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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인생이 피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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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피곤한 이유 

인생의 피곤함이 사라지게 하는 것 

 

시편 119장 81절 ~ 88절
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85.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쓰러지는 인생들을 돌보아 주시기 위해 가까이 오셨습니다. '주님이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셔서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소식을 복음(福音), 복된 소식이라고 합니다. 복음(福音)이 복된 소식임에 틀림이 없는 것은 죽어서 영생하는 것뿐만 아니라,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돌봄을 받고 산다는 것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의 복을 넘치도록 받고 누리고 나누는 자녀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세상 살아가는 동안 왜 이다지도 힘든 일이 많을까요? 인생이 힘들고 지쳐 피곤하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 의한 결과입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을 다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단 하나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법을 어기는 불법(不法)은 모든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깨뜨리는 범죄행위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긴 아담과 하와의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 복을 받으며 영생하던 관계가 깨어지고 피곤한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지쳐서 고달프다”는 의미의 “피곤하다”는 말은 현대인들이 입버릇으로 하는 말입니다. 너나없이 피곤하게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점점 더 죄가 만연해진 세상에 살면서 피곤하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3천 년 전에 살았던 최고 지성이요, 최고 갑부이며, 최고 권력을 누린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도, 먹고 입을 것조차 없어 궁핍하고 병든 사람도 피곤에 절어서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역시 피곤하기 그지없는 인생입니다. 오늘 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항상 말씀을 자기 인생의 길잡이로 삼고 있는 시인인데도 피곤했으며, 그런 자기의 피곤이 어떻게 해결될 수 있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서 우리도 시인처럼 피곤한 인생을 회복하는 은총 입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 삶이 피곤한 이유  
시인은 몹시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 빠졌는데 주의 구원을 기다리느라 피곤해졌다고 합니다. ‘피곤(疲困)’의 사전적 의미는 ‘몸이나 마음이 지쳐서 고달픔’을 말합니다. 피곤은 몸 때문에도 생기고, 마음 때문에도 생긴다는 것이 사전의 풀이입니다. 그러면 시인의 인생이 피곤한 이유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주의 구원의 때가 언제나 오려나(81절)” 하는 기다림 때문에.
둘째, “나를 위로하시는 주의 말씀을 언제나 주시려나(82절)”는 초조함 때문에.
셋째,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처참하게 되었다(83절)”는 초라함 때문에.
넷째, “핍박하는 자들 때문에 자기가 곧 죽음을 맞이할 것 같다(84절)”는 위기감 때문에.
다섯째, “자기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판 교만한 자들(85절)”로 인한 억울함 때문에.
시인의 피곤함에는 육체적인 피로감이 전혀 없습니다. 시인 역시 육체의 노동으로 인한 고통으로 피곤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정신적인 피로감, 한 단계 더 나아간 영적인 피곤함입니다. 하나님 품에 고요하게 안겨있는 자의 평안이 없어서 피곤한 시인의 탄식이었습니다. 즉, 목자이신 하나님이 양인 시인과 함께 계시지 않기 때문에 피곤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피로감을 느끼고 계시는 지요?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하는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 저의 마음이긴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롬3:23)” 존재가 될 때마다 우리는 다 피곤을 느낍니다. 하나님 없는 영혼은 자기의 근본을 잃은 고아와 같기 때문에 항상 허허롭습니다. 이런 영적 피곤함의 상태가 계속되는 이유는 “죄”를 선택하는 우리의 마음 때문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건만 거룩과 상극인 죄를 선택함으로써 거룩함을 훼손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영적 피곤함이 항상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시인이 ‘교만한 자들, 핍박하는 자들, 자기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판 자들’..., 이 사람들 때문에 피곤한 것만은 아닙니다. 주를 찾고, 말씀을 기다리고, 주의 구원을 목말라하는 시인 역시 죄인이기에 피곤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피곤함을 떨쳐버리고 평안을 얻으려고 더욱 더 말씀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나누었던 말씀대로 우리의 피곤함은 말씀을 얻지 못하는 기갈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청년들까지 다 쓰러질 정도로 피곤한 인생들이 되는 이유는 “죄”에 대한 관용(寬容, 느긋하고 거리낌 없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죄를 얼마만큼 멀리해야하는지, 그런 무의식적인 관용들을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2. 인생의 피곤함이 사라지게 하는 것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피로감이 떨어져 나가도록 해결해 줄까요? 이제 시인에게서 어떻게 피곤이 떠나갔는지를 알아보려 합니다. 시인이 상당히 뛰어난 신앙으로 훈련된 영성가임을 그의 시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81-82절에 그가 말하는 “피곤”은 하룻밤 푹 자고 나면 회복될 수 있는 피곤함이 아닙니다. “tired”가 아니라 “fail, faint”같이 소멸되고, 쇠약해져 죽기 일보직전의 피곤함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도 시인이 찾고 바란 것은 오직 주의 말씀이었습니다.(81-82절) 죽음이 눈앞에 이르렀는데도 말씀만을 찾는다면 능히 고품격 신앙으로 인정받을 만하지 않을까요?    

