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에 집중하며 발버둥 치는 때
▣ 은혜에 합당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때
▣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때
시편 13편 1절 ~ 6절
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2.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5.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
다윗은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구원의 하나님을 체험한 믿음의 선진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했으며, 하나님 뜻에 절대 순종한 온유한 성품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으로 세워진 최고의 성군이 되어 많은 영화와 부요를 누리기도 했지만, 반면에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진 것 같이 고달프고 아픈 인생을 살아 내야만 했습니다. 시편 13편은 다윗이 몹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에 지은 시입니다. 이 고통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마치 꼭꼭 숨어버린 술래처럼 숨어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은 분명한데, 나를 찾아오지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시지도 않으십니다. 예전에는 부르기만 해도 “내가 여기 있다” 대답하시던 하나님을 전혀 뵐 수 없으니 더 답답하고 힘이 듭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다윗이 그런 심정으로 쓴 시편 13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뵈올 수 없어 고단한 심령이 된 다윗이 그 고통의 때를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함께 살펴보고 교훈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문제에 집중하며 발버둥 치는 때
성경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고 도와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거듭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사 오늘까지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일생 사는 동안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나지 않는 인생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문제를 만날지라도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이용하여 자기의 능력과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몸부림을 쳐 봅니다.
적어도 다윗은 문제를 만났을 때 사람을 찾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엄청난 탄식을 하나님 앞에 쏟아 놓으며 자기의 심정을 시로 써 내려갔습니다.분명히 살아계셔서 나를 구원해 주셨던 그 하나님이 지금은 어디에 숨어계신 건지, 너무너무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쓰러지는 제게 다시 찾아와 주세요. 제발하고 간절한 외침을 하나님께 쏟아내고 있는 다윗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르며 그는 해결되지 않는 자기 문제들로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어느 때까지!(How long!)라는 탄식을 네 번이나 반복하는 데도 하나님 묵묵부답이십니다. 몇 달인지, 몇 년인지 모를 처절한 고통 가운데서 주님을 부르짖어 찾는 다윗의 탄식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확실히 믿기에 숨어계신 하나님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더 큰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힘든 문제들이 많습니다. 어떤 문제는 순식간에 해결해 주시지만, 어떤 문제는 끝까지 응답하지 않으시려나하고 의심이 생길 정도로 잠잠하신 때도 있습니다. 우리 문제들이 크고 심각할 때 우리는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철저히 숨어계셨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그분 앞에 무릎 꿇는 영광의 이름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에 찾아온 힘들고 아픈 고통이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때,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모습을 본받겠다고 다짐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계속된 고통을 인해 하나님 언제까지 숨어계실 거냐고 탄식했던 다윗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하나님은 한 번도 그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고 함께 계셨음을 압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 앞에서 가시고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너무 오랜 세월 시련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던 것일까요? 다윗과 같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도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위로받으십시오. 믿음이 좋다고 칭찬 받았던 아브라함도, 욥도 다윗도, 베드로도, 사도 요한도, 그들도 자기 문제만 바라보다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적이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실수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부족한 모습 그대로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갈 권세를 얻은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믿음을 하나님 앞에 풀어놓게 될지라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찾고 또 찾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은혜에 합당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때
꼭꼭 숨어계신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며 “어느 때까지”를 연거푸 외치던 다윗의 말이 3절부터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은 힘들어 죽을 것 같던 문제와 환경에 집중하던 탄식을 하지 않습니다. 연약한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켜 강하고 담대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이전에 자기를 도와주셨던 하나님의 은택들이 기억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과거의 체험적 신앙은 현재 다가 온 위기를 이길 힘을 얻게 합니다.
결국 다윗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 회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생각하셔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요, 하나님이 자기를 생각해 주지 않으시면, 눈조차 뜰 수 없는 자요, 원수들과 싸울 능력도 전혀 없는 자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절대 무능한 자신을 이전과 같이 도와주셔서 눈을 뜨고 주를 바라보고, 흔들리지 않게 해 달라는 간구를 드립니다.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하는 신앙으로 재발견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은 날,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거듭난 신생아의 모습 그대로 수 년, 수십 년을 정체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적 성장의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성장시키시는 단계를 정하시고 단계마다 문제를 만나게 하십니다. 정해진 단계마다의 문제를 잘 통과하면서 우리의 영적인 성장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정해진 단계마다 우리가 그 문제를 통과하는 모습을 잠잠히 바라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문제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그 순간 하나님에 대한 우리 믿음도 더 커집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더 깊어지고 커지는 성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꼭 거쳐야 할 지금의 성장 단계만큼 성장할 때까지 하나님은 다윗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고통 가운데 계속계속 부르짖어도 꼭꼭 숨어계신 하나님이 되신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칠흑같이 어두운 문제를 지날 때에 하나님을 뵈올 수 없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성장 모습을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는 때
믿는 자들은 큰 문제에 직면하면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문제해결이 안 되면 중도에 기도를 포기하거나, 주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때까지 주님을 찾고 찾으며 주님 앞으로 더 나아갑니다. 다윗의 고백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의 은혜 넘치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어찌 보면 배움도 많지 않았으며, 여성성이 강한 시인이요, 음악가이며, 온유한 성품의 평범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평범하지 않는 부분은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여쭙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을 할 때마다 “올라가리이까? 말리이까?”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군대장관인 요압의 포악한 언행에 대해서도 조용히 함구하는 군주였습니다. 자녀들이 잘못을 해도 크게 책망하거나 체벌을 하지 않았습니다. 왕인 자신을 조롱하며 욕하는 백성일지라도 함부로 처형하지 않았습니다. 이럼 모습을 볼 때 다윗은 결단력 있거나,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특출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어서는 가장 특출한 사람이었습니다. 거절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나, 자신의 분수를 뛰어넘는 사람 앞에서나 항상 겸손하고 온유한 다윗의 성품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는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다윗은 오랫동안 하나님과 깊고도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 온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과 기쁨이 클수록 인생이 곤하고 고난이 겹치는 삶도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서 세상에서도 사랑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하나님을 원수로 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왕으로 기름 부으신 다윗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세상 사람에게 철저히 미움받는 시간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의지한 다윗이기에 주의 구원을 항상 소망하며 기뻐했습니다.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자는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피하거나 거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선하신 뜻을 세상 가운데 이루어 가십니다. 그리고 다윗의 문제 해결을 바라던 탄식이 사라지고, 자기와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시켜 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생각하시고, 감겨 있는 눈을 뜨게 하사 밝히시고, 믿음 흔들리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다윗의 마음에 주의 사랑을 의지하는 마음, 주의 구원을 기뻐하는 믿음을 회복시켜주셔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주의 은혜를 기대하는 소망이 다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