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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두 종류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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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믿음과 서기관의 믿음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 

 

마태복음 7장 24절 ~ 27절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1943년의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던 한 사람이 우연히 버려진 자전거 한 대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버려진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와서는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고 안장 위에 핸들을 거꾸로 붙였습니다. 그는 그 조형물에 '황소머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50여 년이 지난 후, 런던의 한 경매장에서 이 작품이 경매에 부쳐졌습니다. 그리고는 자그마치 293억 원이라는 금액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은 바로 ‘피카소’입니다. 그는 쓰레기에 불과했던 자전거를 수 백 억이 넘는 고가의 미술품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우리의 삶도 버려진 자전거와 같이 무가치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낡고, 고장 나고, 달릴 수 없기에 버려진 자전거 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비록 버려진 자전거와 같은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새롭게 재창조됩니다. 오늘 선포될 말씀이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새롭게 재창조해 주실 말씀이 되기를 기대하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 예수님의 믿음과 서기관의 믿음 
회당마다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이 있었는데, 서기관들은 왕정시대에 국가중요문서를 기록하고 정리하며 보관했던 직분이었습니다. 포로지에서 귀환한 이후에는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은 유대 전통 교육기관을 통해 길러진 국가 인증의 성경해석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은 바리새파에 속하며 산헤드린 공회의 핵심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에는 훈계와 교정은 많았지만, 성령의 함께 하심과 사랑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 가르침은 피곤하였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갈릴리 어촌의 목수 아들로서 정식 종교지도자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셨습니다. 그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 라는 하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성령으로 물리치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성령이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씀을 가르쳤기에 듣는 자들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들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들이 서기관과 다르다고 느껴진 이유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말씀의 은혜가 듣는 무리와 전하는 예수님 사이에 충만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성령의 감화 감동이 전혀 없는 지식전달의 몽학선생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상, 성령 없이는 기독교의 신앙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성령 없이는 사도들의 사역과 선교를 통한 교회의 탄생도 불가능했습니다. 성령 없이 말씀을 읽는다면 지금도 성경 내용을 도저히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기독교에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 본질입니다. 
     
2.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
함께 말씀을 들은 무리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음을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입니다. “듣고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어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건축자와 같아서 쉽게 무너질 집을 짓는다고 하셨습니다. 

산에 모여서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건축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종교 활동도 하는 신앙인들이 건축자들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살려는 자발적인 믿음을 집을 짓는 것에 비유한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나 어리석은 건축자나 믿음으로 집을 짓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고, 어떤 사람은 행하지 않습니다.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는 믿음이 무너지지 않는 든든한 집을 짓는 비결이라는 말씀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나 ‘어리석은 건축자’ 둘 다 믿음의 집을 건축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의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내려놓고 성령에 순종하는 믿음의 집을 정성껏 건축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믿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믿음을 세워가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건축자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의 수고는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말씀도 좋고, 육체의 정욕도 좋은 혼합 양식으로 쉽게 믿음의 집을 지은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세상에서 사는 방법은 탐욕과 이기주의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큰 비바람과 폭풍은 이 두 사람의 집에 공통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위기가 다가오면 어리석은 건축자의 집은 크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는 무너지기 쉬운 모래 위에 편안하고 안일하게 집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지라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예기치 않는 폭우가 내립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 가운데 때로는 번개와 천둥도 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맑은 날만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닫는 은혜가 있었다고 홍수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인생에는 좋든 싫든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며, 거친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러한 위기가 다가왔을 때, 우리 개인의 인생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가 든든히 설 수 있는 비결은 우리에게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 특별히 산상수훈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육체의 정과 욕심을 끊어내야 하는 고된 고통이 따릅니다. 고장 난 자전거와 같은 우리 인생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수고를 감당하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지혜로운 건축자의 믿음으로 살 것인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어리석은 건축자가 되어 위기를 당할 때 무너져 사자질 가짜 믿음으로 살 것인가를 결단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어리석은 건축자 사울 왕가는 사라졌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고 많은 고생을 치룬 지혜로운 건축자 다윗 왕가는 영원한 왕가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개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국가는 위기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쳐들어온 위기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입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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