게다가 자기의 상태가 연기 속의 가죽부대 같다고 했는데, (83절)물병, 우유병, 포도주병으로 사용되는 가죽부대가 연기로 그을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부엌이나 식당에 놓여 있어야 할 식용 그릇이 연기에 그을렸다는 것은 인생의 산전, 수전, 공중전 다 치르다가 정말 탈진한 패잔병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칠 대로 지쳐서 말이 아니게 상했다는 번 아웃(Burn Out)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율례들은 잊지 않았다고 하는 시인입니다.(83절)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말씀을 암송하면서 모든 고난을 견뎌왔다는 것입니다. 

84-87절에서는 교만하고 악한 대적들이 시인이 죽게 될 것을 알고 더욱 날뛰며 핍박을 하는 현실을 고발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한 그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기다렸고(84절), 주님의 계명을 신뢰 했으며(86절), 주의 법도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87절). 즉, 자기의 원수들과 맞붙어서 직접 싸움박질하며 분을 풀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대단한 신앙과 인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인격이 좋은 시인이기 때문에 그의 피곤한 삶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을까요?

시인은 최종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119: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시인은 자기가 잘 지켜온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주의 인자하심, 즉 주의 사랑으로 자기를 살아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면 주의 입의 말씀들을 지키며 살아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이 시인이 참 믿음의 사람이요, 그의 피곤한 인생이 회복될 만한 사람임을 증거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해서 하나님께 구원받고 회복되는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닙니다. 자기는 여전히 불안하고, 지치고, 피곤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할 죄인이지만. 오직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피곤한 죄인들을 소생시켜 주신다는 것을 아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살아나게 한다”로 번역된 단어는 ‘지키다, 보존하다, 유지하다, 보호하다’라는 뜻의 “preserve”를 사용했습니다. 즉,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은 죽어가던 자기 영혼이 다시 회복되어 보존되고 유지되도록 보호해 주실 것을 신뢰하는 표현입니다.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만이 죄로 죽은 우리 영혼을 다시 회복시켜 보존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피조물이 된 사람은 시인처럼 말씀을 항상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따라가는 그 행위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하심, 그 변함없이 영원한 사랑이 피곤한 영혼에게 새 생명을 주십니다. 시인은 죽도록 피곤한 인생을 사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죽음의 고통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는 길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받은 우리이기에 시인과 같이 말씀 지키려고 애써야 하는 것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살아나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더욱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께 기쁨이 된다는 것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힘들고 지친 인생, 피곤하고 고단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피곤한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려 항상 다가오십니다. 그 사랑의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고 교제하며 살아가십니까?

말씀과 기도는 이 사랑의 하나님을 항상 만나게 하는 길입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결코 역사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시인과 같이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고,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의 크고 넓으신 사랑을 한량없이 체험하며 영혼이 살아나는 복된 자녀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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