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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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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어디에서? 

무엇을 찬양합니까? 

어떻게 찬양하는가? 

언제 찬양합니까?


시편 150편 1절 ~ 6절 
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의 제일 마지막 장인 150편은 전체가 6절에 불과한 짧은 시지만 <찬양>이라는 어휘가 무려 11회나 등장하는 <찬양의 시>입니다. <성소에서 찬양>, <궁창에서 찬양>, <능하신 행동을 찬양>, <위대하심을 찬양>, <나팔소리로 찬양>,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 <소고 치며 찬양>, <현악과 퉁소로 찬양>, <큰 소리 제금으로 찬양>, <높은 소리 제금으로 찬양>, <호흡이 있는 자마다 찬양>하라고 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인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이기도 합니다.


1. 찬양은 어디에서?
1절에서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그의 성소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예배처소를 말합니다. 그의 권능의 궁창중 권능은 하나님의 능력을 말합니다. 궁창은 땅위의 모든 공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온 우주 가운데에 아무 곳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만드셨고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는 이곳 역시 하나님의 궁창입니다. 지하실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지하실이 권능의 궁창이 됩니다. 감옥에서 마음의 예배를 드린다면 그곳이 권능의 궁창입니다. 우주선 안에서 예배드린다면, 그 우주선이 권능의 궁창입니다. 땅과 하늘 사이의 모든 공간은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무엇을 찬양합니까?
2절에서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행하신 행동은 창조와 구원과 섭리하심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도 풀 한포기 조차 창조하지 못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는 권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악한 죄인을 위해 자기 아들을 속죄 제물로 내어 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죄인들의 죄를 사하고 살리기 위해 하나 뿐인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위해 죽으신 구세주이심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는 권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존 번연은 <지옥에는 비명이 가득하고 천국에는 찬양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노래가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면 찬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노래기 때문입니다. 팝 가수들의 열창이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하듯 성도들의 찬양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합니다. 찬양은 단순히 입으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영혼으로 부르는 신앙고백이요 감사의 고백이요 사랑의 고백이요 곡조에 담아서 바치는 기도요 하나님 경배입니다. 요한계시록 4, 5장에 소개되는 천상의 예배 실황을 보십시오. 이 시편 150편처럼 그야말로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끝납니다. 설교는 없어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며 부르는 네 생물, 24장로, 천군천사, 흰옷 입은 성도들의 찬양이 압권입니다. 찬양은 예배의 한 순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필요충분조건의 예배임을 기억하십시오.


3. 어떻게 찬양하는가?
3정에서 5절에 사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악기로 찬양드리고, 몸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찬양이 이런 찬양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누가 찬양해야 합니까? 6절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이것은 누구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당위>를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호흡이 있는 자>면 누구나 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에베소서 5:18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19절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결코 거저 되지 않고 성령 충만해야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은 음악적인 자질보다도 성령 충만의 결과입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찬양이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신앙고백이며 하나님 경배며 은혜에 대한 응답이며 기도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의 찬양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찬양을 통해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찬양이야 말로 입으로, 소리로 하는 게 아니라 영혼으로, 성령 충만으로 하는 것임을 깊이 깨닫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따라서 성령이 소멸되고 은혜가 고갈되면 찬양도 실종됩니다. 우리의 삶이 늘 성령으로 충만하여 무엇보다 찬양이 풍성하길 빕니다.


4. 언제 찬양합니까?
우리는 보통 어려울 때나 아플 때, 혹은 슬플 때는 기도하고, 기쁘거나 즐거울 때, 감사할 때는 찬양합니다. 그러나 사실 찬양은 전천후로 해야 옳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 붙잡혀 들어가 죽도록 매 맞고 깊은 지하 감옥에 갇힙니다. 그런데 쓰리고 아픈 상처에도 불구하고 한 밤 중에 기도하며 찬양했습니다. 억울하고 몹시 아팠을 그 때에 찬양한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묶인 족쇄가 풀리는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찬송하는 족속이 되어야 합니다. 신세타령하고 하나님 원망하고 남 탓하는 대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시편은 복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해서 호흡이 있는 자, 즉 살아 있는 자는 다 하나님을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나, 모든 악기와 온 몸으로 찬양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사야 43장 21절이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에게 찬송 받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함당한 찬송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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