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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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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 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바리새인, 산헤드린공회원, 최고의 지성 가말리엘 랍비에게서 배운 문하생, 에브라임 지파인 사울은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메시야라고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권세를 기세등등하게 휘두르던 박해자였습니다. 유대교인 중에서도 가장 열심이 특심인 유대교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던 사울은 그를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9장 다메섹도상에서의 체험은 육의 사람 사울을 영의 사람 바울로 변화시켰습니다. 이후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사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유대인으로서의 모든 특권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습니다. 그는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대인 귀족의 삶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 것을 선택한 사울입니다.

 

그 결과 남은 평생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며 살다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참수를 당해 죽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던 바울, 그 믿음에 대한 고백의 진수가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믿음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원합니다. 

 


1.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에 자신도 함께 못 박혔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자신도 부활했음을 믿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온 몸의 물과 피가 서서히 빠져 나가서 탈진되어 죽을 때까지 매달아두는 무자비한 형틀이었습니다. 아무 흠도 없고 죄도 없으신 예수께서 참혹한 십자가 형벌을 받으신 이유는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실 대속제물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처참한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혀 죽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사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은 사람들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나”는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내가, 내가, 나, 나”가 살아서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만 행복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합니다. 아무 흠도 죄도 없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대속하시며 십자가 형벌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도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의 메시야이심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초대교회를 이끌어가던 사도들조차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잊어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상태의 사도들에게 가차 없는 책망을 날려 보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1절부터 14절에서 바울은 베드로 사도를 책망한 일이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에 왔을 때, 안디옥 교회의 믿는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보낸 유대인들이 안디옥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을 금한 유대 율법이 생각나서 베드로가 급하게 자리를 피했습니다.

 

수석 사도인 베드로가 하는 행동을 따라 몇몇 유대인과 바나바까지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베드로 일행의 위선적인 모습을 책망했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유대교의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 의로운 것처럼 보이도록 행동하느냐고 책망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일지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은 삶의 모습을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았기에 사도들에게조차 여전히 살아있는 육체의 본성들이 나타났으니 우리 같은 존재들이야 얼마나 더 자아가 살아서 벌떡거리며 춤을 추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자기 부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 부인이 없는 사람,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자기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보다는 남의 시선에 더 예민하고, 자신의 성공을 더 기뻐하며, 세상이 주는 재미가 더 기쁘고 좋게만 느껴집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예수님은 사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삶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에 주인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주인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해방의 기쁨도, 구원의 감격도, 하나님의 임재의 기쁨도, 천국의 기쁨도 맛보지 못하고 영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 뿐입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느라 하나님도 이웃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사도 바울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라고 선포를 해야 합니다. 이 선포는 ‘나는 죽고 없습니다’라는 진실 된 믿음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 고백이 믿음의 토대가 되지 않으면, 결코 성장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잘났음을 부인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 주의하며 순종의 길을 선택하십시다. “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나를 못 박았으니, 나는 죽고 없다”고 순간순간 선포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2. 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되면, 그리스도께서 대신 살아주시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육체의 정욕대로 살던 자연인의 삶을 끝내고 거듭난 새 새사람의 삶을 살게 도와주십니다. 그런 모습을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혼자 사는 삶이 아닙니다.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시고, 견디고, 이기게 해 주시는 삶입니다. 내 안에 내가 계속 살아 있으려고 발버둥 치면, 그리스도는 그 만큼 내 안에서 멀리 떠나계십니다. 나 혼자 살 때는 내가 생각한 대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 낭패를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내 자아가 사라지면,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되고, 나를 그분의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때에 지금껏 내가 의지하던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의지하게 됩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때에 내 삶의 중심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영생을 주시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는 진정으로 나의 주인이시며, 결단코 아무도 나를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실 분임을 믿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실 때에 “영생”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임을 믿는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다는 것은 오직 나의 주인이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할 뿐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 순종의 삶이 진정한 행복이고, 참된 보람이며, 구원받은 사람다운 삶임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도록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당연히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0절은 구원뿐만 아니라 다른 목적이 더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든지 주님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항상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자나 깨나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위하여 죽으셨다고 합니다.

 

항상 함께 살고 싶은 사랑으로 죄 뿐인 우리를 예수님이 사랑하셨다는 그런 사랑을 우리는 깨달을 수도 알 수도 없습니다. 악한 죄인들과 항상 함께 살고 싶은 그런 사랑을 우리는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울은 그 역설적인 주님의 사랑을 체험적으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0절 하반절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바울이 육체 가운데 살고 있는 이유는, 죄인을 사랑하사, 죄인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기 위함이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전에는 육체의 능력과 축적된 지식으로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죄인이었다면, 이제는 죄인을 사랑하사,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으시면서 까지 구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의인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오직 “의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선포를 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의인이 되려면 바울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함을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유대교 열심당원이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율법사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멸절시켜야 한다는 종교적 열심을 최고의 신앙 덕목으로 알았던 사울이었습니다. 그랬던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신 주님은 사울을 그리스도인 바울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믿은 그날부터 변화된 사울은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다. 온 교회와 성도들에게 존경을 받는 베드로 사도일지라도 외식하는 믿음을 보였을 때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잘못을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신칭의 [以信稱義]의 올바른 믿음으로 살도록 성도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특정인에게 보낸 서신이 아니라 온 교회-갈라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여러 교회에 보낸 회람서신인 갈라디아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확언하기 위한 편지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라는 것, 그리스도인 안에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사신다는 것,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 1세기 중엽에 사도 바울은 이 중요한 믿음의 원칙을 전파하기 위해 수고로이 다니며 그리스도인으로 살라고 가르치기도 했고 편지도 보냈습니다. 21세기 초엽을 사는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여전히 열정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임을 믿습니다. 결코 자기 자아를 주님 앞에서 주장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분의 거룩하심이 나를 통해 나타나도록 그 분에 말씀에 순종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삽니다. 나의 어떤 의로운 행위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로움을 대체하지 못함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있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하여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 받기를 결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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