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으로 오신 예수님
▣ 믿음의 본질이신 예수님
▣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되는 믿음


요한복음 12장 46절 ~ 50절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날마다 우리에게 오셔서 은혜와 사랑을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여러분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생각해 보실까요?
하나님께서 세상 무엇보다도 사람을 가장 귀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중요한 행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순서를 맨 끝에 배치해서 피날레(finale)를 장식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모두 창조하실 때, 맨 나중의 피날레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살기에 조금도 부족한 없는 세상을 다 만들어 놓은 후에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마치 산모가 아기를 분만하기 전에 아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듯이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오직 사람만 하나님 형상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다며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닮은 자녀를 안고 기뻐하듯이 하나님 형상을 닮은 사람을 크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오셔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이유입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과 저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하나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항상 기억하시며 “나는 하나님이 가장 아끼는 하나님 자녀야!” 자신에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힘들고 지칠 때, 왠지 초라해질 때, 두 팔로 자신을 이렇게 안으시고 “나는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하나님 자녀야” 다독다독하십시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충만하게 임하여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곁에 계신 지체를 이렇게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하나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하나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닮은 여러분은 무엇을 가장 귀중히 여기십니까?
누구나 하나뿐인 자기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위하여 돈, 명예, 학문, 건강 등 모든 투자와 수고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도 여전히 공허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본래 하나님과 교제하며 풍성한 복을 누리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자 죄가 들어와서 이 교제를 끊어 놓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행복도 사라지고, 만족도 사라진 인간 실존의 허무를 가져왔습니다.
풍성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 분리되어 자기 좋은 방법대로 살아가는 존재로 타락시켰습니다.
가장 귀중한 자기 생명조차 질병과 사망에 내어 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세상은 점점 더 흑암과 혼돈의 어두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1. 빛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인류의 죄로 인해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빛은 태초의 흑암과 혼돈을 사라지게 한 창조적인 생명의 빛입니다.
창조적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가장 귀한 자기의 생명을 얻습니다.
세상이 주는 돈으로도 힘으로도 재주로도 출세로도 얻지 못하는 귀한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빛 안에 있는 생명을 얻은 사람도 생명의 빛을 세상에 비추게 하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가로등 불빛이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듯 예수님의 빛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100달러 지폐에 인쇄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가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좋은 등을 하나 준비해서 집 앞에 선반을 만들고 그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등불을 집 밖에 두는 것은 낭비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사람들은 뭔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집 밖에 켜진 등불로 인하여 밤에 지나가는 사람이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도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좋게 생각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기 집 밖에 등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길거리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로등의 시작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끼친 선한 감동과 감화로 다 함께 불을 밝히자 온 동네의 어둠이 물러갔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한 사람의 선한 행동에 많은 사람이 감동과 감화를 받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을 모든 믿는 자에게 비추어 죄의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어두운 죄를 물리치게 해 주십니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물리치고, 밝은 빛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제가 성령세례를 받던 날을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합니다.
죄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일들이 사망에 이르는 죄였음을 깨닫고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빛이 임하면 어둠의 일들이 드러나고 깨달아집니다.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저지르던 죄의 길의 끝을 예수님의 빛이 보여줍니다.
죄의 어둠의 끝은 영원한 심판과 닿아 있음을 보여주셔서 심판을 피하도록 회개하게 해주십니다.
온 세상을 비추는 예수님의 빛으로 저와 여러분에게서 모든 죄의 어둠이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2. 믿음의 본질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것은 단순히 표적을 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보는 것입니다.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은 메시야로서의 수많은 기적과 이사를 보이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더 많은 표적과 이사를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기는 커녕 귀신 들렸다고 비아냥거리며 시기하고 대적했습니다.
37절에서는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고 또 예수님은 믿음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요한복음 12장 44절과 4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보는 것은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되어 믿음을 주시는 근원이 되셨음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믿어도 그 믿음을 들킬까 두려워했습니다.
믿음을 숨기는 소극적인 태도는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믿는 마음과 입술의 고백이 함께 해야 진정한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믿는 바를 입으로 시인하지 못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아닙니다.
또한 야고보 사도는 믿음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이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 제자들에게 믿음으로 행하는 모습을 친히 보이며 함께 지내셨습니다.
무시로 기도하시고,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서 고쳐주시고, 굶주린 군중을 불쌍히 여겨서 떡을 먹이시고,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진리요 생명의 길로 행하는 믿음의 모습임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제자들이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어둠에서 벗어나 구원받고 영원한 생명 길로 가야 합니다.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의 빛을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의 본질은 예수님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고 따라가는 사람 안에서도 보여지는 것입니다.
3.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되는 믿음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을 듣고 지키지 않을지라도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지 심판자로 오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도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도 주셔서 그 속에 생명이 있게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를 살리심과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를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됐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가 되어 세상 구원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공통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려는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그대로 전달했으니 예수님 말을 들은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거부한 사람은 곧 하나님 명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했으니 그 명령이 그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4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지키지 않을지라도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48절에서는 말씀을 받지 않는 자, 예수님을 저버리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즉, 심판은 말씀을 듣는 시점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믿었지만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과 예수님의 말을 듣고 믿지 않은 자, 예수님을 무시하고 저버린 자는 완전히 다릅니다.
믿고 순종하지 않은 자는 회개할 수 있지만, 멸시하고 대적한 자는 회개할 여지가 없습니다.
심판과 구원의 기준은 하나님의 명령인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느냐와 저버리고 믿지 않았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 적도 없는 마지막 날의 심판이 있을지 없을지 어떻게 믿느냐고 말합니다.
우리가 한 달 뒤의 세상을 볼 수 없다고 해서 한 달 뒤의 세상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마음의 기쁨이나 분노를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서 감정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주목하라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잠깐이요, 전부가 아니었음을 모든 인생이 깨닫게 되는 날이 옵니다.
육체의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낄 때 사람들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세상이 영원할 것처럼 믿고 육체를 따라 살아간다면 후회만 남는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어느 백발의 노인이 인생을 다 경험한 후, 자기 인생에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빠른가를 청년들에게 이렇게 훈계했다고 합니다.
“내가 응애응애 울고 있던 어린 시절에는 시간이 마치 기어가는 것처럼 천천히 지나갔다.
내가 꿈을 꾸고 이야기하던 청년 시절에는 시간이 빠른 걸음처럼 지나갔다.
내가 완전히 성인이 되었을 때는 시간이 마치 뛰어가는 것처럼 지나갔다.
내가 장년이 되어 능력을 나타낼 자리에서 활동했을 때 시간은 마치 구름처럼 날아가 버렸다.
내 머리가 흰색으로 변하여 노인이 된 지금엔, 시간은 이미 나에게서 지나가 버린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나가고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이르기 전, 영생 구원의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모두 다 믿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빛으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가장 귀한 우리의 생명이 구원받도록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해 오셨습니다.
생명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영생을 전파했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명령이신 예수님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고 영생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영생의 말씀인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자들은, 자기가 거부한 말씀 자체가 마지막 날에 자기를 심판하는 기준이 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 구원의 복음을 전파할 때, 그 복음을 듣는 사람마다 다 믿고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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