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
▣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한사랑
시편 119편 137절 ~ 144절
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39. 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4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체험되어지는 은총이 날마다 커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깨닫고 자녀로서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어려운 때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이 하나님보다 더 좋은 분이 없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사랑의 하나님 음성을 듣고 새 힘과 용기를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열여덟 번 째 히브리 알파벳인 차데(Tzsdhe/צדי)로 시작되는 연을 살펴보려 합니다.시편 119편 137절 ~ 144절에서 시인은 크게 두 가지 주제로 자기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실, 시인에게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가 있기에 말씀에 대한 무한 사랑도 생겼다는 고백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고백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도 하나님 신뢰와 말씀사랑의 영으로 충만해지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에 대한 무한 신뢰
하나님에 대한 시인의 믿음은 그의 시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요, 그분의 말씀도 의로운 말씀임을 거듭 고백을 합니다.
첫째,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137절)
둘째,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138절)
셋째,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142절)
넷째, 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144절)
거듭거듭 강조해도 넘치지 않을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마음을 시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대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보호해주신 은총을 수없이 경험한 시인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구원의 맛을 본 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 받을 때마다 그분의 신실하심에 대해 점점 알아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도 커져갔습니다. 그런 신뢰가 쌓였기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잘 믿는 길은 많은 환란과 핍박을 받는 길임을 체험한 것입니다. 믿음의 길은 꽃길을 걷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는 고백입니다. 그래도 더욱 더 말씀을 지키며 그 길 가기로 결단하는 신인의 신앙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믿음의 길이 어떤 길인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 온 인류 가운데 예수님보다 하나님을 더 잘 믿고 신뢰한 분은 없습니다. 믿음의 근본이신 예수님이 가신 길은 홀로 가시관 쓰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 가지 말아야 한다는 제자들의 사랑 어린 충언도 물리치셨고, 조롱하며, 침 뱉고, 모욕하는 군중들의 멸시도 참아내셨습니다. 3년 여 동거 동락한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을 때 느끼신 허무함도 견디셨습니다. 마지막 만찬 자리에까지 동석했던 식구- 가룟 유다의 배반도 잠잠히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처참한 십자가에 벌거벗긴 채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죄인 구원을 위한 이 고난들을 아들이 다 감당해 주기를 원하신 아버지를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을 당하고, 악한 자들에게서 멸시를 당하고, 모함을 당할 때, 이 모든 고난이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환란임을 끝까지 신뢰하십니까? 내가 억울하게 당하는 환란을 통해 나를 핍박하던 영혼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틀림없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욕과, 억울함, 고난, 핍박, 멸시를 당하게 하시는 데에는 이유가 분명히 있음을 신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예수님처럼, 시인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정해진 이치요, 변하지 않는 진리일지라도 신뢰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진실하며, 영원하시며, 능력과 권세와 힘이 영원무궁하신 분입니다. 아멘! 이 불변의 진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다 이룬 것 같지만, 순식간에 무너질 신기루를 쌓은 헛된 신앙일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는 복 있는 영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삶에 체험되어집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말씀을 생생하게 체험한 경험은 그분에 대한 확신이 없어 흔들리는 영혼을 붙들어줍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요1:1)께서 지금 여기에서도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체험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 안에 처음 시작하신 선한 일을 지속하고 완성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십시오. 온전히 신뢰할만한 분이신 진리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영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한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동기 역시 다 사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일들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는 제한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한적인 사람이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에게 영원한 신비요, 그분의 계시를 받은 만큼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받은 계시가 많은 분은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 크게 믿는 사람이 됩니다. 계시를 받은 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알고, 작게 믿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많은 계시를 받고 크게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많은 계시를 받는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고 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한 영혼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찾고 있는 자를 만나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보다 자기의 생각을 더 즐겁게 찾아다닙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착각하기를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 말씀에 순종하는 줄로 압니다. 자기중심적 사고로 하나님 말씀을 믿으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빛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 빛 앞에 자신의 거짓과 위선, 탐욕과 음란이 다 드러나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보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심히 부패한 내 마음을 발견하게 하시고 그 행위대로 보응하시겠다는 엄위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복입니다. 시인은 지금 그러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말씀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우리를 살리시는 말씀, 보존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너는 옳고 그는 틀렸다. 너를 모함하는 사람들의 추악함을 다 파헤쳐 망신시켜라’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결코 하시지 않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 119:14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순수(체루파)”는 용광로에 있는 금속과 관련된 용어로 ‘제련된, 정제된’등의 의미입니다. 마치 잘 제련(製鍊)된 금이나 은처럼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결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잘 제련된 귀금속 같은 말씀이 ‘원수들을 제련하는 말씀’이 아니라, ‘나를 제련하는 말씀’이기에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율법은 찌끼와 불순물이 다 제거된 순금처럼 나를 가치 있게 합니다.
왜, 악한 자들을 제련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고난당하고 있는 시인을 제련하십니까? 하나님이 시인을 사랑하셔서 그의 영혼을 살리시려고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여 속임수가 없기 때문에 악한 자들의 악행을 통해서 나에게 숨어 있는 깊은 죄를 들여다보게 해 주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내가 회개하고 구원 받게 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기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인과 같은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서 울려퍼지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고 말씀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과 생각의 뜻을 판단하는 기준이지, 사람의 지식과 생각으로 하나님 뜻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실로 사람은 불순물 없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고, 위로와 치유도 받고, 기쁨과 평화도 선물로 받습니다. 말씀을 통해 나날이 주님을 닮아가며 온유하고 겸손해 지게 됩니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시려고 그 말씀으로 제련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19편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하고 순결하다고 선언합니다.
시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좋은 보석을 보고 눈이 밝아지지 않는 사람이 없듯이, 이 세상 어느 보석보다 더 맑고 깨끗하여 불순물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사랑하는 눈이 열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참 행복을 위해 말씀공부보다 더 중요한 평생공부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많이 사랑하고 연구하십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말씀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시편 119편의 열여덟 번째 짜데/차데(Tzsdhe/צדי)연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말씀에 대한 사랑, 이 둘은 사실상 하나의 통일된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신뢰는 종이 한 장의 앞뒤처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신뢰와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신뢰는 더욱 깊어지고 신뢰하면 오래도록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인이기에 하나님 말씀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자들에게 멸시를 당하여 미천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 말씀을 사랑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제자들 역시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했기에 이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모여서 금식하며 기도한 120명의 제자들은 약속하신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받은 그들은 흩어져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된 사역과 삶을 살아냈습니다.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동일한 사명으로 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크신 구원의 큰 은혜를 갚기 원하는 성도들마다 낯선 선교지로 가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라는 주님과 그 말씀을 기억하기에 순종하려고 갑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신뢰하고 사랑함으로써 어떤 환란과 우환 앞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이 되도록 도우실 성령님과 동행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누리는 행복을 날마다 누리시는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성경 >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얻는 복 (0) | 2020.11.14 |
---|---|
예수님의 마음을 품읍시다. (0) | 2020.11.07 |
인생이 피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0) | 2020.10.24 |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0) | 2020.10.17 |
경건한 삶을 위한 훈련 (0) | 2020.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