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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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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은혜

▣ 인내심이 없는 사람들

▣ 기다림 속에 얻는 은혜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은혜

 

시편 123편 1절 ~ 2절
1.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성경은 문자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말을 문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문자가 실재는 아니지요? 문자는 실재를 가리키는 기호일 뿐입니다. ‘하나님’ 이 단어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기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이 글귀 역시 실재를 가리키는 기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단어들이 가리키는 그 실재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제대로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것은 문자가 가리키는 그 실재 앞에 서는 것이며, 문자가 가리키는 실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눌 때 성경이 말씀하는 그 사건 속 안에 서서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목할 내용은 2절 하반절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 나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베풀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고백입니다. 믿음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가져다주는 유익은 무엇인지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기다림이 가져다주는 은혜
성경에 보면 기다림을 통해 은혜를 받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의 기다림 끝에 결국 아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나온 아브라함은 약속의 아들을 얻기까지 무려 25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아들을 하나님은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이삭은 일생 중 최대 위기의 순간에 놓였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박차고 일어나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약속의 아들로 주셨기 때문에 죽음의 최후에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붙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믿고 인간적으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려는 아버지의 심정도 처참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입장이었다면 100세에 얻은 자식을 하나님께서 제물로 받치라고 시험했을 때 과연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삭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우리는 과연 이삭처럼 하나님을 믿고 인내할 수 있었을까요? 아브라함과 이삭이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이삭의 인내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순종과 기다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한 힘든 과정을 통과한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께 복을 받기에 충분한 순종적 인내였던 것입니다.

요셉은 17세 나이에 형제들에 의해서 노예로 팔렸지만 13년 동안 노예 생활과 감옥생활을 하며 마음에 품은 꿈을 버리지 않고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기다렸습니다. 자기 앞에 벌어진 현실에 좌절하고 낙심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허무한 마음으로 종살이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은 꿈을 매일 같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기다림이 요셉의 꿈을 인도하였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가정의 총무가 되었으며, 감옥에 들어가서는 감옥 총무가 되었고, 바로에게 등용되었을 때에는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40년을 기다림 끝에 300만 이스라엘 백성을 430년 동안 종살이 하는 애굽에서 출애굽 시켰습니다.모세는 도망자의 신세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바람과 햇빛과 모래만 가득한 광야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광야에서 기다림의 훈련을 통해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우리게 되었습니다. 40년이라는 긴 기다림의 기간을 통해 80세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원리는 인내심을 갖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한 다음에 믿음으로 기다리지 않고 돌아가 버리면 하나님의 응답은 거기에서 그치고 맙니다. 하루가 되었든 이틀이 되었든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면 반듯이 응답이 있다는 것을 믿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인생에 고난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겨울철에 주변을 둘러보면 산천이 다 눈으로 덮여 생명의 기운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땅속에는 많은 생명들이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봄이 되면 마치 죽었던 것 같았던 자연에서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 들리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기다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이 죽은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결국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처럼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며 인내하여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의 은혜를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내심이 없는 사람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지 못해서 잊어버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러 시내 산에 간 사이에 기다리다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을 협박했습니다. 그 협박을 감당하지 못한 아론은 백성들이 내놓은 금붙이를 모아 황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황금 송아지를 보며 신이라고 절을 하고 광란을 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돌 판을 던지며 크게 노했고,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여 이스라엘 백성 3000명을 벌하시고 죽게 하셨습니다.

기다림의 인내심이 없으므로 인하여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조급함이 앞서 오직 제사장만이 감당해야 할 제사를 자신이 주도함으로 비극적인 인생의 결과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한 사울은 하나님이 주신 왕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 닥친 일 앞에서 하나님 하실 일에 대하여 기대하며 꿈꾸고 바라보고 기도하면서 즐겁게 믿음의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가 왔을 때 낙심하여 좌절하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기다리지 않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며 인내하지 않습니다. 왜? 빨리 응답하시지 않으시지 하며 조바심을 갖습니다. 하나님 너무 늦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닌가? 등의 이유로 기다리지 못하면 결국 응답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십니까? 물론 즉시 응답해 주실 때도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어놓은 것은 우리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밖에 여러 가지 일들은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꼭 필요할 때 도움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앞서가려는 저와 여러분이 되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기다림 속에 얻는 은혜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은혜
기다림의 시간 끝에 얻어지는 은혜가 있지만 전혀 기다리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기다리지 않고 구할 수 있는 은혜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2천 년 전에 몸 찌기고 피 흘려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했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이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감사 찬양을 하면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2천 년 전에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대가를 다 지불했기 때문에 병 고침을 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병이 고침을 받은 것을 받아들이고 마귀를 쫓아내고 건강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받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은 이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다릴 필요 없이 앉으나 서나 늘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다. 나는 형통한 사람이다.”라고 고백하며 이미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또 천국가기 위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곧장 예수님의 손잡고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우리가 갈 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되며,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이 나중에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의심치 말고 믿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해는 기도하고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가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으로 소원을 주시고, 그 걸음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때 마음에 강렬한 소원이 생기면 그 길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시행해도 좋습니다. 응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다가오고, 소원이 생기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생각은 평안이며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와서 부르짖어 기도하면 들을 것이요, 구하고 찾으면 만날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때까지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지도 말고 너무 늦게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참 좋으신 하나님을 기다리고 바라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여 섬기며 기다리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고 일을 성취하여주시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면 4차원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손을 잡고 3차원인 우리의 개인, 가정, 사회생활을 변화시키고 창조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캄캄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문제 위에 성령이 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인생을 4차원의 인생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므로 “외롭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라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믿음 안에서 기다리며 나아가는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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