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 감사하는 사람이 구원의 은혜를 입습니다.
시편 50편 23절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주님을 사랑하시는 분은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 년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돌아보며 추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경적인 근거요, 다른 하나는 영국의 청교도들에 의한 유래입니다.
성경적인 근거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을 추수 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수장절이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매 년 세 차례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절기들은 무교절(유월절, 겨울), 맥추절(오순절, 봄), 수장절(초막절, 가을)입니다. 각각 다른 계절에 지켰던 명절이지만, 모든 명절의 공통분모는“하나님께 감사”였습니다. 다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웃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명절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명절에만 하나님께 감사하면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178번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서 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상에서의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감사는 어때야 하는 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영어로 ‘감사(Thank)’는 ‘생각(Think)’이라는 단어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유래는 ‘사람에게 생각이 있기에 감사도 할 수 있음’을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생각 없는 시체와 다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다”라는 말을 많이 할수록 “사람답다”는 평가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감사 찬송을 드릴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10:31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추수감사예배에 이것을 확실히 마음에 새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값비싼 제물로 영광 받으시는 분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리의 마음과 입술로 감사 찬송을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시편 69편 30~31절에서 다윗도 감사 찬송을 기쁘게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황소보다도 다윗의 진심어린 감사 찬송을 더욱 기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진실한 마음의 감사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진심어린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몰라 답답해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노력도 합니다. 작정 기도도 해보고 누군가에게 상담도 해봅니다. 그런데 작정 기도하지 않아도, 믿음의 선배들에게 상담을 받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범사에 그저그저 감사하십시다. 우리가 범사에 드리는 감사의 제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린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2. 감사하는 사람이 구원의 은혜를 입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예수님을 찾아온 열 명의 나병환자가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로 가던 길에 다 같이 깨끗하게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7절부터 19절에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도 자기의 불치병은 치료받았지만, 영혼 구원은 받지 못했습니다.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구원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도 같은 말씀을 합니다. “행위를 옳게 하는 자”는 바로 “감사로 제사 드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를 말한 것입니다. “행위를 옳게 하는 자”와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를 동격으로 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옳게 행동하지 않는 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지요? 하물며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도 감사의 사례를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는 “자기의 행위를 옳게 보이는 태도”임을 함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그 옳은 행위는 하나님의 구원을 계속 체험하는 은혜를 계속 받게 합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다시 또 감사로 예배드리는 옳은 행위를 반복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현대 개신교회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미국을 건설한 영국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영국 국교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갔던 사람들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신앙의 박해는 없었지만, 자녀들이 세속적인 영향에 물들어 신앙에서 멀어지는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기독교 국가를 직접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신대륙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의 신앙만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모습은 이런 것이라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초기에 정착한 보스턴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 언덕을 보면서 예수님 말씀대로 세상을 비추는 빛의 동네를 세우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동네를 세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에 의해서 미국 보스턴에는 Beacon Hill이라는 유서 깊은 주거지역이 생겨났습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은 어떤 역경에도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600년이 지난 오늘, 그들의 신앙은 우리에게 여전히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는 세대들에게도 같은 감동으로 청교도적 신앙도전을 주게 되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2022년 올 한 해도, 우리에게 여러 역경이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체험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코로나 19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골치 아픈 문제가 지금도 남아 있기도 합니다. 치료되지 않은 영육 간의 질병과 여러 형편으로 괴로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풀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로 제사 드리는 신앙,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신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직 그저그저의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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