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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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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집스러운 자아를 꺾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며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가운데 쓰임 받는 유익한 도구로 거듭나야 합니다.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시편 23편 4절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사사가 세워지고 왕이 세워지고 또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등 여러 통치의 체제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셨습니다. 사사도, 이스라엘의 왕들도, 다른 나라의 왕들도 모두 하나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그들의 흥망성쇠 역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에 의해 왕으로 세워진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왕이라고 평가 받는 다윗조차도 그의 죄로 인해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므로 성경은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아야 하고 미래를 예측해야 합니다. 역사는 시간을 넘어 현재와 접목되었을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사람 또한 고집이 꺾어져야 가치가 있게 됩니다. 농부는 소에게 코를 꿰뚫어 길들입니다. 기수는 말을 타기 전에 조련사를 통하여 말의 고집을 꺾어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집스러운 자아가 꺾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우리의 고집스러운 자아를 꺾기 위해서는 늘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며 살아야합니다.
왜? 우리는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나요? 말씀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란 예배에서 선포된 말씀과 개인의 말씀 묵상에서 깨달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예배의 말씀과 개인의 말씀 묵상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 말씀이 우리 육신에 녹아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내 삶이 거듭나야, 가정이 거듭나고, 사회가 거듭 나고, 세상이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어떤 것으로도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이 세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린 늘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거하십니까? 아니면 늘 자신의 자아로 살아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죽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토록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왜? 때때로 우리를 고통 가운데 몸부림 칠 수밖에 없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경험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내 자아를 성찰하고 집착에 가까운 고집을 내려놓으므로 조금씩 성숙해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좋은 환경, 그리고 삶이 순탄할 때,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난이 다가와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자아가 살아있어 기고만장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면 자신이 형편없는 무능력자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됩니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아를 성찰할 때 그 고난이 자신에게 유익임을 느낍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이 축복임을 시편 66편 10~12절에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고난이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는 유익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세상 가운데 쓰임 받는 유익한 도구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가 왜?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일까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우리의 본성이 교만해졌기에 반드시 거듭나야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확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성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요나를 니느웨 성으로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헛된 우상을 섬긴 니느웨성 사람들의 구원을 바라지 않는 요나는 하나님을 피해 다시스로 향하는 배에 오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나의 고집을 꺾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다 위에 큰 풍랑을 일으켜 습니다. 모두 두려워하며 이렇게 풍랑이 이는 까닭을 찾던 중 요나가 하나님을 피해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다에 바람과 파도는 점점 거세졌씁니다. 두려워진 뱃사람들은 요나에게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질지 묻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바다가 잔잔해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요나를 바다에 던졌고 바다는 잔잔해졌습니다.하나님은 매우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합니다. 요나는 삼일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 갇혀있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삼일 밤낮을 갇힌 요나는 좌절하여 자기의 생각과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고, 하나님 앞에서 크게 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집스러운 자아를 꺾으신 후에야 당신의 그릇으로 사용하십니다. 거듭나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럽지만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서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을 도구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온 고난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 견디고 통과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로 거듭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무엇을 뜻합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말합니다. 지팡이를 의지해 길을 가듯, 주님 주신 지혜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집스러운 자아가 완전히 깨어져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쇠하든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 그런 사람의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지팡이는 영혼의 생명이 되며 우리의 인생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는 하나님의 지혜인 것입니다. 사무엘 상 25장에 보면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피해 살아가고 있을 때, 마온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어리석고 행실이 악한 나발이고 다른 한 사람은 아름답고 총명한 그의 아내 아비가일 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광야에서 도망 다니는 동안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사무엘이 하나님 품으로 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늘 기도하던 사무엘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은 영적 위기를 맞게 됩니다.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울이 자기를 다시 추적할 것이라 판단한 다윗은 바란 광야의 마온이라는 동네로 피합니다. 바란 광야의 마온이라는 동네에 나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는 삼천 마리나 되는 양을 소유한 재산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나발의 목자들이 갈멜에서 양 때를 돌볼 때 그들을 보호해주었을 뿐 아니라, 나발의 소유 중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러한 인연이 있었던 것을 나발에게 말하고 식량을 내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라며 부하들을 나발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나발은 다윗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라며 조롱합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장수 다윗을 몰라서도 아니고, 더욱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는 다윗을 주인에게서 도망친 종으로 비하한 것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빈손으로 돌아와 나발이 한 모든 말을 다윗에게 전합니다. 크게 분노한 다윗은 자신의 호의를 무시하고 모욕한 나발을 응징하기로 결심합니다.

다윗은 그의 무리 600명 중 400명을 거느리고 나발에게 향했습니다. 다윗은 나발에게 받은 모멸감과 수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결심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원수를 갚지 말라는 말씀과 보복하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므로 나발의 일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데 다윗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칼을 든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나발의 하인 중 한 명이 안주인인 아비가일을 찾아와 “다윗의 무리가 자신들을 선대 했고 밤낮으로 지켜주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발이 다윗에게 감사는커녕 다윗을 무시하고 조롱했기에 다윗이 나발과 그의 온 집을 멸하기 위해 지금 오는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온 집안이 위기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이 위기를 막기 위해 급히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보냈습니다. 음식을 보낸 후에 나귀를 타고 뒤따라가던 아비가일은 도중에 다윗과 그 무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마자 급히 나귀에서 내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 앞에 엎드립니다. 외적으로 보면 다윗은 도망자 신세 아비가일은 부자의 아내입니다. 현재는 도망자 신세인 다윗이지만 아비가일은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이 다윗을 통해 큰 일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실 것을 바라보았기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다윗은 극도로 분노한 나머지 나발뿐 아니라 그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를 죽이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이 일을 미루지 않고 다음 날 아침까지 속히 해치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맹세는 그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흥분하여 감정에 휩쓸려 결정을 내림으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범사에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신중히 판단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내 주여’라고 부르며 겸손히 예를 갖추었습니다. 남편의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고 남편은 원래 어리석은 자라서 이 같이 행동한 것이라고 비하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았다면 다윗의 사람을 무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밀하며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무엇보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직접 나발을 치는 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다윗이 나발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 그 자신의 분노가 앞선 행동이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처럼 한편으로는 남편을 낮추고 다윗을 높이면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상기 시키면서 다윗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도와주었습니다.아비가일은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가는 참 신앙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모든 잘못은 나발이 했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기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하면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습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너 때문이라며 남 탓을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아비가일처럼 “내 탓이라고” 말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집니다. 나발은 다윗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비가일은 지혜롭게 행동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우리는 나발과 같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아비가일처럼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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