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2편 5절 ~ 7절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편 62편은 다윗의 시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예배에서 드려지는 찬양으로 재탄생한 시이기도 합니다. 시편 62편에서 다윗은 거의 같은 내용을 반복 기록을 했습니다.
1절을 보면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입니다. 자기의 영혼이 하나님만 기다리는 이유는 구원이 하나님에게서만 나오기 때문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일생동안 다윗이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고백이 우리 영혼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기에 이 예배 자리에 나아왔을 것입니다.
2절에서는 구원의 하나님만이 다윗에게 반석이요, 구원이며, 요새가 되어 주셔서 그의 인생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평정심을 잃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은 결코 평온한 날이 계속되지 않습니다.
3절은 다윗이 사람들에게 공격을 당하며 괴로운 날들을 견디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4절을 보면 다윗을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려는 악한 자들의 모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이 왕위에 앉은 후에도 다윗 주변에는 늘 대적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앞에서는 아첨하지만, 뒤에서는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로 인해 넘어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피곤하고 위태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클수록 사람들에게 당하는 고난도 커지는 인생을 살았던 다윗입니다. 다윗이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내기 때문에 사람의 질투와 시기도 많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사람들의 거친 공격으로 넘어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쇠약해졌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요, 현실입니다.
1절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가 5절에서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로 바뀌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 바라겠다고 고백했지만, 역경의 고난 앞에서 믿음의 중심이 흔들리는 자기 영혼에게 외친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신 차려!”라며 외친 것입니다. 즉, “나의 영혼아! 흔들리지 말자!, 요동하지 말자! 더욱 하나님만을 바라고 기다리자” 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 선택해야 할 길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세상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고통, 괴로움, 탄식, 사건, 사고 등의 슬픈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때에 우리가 해야 할 선택에 대해 시편 62편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하나님만을 바라는 믿음의 고백”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이 하나님을 소망하는 삶”으로 나타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믿음과 삶이 괴리되어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지 못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믿음, 하나님께만 소망을 둔 믿음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우리의 입술의 고백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만나는 크고 작은 환란 가운데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구원이요, 소망이심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삶에서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의 믿음이 보여지는 것입니다. 처음 구원받았을 때는 어린아이와 같았을지라도 점점 더 성장하는 모습이 삶 가운데 나타나는 믿음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술의 고백에 있는 믿음이 삶에서는 보여 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의 일생을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일생 동안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끊임없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기회가 삶의 현장에 늘 놓여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우리 삶에 다가온 많은 역경들이 우리의 참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풍랑이는 캄캄한 밤에 갈릴리 호수 위를 걸어서 위험에 처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탄 작은 배를 삼킬 듯이 몰아치는 풍랑으로 모두가 두려워할 그때에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유령이 나타났다고 소리 지르며 두려워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말씀하시자 베드로가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시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말했습니다. 주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러나 곧 물결과 바람을 보고 두려워 물에 빠져가자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와 함께 배에 오르셨습니다. 베드로 곁에는 예수님이 계셔서 즉시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베드로는 복도 많지~~”하며 부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그 때 주님이 하신 말씀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였습니다. 우리의 삶에 다가온 역경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실상은 믿음이 없는 것, 죽은 믿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 곁에는 주님이 살아계셨지만, 다윗은 주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주님이 다시 천국으로 돌아가시고 안 계신 시대를 삽니다. 다윗도, 우리도 즉시 손잡아 주실 주님이 곁에 안 계신 현실을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다윗처럼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명령을 해야 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이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주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믿자!” 우리의 이런 결단과 행함이 우리의 믿음을 점점 더 완전한 믿음의 길을 가도록 인도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는 성숙된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다윗이 1절의 믿음의 결단을 선포했을 때에는 2절의 삶의 열매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나의 구원되심을 고백하는 영혼이 맺은 열매는 하나님이 반석이요, 요새이므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는 믿음의 고백을 드리면서도 어느 정도는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고백이 아닐까요? 얼마 정도는 흔들리는 신앙으로 살아가던 중에 3~4절과 같은 큰 역경과 핍박이 다가오면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약간씩 흔들이는 신앙으로 살다가 그만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만으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온전한 믿음을 살지 못한다는 교훈입니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쓰러지기 일보직전에 다윗처럼 “나의 영혼아 정신 차려! 너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 거야!”하며 자신을 주님께로 돌아서게 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맺어지는 삶의 열매가 6절입니다. 2절에 있던 “크게”라는 단 한 단어가 6절에서 사라졌습니다. 즉, 자기 영혼을 정신차리게 하는 사람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하는 삶을 살 때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62편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다윗의 권면입니다.
다윗은 우리의 고백이 사변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이 아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우리 삶에 그대로 녹아 있는 삶을 사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입술의 말은 감동을 주는 수려한 말잔치로 가득한데, 삶은 현실에 견고하게 묶여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지 않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 중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사도 신경도 드리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이 치열합니다. 믿음 안에 살면 모든 것이 천사와 같이 되고 천국에서의 삶을 살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지 않은 다툼이 내 삶에 자꾸 일어나고, 가까운 이웃에게 배반당하는 아픔도 많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한 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셨지만, 많은 질병에 걸려 고통당합니다. 행복보다는 슬픔과 불행이 더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과 삶은 전혀 상관 없는 듯이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좋은 믿음일까요? 다윗은 누구보다도 많은 고난의 인생을 살아낸 인물입니다. 그는 자기의 믿음의 고백을 자기 삶에서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고난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했습니다. 지금 우리 곁에는 베드로의 손을 잡아주셨던 주님이 비록 안 계시지만, 성령님 오셔서 우리 손을 잡아 주십니다. 비록 성령님이 눈에 안 보이고 손에 잡히는 분은 아니시지만, 우리가 주님을 찾을 때마다 오셔서 우리 지친 손을 잡아 주십니다. 넘어지는 담,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허약해진 우리 영혼에 예수님의 새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를 곧 쓰러뜨릴 것 같은 현실의 위기와 환란 가운데 우리가 첫 믿음을 기억하고 그 믿음 지키려고 자기에게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명령하게 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오셔서 주님의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실아 오면서 많은 어려움들을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뛰어넘었습니다. 물에 빠져 들어가던 베드로가 주님을 다급하게 불렀듯이 우리도 그랬습니다. 그 때에 오신 성령님, 우리를 도와주셨던 성령님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매 순간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을 살도록 찾아오십니다. 삶의 위기 가운데 구원의 주님을 기억하고 자기 영혼에게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라고 고백하는 영혼이 날마다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손잡아 주십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우리 평생에 다윗과 같은 고백을 드리고, 다윗과 같은 삶을 살아냄으로써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 그리스도 예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도록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더욱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