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 언약의 성취
▣ 예수님 닮은 삶
마태복음 1장 22절 ~ 25절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하며 지낼 때 안녕하세요? 라든지 별일 없으시지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평안하시지요? 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의 ‘할렐루야’라고 인사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은 강대상 뒤에 임마누엘이라고 써놓은 교회도 많이 있을 정도로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진 핍박과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신앙을 지키고 살아왔기 때문에 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그들에게 늘 새로운 힘을 가져다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 언약의 말씀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신구약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많은 약속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 “너는 내 백성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임마누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계셨지만,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처절할 정도로 버림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버려진 사람들이다.’, ‘우리 곁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도 안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하신 약속을 늘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시며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늘 먼저 깨뜨렸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스스로를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버렸으며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늘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약속을 지켰습니다. 출애굽 할 때에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시며 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적이 쳐들어왔을 때는 그들을 막아 보호하셨고 전쟁에 나갔을 때엔 형편없는 병력임에도 승리할 수 있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셔서 풍요를 누리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듯이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곁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번번이 떠나고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백성들이었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어떠한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든 어떠한 어려움과 슬픔의 시간이든 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서 지켜주심으로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 축복된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언약의 성취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언약의 성취
마태복음 1장 23절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아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이 낮아지시고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 보좌에 앉아서 영광을 거두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모든 것을 내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가장 낮아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희생하고 겸손하게 죄인들의 세상에서 죄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2) 임마누엘의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고난 당하시고 낮아지면서 우리에게 오셨을까요? 가장 큰 목적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인들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임마누엘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억울한 자들, 죄인들, 병든 자들, 귀신 들린 자들, 배고픈 자들, 풍랑을 만나서 고난당하여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사람들, 가장 고난당한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치유하고 생명을 살리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평화를 주시며/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어떠한 사람들을 구하시고 죄를 사하셨으며 생명을 구하시고 질병을 치유하시며 평화를 주시는 사역을 하셨는지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가족으로 삼아주시고 친구로 삼아주시며 우리의 형편과 처지에 관계없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승리의 삶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닮은 삶을 살아야 함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 닮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버림받고 고난 받는 사람들, 절망한 사람들 가운데 오셔서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낮아지셔서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당하시면서도 죄인들과 함께 계시며 “너희도 나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같이 낮은 곳, 버림받은 사람들이 있는 곳, 절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가장 낮은 곳, 가장 고난 당하는 곳에서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쓰임 받는 낮아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공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 비참해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위하여 나도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매여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기 힘들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지극히 낮아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이 온전하게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세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는 생활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그들을 돌보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고통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예수를 닮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운 사람이 없는지, 연약한 사람들이 없는지, 혼자 버려진 사람들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맞는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겠는데 아직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한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의 옷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실 때 우리를 가족 삼으시고 우리를 친구 삼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대하시며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혼자가 아니며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외로운 것도 아니며 우리 주님께서 가족으로 친구로 오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연약한 사람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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