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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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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는 욥 

고난 앞에서 무너지는 신앙 

▣ 회복

 

욥기 42장 10절
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기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경륜(經綸)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42장은 욥과 이웃들의 회복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의 고난과 회복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
하나님께서는 욥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세상에 둘도 없는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1:8)  
이 말씀을 들은 사탄은 하나님께 욥을 참소했습니다. 참소(讒訴, slander)는 ‘남을 해치려고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일러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그를 보호해 주어서 마귀들이 해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신 복을 빼앗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을 저주하고 욕할 것이라고 참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욥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도 된다는 허락을 내리셨습니다. 이것이 하루아침에 쓰나미 같이 밀어닥친 고난을 당하게 된 욥의 히스토리입니다. 사실, 욥이 죄를 많이 지어서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님을 성경은 뚜렷하게 증거 합니다. 

사탄의 참소와는 완전 다르게 욥은 회개로써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했습니다. 사탄은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시키려고 찾아왔지만, 욥은 자기 신앙을 잘 지켜냈습니다. 욥의 이런 모습을 우리는 칭송하고 그의 신앙을 본받고 싶다는 소원을 품고 있습니다. 욥에게 완전히 패배한 사탄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또 욥을 칭찬하셨습니다. 네가 참소해서 이유 없이 모든 재산 다 빼앗고 자식들까지 다 죽게 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 욥은 역시 세상에 둘도 없는 경건한 자라는 칭찬이었습니다. 그 말씀에 사탄이 다시 참소합니다. “하나님, 누구든지 재산 없이, 자식 없이도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을 쳐서 병들게 해 보십시오. 자기 몸이 아프면 원망 안 할 사람 누가 있습니까?”(욥 2:1-5)

하나님께서는 그렇다면 욥의 생명에는 손을 대지 말고, 몸은 쳐도 된다는 허락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욥의 몸을 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한 종기가 나게 했습니다.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고 있을 정도로 비참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사탄이 그의 아내의 입술을 통해서 욥을 멸시하고 저주했습니다. 욥은 이번에도 찬란하게 빛나는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말한 것도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복도 받고 화도 받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화(재앙)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재앙을 가져오는 사탄의 참소를 욥에게 허락해 주셨을 따름이요, 욥이 고난을 당할 때에 지켜보시고, 욥과 함께 하시며 욥의 생명을 돌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성경 이사야서 43장 2절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어떤 고난의 상황에서도 여러분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함께 계시며 도와주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화(재앙)를 주셨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2. 고난 앞에서 무너지는 신앙
욥이 처절하게 낮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욥의 세 친구들이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처참한 욥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칠 일을 함께 땅에 앉아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일주일을 잠잠히 지낸 욥이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 말을 3장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인 즉,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고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는 탄식이었습니다. 재산 다 날라 가고, 종들이 다 사라지고, 자식들까지 다 잃었어도 하나님을 찬양했던 욥이 달라졌습니다. 자기 몸이 괴로우니까 자기가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삶을 두려워하고 죽기를 구합니다.  

결국 욥과 친구들은 사탄이 주는 교만한 마음으로 서로 상처를 주는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4장부터 시작된 네 친구의 지혜 다툼은 32장에 엘리후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은 욥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다시 복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욥은 자기는 이런 형벌을 받을 죄를 전혀 짓지 않았는데 왜 정죄하느냐고 주장했습니다.

욥의 믿음은 더 이상 칭찬받을만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포장 할 수 있었던 화려한 포장지가 찢겨나가고 욥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욥의 믿음이 포장된 믿음인 줄을 욥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욥의 믿음을 “세상에 그와 같은 자는 없다”라고 칭찬해 주셨던 것입니다. 마치 얍복강 가에서 밤새도록 씨름한 야곱에게 “네가 하나님을 이긴 자”라고 불러주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사탄과의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욥을 내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욥 스스로 자신의 위선적 믿음을 깨달을 기회를 주시려고 사탄의 요구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욥은 사람에게 많은 칭찬과 존경을 받았던 지혜자요, 지도자(족장)였습니다. 욥은 어느새 자기 스스로 참으로 경건한 자라는 자아도취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외식적인 믿음으로는 결코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욥을 위하여 사탄의 참소를 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이 길어지자 욥은 점점 더 자기 속 모습을 남김없이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던 엘리후가 32장에 등장하면서 그것을 증거 합니다.엘리후가 욥과 세 명의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들이 다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고, 하나님은 스스로 지혜롭다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서로 자기 지혜를 들어보라고 다툰 욥과 친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치고 박을 때에는 결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가 더 잘났다고 으스대는 꼴을 보여주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3. 회복
모두가 잠잠해 지자, 그 때에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에서 욥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던 자여 무지한 너의 말이 네 생각까지도 어둡게 하는구나. 네가 그렇게 지혜롭다면,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보려무나.’ 이렇게 말씀하시며 욥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자기의 의로움을 주장하며 친구들과 다투었던 모든 말들이 하나님을 트집 잡고, 하나님과 다투고, 하나님을 탓하는 말을 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신 순간입니다. 

지금 얼마나 중요한 영적 원리를 깨닫게 해주고 계신 하나님이신지 느껴지십니까? 우리가 우리 이웃, 남편, 친구와 다투는 것은 다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욥은 지금까지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죄악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주장질하던 입을 틀어막더라도 내가 의롭다, 내가 지혜롭다고 주장하는 비천한 말들을 완전히 금하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욥의 회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회복”은 그동안 내가 하나님의 뜻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었는지를 깊이 깨닫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욥이 잘못이 전혀 없었는데 사탄의 참소 때문에 큰 재앙을 당하게 되었지만 끝까지 믿음 잘 지켜서 두 배로 복을 받았다는 것이 욥기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욥의 회복은 고난을 통과하면 두 배로 복을 받는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복은 고난을 통해 자기가 누구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욥이 이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칭찬받던 처음 신앙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고 나자 42장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욥의 대답이 욥의 입에서 나옵니다. 

들어서, 배워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눈으로 뵙는 체험적 하나님께 회개하는 욥입니다. 경건한 자는 죄를 짓지 않은 자가 아니라 회개한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겉은 잘 포장되었지만 그 안은 썩는 냄새로 가득한 곳에 갇혀있는 영혼을 바깥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고난을 통과하게 하심으로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삼중의 회복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고난은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해주는 데에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회복의 첫 관문인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난당함이 내게 유익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시 119:71)그래서 사도요한도 가이오에게 편지할 때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고 축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된 욥에게 가장 먼저 중보자의 사명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다투던 친구들을 위하여 욥이 중보 할 때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아보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회복된 욥이기에 원수를 위하여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욥을 정죄하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욥의 수직관계, 욥과 친구들의 수평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 욥의 모범을 쫓아서 시험을 이기는 비결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고난이 길어지고 끝이 안 보이는 것 같을 때, 성도 여러분 원망, 불평, 탄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고난에서 가장 빨리 회복될 수 있는 길은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기도와 찬양으로 끝까지 하나님께 집중하며, 내가 고난당할 때 나를 정죄하고 나를 떠났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고난당할 때가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친자식을 징계하지 않는 부모가 없다고 성경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히12장) 하나님은 여러분이 친자식이기 때문에 징계하셔서 하나님의 복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의 자녀로 회복시키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크고 길어질수록 도리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감사드리며, 그만큼 더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기대하며 입술로 고백할 때 고난은 물러가고 여러분에게 큰 회복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모든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영적으로 깊어지는 어두움을 통하여 더 하나님을 찾고 찾는, 그래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그래서 우리 영혼이 회복되고, 범사가 회복되고, 강건해지는 삼중의 회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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