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 인생이 복이 되는 이유
▣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주님
시편 42편 1절 ~ 5절
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어느새 푸르른 달 5월, 가정의 달 5월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구성원은 가족인데, 혈육으로 맺어진 가족은 사랑을 체감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사랑을 가족에게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가족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며 섬기고 계실 줄 믿습니다. 곁에 계신 가족에게 이렇게 인사하시며 다짐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사랑하며 섬기도록 애쓸게요.” 여러분의 고백대로 더욱 사랑하며 더욱 잘 섬기는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코로나19 앞에서도 ‘가는 세월 막을 장사 없다’는 속담대로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도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살아 숨 쉬는 동안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인생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좋은 일도 많고, 나쁜 일도 많은 우리네의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기댈 언덕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온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육체의 부모님보다 더 완전하고 큰 사랑으로 기댈 곳이 되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바로 그런 분이심을 항상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우리를 지키시는 분임을 시편 121편은 노래합니다.
시편 42편의 시인 역시 감당 못할 만큼 지치고 아픈 마음일 때 하나님께 기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를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믿는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힘들고 지친 인생길을 가는 우리에게도 새 소망이 불일 듯 일어나게 해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자기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 인생이 복이 되는 이유
시편은 다섯 권의 묶음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시편 42편은 제2권의 첫 번째 시입니다. 42편에는 고라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고라”는 광야시대에 모세와 아론의 제사장 직분에 반기를 들었다가 하나님께 심판받고 산채로 땅에 끌려 들어간 사람입니다. 고라와 함께 당을 지었던 무리가 다 함께 죽었으나 어린 아들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 아들들이 자라서 성전 문지기와 성가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지파로서의 봉사의 직분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들 마음에는 “고라” 족속이라는 이 이름이 주는 의미가 늘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징계 받은 고라의 후손이라는 주홍글씨가 그들의 정체성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럼도 불구하고 그들이 레위자파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기댈 언덕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더 겸손한 마음, 더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의 직분을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 고라와 같이 제사장직분을 다시 탐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사장 직분은 아론의 후손에게 성전 문지기와 성가대 직분은 고자의 후손에게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사람의 본분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라의 자손들은 이 본분을 잘 지켜나가는 충성된 직분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서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기의 본분을 잘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에 귀한 사람도 지으시고 천한 사람도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의 위치보다 다른 사람의 위치가 더 귀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자기에게 주시지 않은 위치에 서려다가 멸망당한 고라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의 본분을 잘하는 것이 자기 계획을 성취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귀하고 중요합니다. 고라 자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자기가 계획한 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지 않습니다.
본문의 고라자손은 자기가 스스로 고라자손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닙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손으로, 아론의 자손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보다 명예롭지 못한 족속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프고 쓰라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겸손히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은총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꽃길인생만 걸어가지 못하는 현실을 비통해하시지 않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만약에 우리 삶이 꽃길만 걷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일생을 마무리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듯이, 쓰리고 아픔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시인 역시 아프고 시린 자기 영혼의 상처를 갈증으로 허덕이는 목마른 사슴에 비유했습니다. 속이 마를 정도로 목마른 상태가 “갈급”이요, 간절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는 마음이 “갈망”입니다. 이 두 단어는 시인이 하나님께 바라고 소원하는 모든 것이 다 끊어진 상태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다른 것에 대한 갈급과 갈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시인은 고백입니다. 냉수 한 사발로 해결할 수 있는 육체의 목마름보다 더 간절한 영적 목마름에 헐떡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도 그와 같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갈급함, 갈망을 가지게 될른지요?
