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품으라는 도전을 순종으로 받아들이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이 우리 눈앞에, 마음에, 손에, 발에, 입에 항상 있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지시하는 말씀은 “너의 교만을 비우고 겸손하게 낮아지라”와 “하나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라”입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깊이깊이 품고, 끝까지 복종함으로써 새 생명을 날마다 공급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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