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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참 소망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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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어진 소망 

참된 소망을 붙잡자 

소망을 둔 기다림 

 

예레미아애가 3장 18절 ~ 26절 
18.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  
19.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20.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21.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22.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23.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25.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한때 영광스러웠던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동족들이 깨닫고 회개하기를 소망하는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의 이름은 ‘주께서 내던지시다’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 후 예레미야가 깊은 절망 속에서 탄식하며 부른 노래가 예레미야애가입니다. 예레미야애가 곳곳에서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때 아름다웠던 도시 예루살렘의 폐허를 바라보던 예레미야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자신도 포로로 잡혀있어 자신의 생사조차도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신에 대한 희망은 물론 주변에 대해서도 희망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희망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소망이 끊어진 것,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절망적인 상태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가능성이 눈곱만큼도 없는 현실을 보며 절망합니다. 마치 예루살렘이 쓰레기 더미 위에 내던져진 듯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마음이 녹아내린 우리도 같은 심정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끊어진 소망
재난이 계속되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실패가 연속되면 누구든 흔들릴 것입니다. 욥도 동방에 의인이라 불렸지만 혹독한 저주 앞에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고 죽기를 구했습니다. 엘리야 또한 이세벨의 보복이 두려워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말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난 앞에서 큰소리 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이 우리 삶을 스치고 지나 만 가도 대부분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전환점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희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희망과 참된 소망을 분별하지 못하고 거짓된 희망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인 것입니다. 내가 가진 희망이 거짓된 것임을 알게 되면 그것만큼 잔인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서 주신 참 소망을 앉고 살아간다면 은혜로운 새 삶이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지만, 거짓 희망을 앉고 살아가다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거짓 희망이 갖다 주는 절망감은 엄청난 실의를 안겨 줍니다. 거짓 희망은 사람을 망상에 젖게 합니다. 그것은 신기루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희망은 실현된다고 해도 진정한 희망이 되지 못합니다. 신앙세계에서 말하는 소망은 세상에서 말하는 희망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신앙세계에서는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지만, 현실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이 주는 거짓 희망은 이루어질 것처럼 눈을 현혹시킨다는 것 또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소망은 현실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참된 소망을 붙들지 않고 거짓 희망에 현혹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막연히 ‘내일은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며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일은 보장된 시간이 아닙니다. 이러한 소망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연결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심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참혹한 절망 속에서 소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처한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어둡고 긴 터널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두렵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오히려 소망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여, 하나님 주시는 참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참된 소망을 붙잡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발견한 소망의 줄, 그것이 오히려 소망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예레미야는 현실의 좌절보다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상황이었지만 예레미야가 살아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히 무궁하심을 믿고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을 기억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절망 속에서 핀 꽃과 같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절망 속에서 참 소망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실패와 불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손길이 멈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히 끝이 없다는 것은 시간적 개념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성품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을 통해 그분의 성품을 발견해야 하므로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성품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관심과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세상의 소문이나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 언약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믿을 수 있으려면 변함이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변함없음을 확신하며 믿기 위해서는 체험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경험했습니다. 성실은 오랜 세월 동안 경험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멈춘 적이 없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경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멈춘 적이 없습니다. 변덕스럽지 않으시며, 불규칙적이지 않습니다.

지난밤에는 죽을 것 같았지만 어두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선지자가 바라는 것은 오직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오시는 성실하신 하나님뿐입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 기대합니다. 우리 모두도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신 하나님을 아침마다 새롭게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레미야는 아침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많이 안다고 해도 더 알고 싶은 분이십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서 식상해지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무궁하시며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오늘 하루는 이전의 날과 다른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 잊어진 존재가 아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는 모든 소망이 사라진 듯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은 무궁하셔서 사라지지 않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많이 주어져도 쇠하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업이 되시면 감당 못할 만큼 풍성한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 이러한 참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여 감사하며 참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소망을 둔 기다림
구원 자체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구원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안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구원보다 큰 선물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모든 것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구원 안에 모든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아버지의 주권과 권세 아래 우리가 이끌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호자가 되시고 우리 삶의 공급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우리가 구한 대로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 오히려 은혜일 수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것을 구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가 구한 대로 하나님께서 주셨다면 재앙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수동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자칫하면 기다림에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아야 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 시선을 두고 다른 것에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왜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 삶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답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어디를 봐도 세상에는 답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지하고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인자와 긍휼히 무궁하신 하나님만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 기도했다면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와야 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요,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자리, 믿음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로 진멸되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절망하고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날마다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본다면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찾아오시는 하나님만이 참 소망이십니다. 참 소망을 갖고 기다리고 인내하시기를 원합니다. 어제의 절망이 오늘에 소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변함없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하신 성품을 기억하여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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