사람이 자기 계획대로 모든 것이 잘 되어갈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총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때,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자기 인생에 대해 “왜?”라는 깊은 심연의 질문을 하게 되고, 그 질문은 무능한 자에게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한없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는 나의 인생이 오히려 내게 복임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내 뜻대로 되어가지 않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우리 신앙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주님
인생이 거듭 자기 계획대로 되어가지 않을 때 우리는 마음이 상합니다. 본문의 고라자손도 마음이 많이 상한 상태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편 42편은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이 거듭 상하고 거듭 아픈 상황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사람들의 조롱이 시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4절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인해 시인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하나님을 조롱하고, 예배를 드릴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시는 아마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상황에서 지은 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5절은 비록 그런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의 하나님을 기대하라고 자신을 격려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당하고 사로잡혀온 바벨론에서의 유다 백성들은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고통을 체험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드렸던 아름다운 찬양을 바벨론 사람들 오락의 유흥을 위해 부르라는 요청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얼마나 그들의 가슴이 저미는 슬픔이겠는지요. 시편 137편은 바벨론에서의 유대인의 슬픔과 고통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있다면, 너희가 어찌 포로 잡혀왔겠느냐”고 계속 조롱당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이와 비슷한 조롱을 안 들어 본 성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성도들이 가난하게 살고, 좋지 않은 사고를 당하면 주변에서 이런 조롱이 반드시 들려옵니다. 우리를 조롱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이기에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을 주곤 합니다. 저도 한 때, 비슷한 말들을 들어야 했고, 너무 마음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망해도 망해도 너처럼 망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자기를 믿는 사람을 이렇게 망하게 하는 신이 무슨 신이라고 믿느냐? 너희 가족이 예수 믿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나도 언젠가는 교회에 다녀야지 하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너처럼 망하게 될까 봐 무서워서 절대로 예수 안 믿을 란다.’ 제가 망했다는 조롱보다, ‘하나님이 왜 그러냐?’, ‘너 때문에 예수 안 믿겠다’는 말이 너무 가슴 아프고 괴로운 거지요. 고라 자손의 심정도 그랬을 것입니다.
게다가 고라자손은 성전 문지기요, 성가대로서 성도들의 예배를 돕던 봉사직분을 받았습니다. 즐겨 섬기던 예배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너무 슬픈 고라자손입니다. 봉사직은 돕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기쁘고 즐거워서 자원하여 섬기는 천사의 직분입니다. 천사가 천사의 일을 못하게 되니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지요. 더구나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섬기던 고라 자손의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라자손은 낙심하고 슬퍼하는 자기 영혼을 향하여 외칩니다.
조롱당하여 지치고, 슬프고, 낙심한 자기 영혼에게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하나님을 찬송하리라” 외칩니다. 이런 반전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 아니요,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의 현실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자기 주변의 상황을 바라보던 눈을 들어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때에 세상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과 그분이 정하신 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름다운 예배를 받으신 때도 하나님 정하신 것이요, 바벨론에 사로잡혀와 조롱과 멸시를 당하는 때도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의 도우심을 소망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좋은 것을 주셔야 하나님이시고, 힘들고 고된 것을 주시는 하나님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 수 없는 우리는 우리의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다 하나님이 정하셨음을 인정하며 그분을 바라고 그분의 도우심을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상한 심령에 성령이 오셔서 영혼이 새롭게 되게 해 주십니다. 상한 심령이 위로를 받고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 새 힘을 얻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힘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의 계획과 생각대로 되어가지 않습니다. 자기 계획대로 척척 되어가는 인생은 자기가 사망의 길로 가고 있어도 깨닫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달려가던 사망의 길에서 우리를 멈춰 서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들어서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막히고 끊어진 것처럼 보일 때,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때에 말씀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의 상한 심령에 성령을 보내셔서 위로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생명의 길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홀로 있는 것 같아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이 항상 함께 계셔서 지치고 상한 우리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다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는 영혼으로 거듭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거듭난 그 영혼이 다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성령께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5절 말씀을 봉독 하겠습니다. 시편 42편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고백이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낙심 될 때마다, 근심 걱정으로 불안해질 때마다 여러분의 영혼에 울려 퍼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주님 바라보는 복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성경 >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하는 교회 (0) | 2021.05.17 |
---|---|
온전한 기쁨 (0) | 2021.05.08 |
고난 가운데 빚어지는 영적 성숙 (1) | 2021.04.25 |
은혜와 자비의 베데스다에서 주님을 만납시다 (0) | 2021.04.17 |
주님의 참 일꾼이 되는 길 (0) | 2021.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