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고생하는 이유
▣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 한 분 만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
하박국 3장 17절 ~ 19절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아무리 길고 어두운 터널일지라도 모든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 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세상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님 한 분 한 분이 하나님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믿음으로 잘 세워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귀한 말씀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고생하는 이유
하박국 선지자의 활동 시기는 이스라엘 역사상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때였습니다.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나라가 사라졌습니다. 이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신흥 강대국으로 급부상한 바벨론은 홀로 남은 남유다를 계속 침공하여 하루도 편한 날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왕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사치와 향락을 위해 백성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있었습니다. 이런 꼴을 보다 못한 하박국 선지자가 따지듯 하나님께 드린 질문이 하박국서의 시작입니다. 나라 안이 무법천지라는 탄식을 하며 어째서 이런 일들을 방관하시는지를 따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유다왕국을 멸망시키려는 바벨론의 공격을 심판하시지 않으심도 탄원합니다. 주변 나라 백성들을 벌레보다 못하게 취급하면서 약탈하는 바벨론을 왜 심판하시지 않느냐? 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로 갔느냐는 신정론(神正論)적 질문들을 드린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 보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의 상황이 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극심한 고통보다는 지금 내가 당하는 고통이 더 뼛속까지 스며드는 것이 우리네 심정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악한 일들에 대해 우리가 드리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파괴했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타락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보다 “자유”라는 자기의 소견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무법천지를 선택하는 인류로 인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계속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하는 인류의 악한 모습을 하나님은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합 1:11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 하리라
“자기들의 힘을 자기의 신으로 삼는 자들” 이런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데 온 힘을 다 쓰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더욱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고, 주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퍼지도록 수고를 해야 할 이유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고도 영원한 빛이요, 악이 결코 이기지 못하는 절대 선(善)입니다. 이미 이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패배한 악한 자들도 자기들의 실패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악랄하게 세상을 괴롭히며 하나님의 공의가 서지 못할 것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는 악은 결코 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캄캄한 곳에 작은 촛불하나만 켜도 캄캄함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추이면, 모든 악은 그 빛 앞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처럼 여러분과 저의 주변에 일어나는 정의롭지 못한 일들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질문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질문에 밝은 광명의 빛을 비추면서 반드시 대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얼마든지 묻고 대답하며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의 질문에 대답하시는 하나님
1장에는 불공정한 세상에 대한 선지자의 질문과 하나님의 대답이 교차되어 기록되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을 마친 하박국은 2장에서 다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는 하박국에게 하나님은 장래에 될 일을 밝히 드러내 알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요, 그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시는 분임을 거듭 증언합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갔음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기록된 조상들의 삶과 신앙의 모습을 보면서 올바른 신앙 배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선지자의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 바벨론의 결말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바벨론이 모든 민족에게 행한 모든 악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이 악으로 쌓은 것들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시는 공의의 심판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강대국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이 불일 듯 정복을 하고 있는 당시에 하신 말씀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처음 질문을 시작할 때의 부정적인 모습과는 너무 상반된 모습으로 변화된 하박국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을 들은 하박국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마음이 가득 차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대답을 듣게 되면 하나님 영광만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14절)
하나님 말씀이 그의 마음에 가득하자 불같은 믿음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박국은 이제 하나님께 나아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래에 대한 새 희망으로 가득한 기대와 찬송이 울려 퍼지는 기도가 시작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살면서 탄식할 일이 많은 날들을 지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께 나아가 질문을 하고 광명의 빛이신 그분의 대답을 들으십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인정하는 마음이 다시 창조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3. 하나님 한 분 만으로 기쁘고 즐거운 마음
1장 초반에서의 하박국 선지자의 모습은 하나님을 자기의 지식과 판단으로 알고, 믿으려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탄식에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의한 현상들을 보며 분노하는 우리 모습이 보이고,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들을 방관하실 수 있지? 하는 의구심과 회의가 들어차는 우리의 감정이 이입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확실히 육체의 정욕으로 하나님을 믿으려는 태도가 틀림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하박국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감정으로 하나님을 믿으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함을 하박국에게서 배우기를 축복합니다.
반면에 하박국에게서 얼마든지 배워야할 좋은 점은, 무슨 일이든지 이해가 안 될 때 그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화가 나서 따지려고 나아가도 됩니다. 어떤 악이라도 다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허락되었음을 오늘 하박국에게서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또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너무 미운 원수를 혼내 주시라고 요청하러 나가도 됩니다. 내가 할 수 없으니 나를 대신해서 누군가를 죽여주시라고 말씀드리러 나가도 됩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나아가 자기의 원수를 저주해 달라고 시편 19편 4절에서 15절은 구구절절이 기도드립니다. 당사자, 직업, 자녀, 아내, 재산, 조상들까지 정말 지독한 저주를 퍼부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런 다윗인데도 하나님이 그들 얼마나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셨습니까? 다윗을 포함한 모든 인생이 다 죄와 허물로 가득한 죄인들일 뿐임을 하나님께서 다 아십니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죄인과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죄인을 기뻐하시고, 나아가지 않는 죄인은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죄인은 긍휼을 얻고 생명을 받지만, 나아가지 않는 죄인은 자기 죄를 지고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박국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죄인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불만과 분노로 가득했던 하박국이 하나님을 대답을 듣고 새로운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서의 시작이 듣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한 불만이었다면,(1장 2절)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믿음의 고백이 되어 하나님을 향한 찬양으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사실 하박국 앞에 펼쳐져 있는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여전히 왕과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탈취해서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있고, 막강한 마병과 철제 무기를 동원한 바벨론은 남유다를 집어삼킬 듯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먹을 것조차 하나도 없고, 불안과 공포만 가득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7절을 보니, 무화과나무에 바짝 마른 가지만 매달려 있고, 포도나무도 열매를 맺지 못했으며, 올리브도 열리지 않았고, 밭의 채소들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우리에 양도, 외양간에 소도 다 바벨론 군사에게 뺏기고, 세금으로 탈취당했습니다.농업과 목축업이 생업이던 유다백성들은 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18절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고 선포합니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 현실의 악행과 부조리한 일들이 그의 마음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악행이 난무하는 현실을 보고 분노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전히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지옥처럼 처참한 고통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입니다만, 그러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하박국은 더 이상 현실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9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힘이 되어주신 사람으로 변화된 하박국의 노래입니다. 자기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발은 사슴의 발과 같이 힘 있고, 단단하며, 생명력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맹수들의 추격을 피하며 높은 산 바위틈을 달리는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즐겁고 기쁜 마음이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의롭지 않은 것이 보편화된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그런 일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로 우리 마음을 토로하는 자세를 하박국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우리와 대화하시기 위해 항상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대화인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악인을 하나님의 때에 영원히 멸망당하게 하시는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다시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말씀을 듣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의 새 힘이 되어 주시고, 악을 극복하고 높은 곳을 다니는 사슴과 같이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게 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박국과 같은 믿음으로 삶의 모든 불공정함과 부조리를 하나님께 토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대답을 반드시 들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변화시켜주시고 높은 곳으로 다니며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시는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입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박국과 같이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하여 즐겁고 기쁜 교회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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