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 인내는 승리하게 하고, 승리는 복을 받게 합니다.
▣ 여호와 닛시
야고보서 5장 10절 ~ 11절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이 팬데믹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모두 주님 주신 지혜로 슬기롭게 잘 극복하며 지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백신 접종이 다소 늦어지고 비록 확진자의 숫자가 적지는 않지만 백신이 확보되고 접종 예약이 적극적으로 이뤄지면서 사회 분위기는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펜데믹 상황은 종료되고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우리 모두 조금 더 힘을 내고 이 시기를 인내로 극복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욥의 삶에 많은 어려움과 풍파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욥의 인생이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어떠한 결말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욥에게 승리의 결말을 주셨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인생을 승리와 회복의 반전으로 이끄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크고 작은 많은 고난이 찾아옵니다. 종종 일어나는 각가지의 사건 사고로 인하여 늘 마음에 평안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 속에서의 치열한 경쟁으로 마음에 평안이 없는 각박한 삶을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물론 늘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자신감과 의욕을 잃고 절망에 빠지곤 합니다. 욥의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욥기의 마지막을 보면 욥이 완전히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욥기의 결말을 통해 보내는 메시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결말은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지만, 가장 자비하시고 우리를 가장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시험을 끝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경험한 수치, 상처, 아픔, 상실을 회복 시켜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결말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우리의 실수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 참으로 각양각색의 고난도 많습니다. 악인에게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악인에게 가고자 하는 길에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뒤죽박죽이 된 우리의 모든 삶을 회복시키십니다. 악이 극도로 날뛰어도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며 그들을 심판해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키시고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고난에서 역전시키시는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을 통해 깨우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사단의 공격을 받고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함을 당하지만 결국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욥에게 갖은 수를 썼지만 그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섭리와 목적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어떠한 형태로든 승리하게 하십니다. 에스더 3장 6절에서 하만이 유대인을 몰살하려고 치밀하게 음모를 꾸미지만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 결국 하만이 나무에 매달려 죽었듯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을 건져내 승리로 이끄십니다. 가장 극적인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의 무리들에게 수많은 공격을 당하시고 결국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은 대역전극입니다. 성경에 많은 역전극이 있지만 최절정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부활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저나 여러분도 삶 속에서 작은 부활을 경험해야 합니다. 현제 코로나 펜데믹으로 모두 힘들고 어렵지만 이겨내야 합니다. 고난이 우리를 끝장내지 못합니다. 세상이 주는 고난과 악인의 방해 공작으로 우리는 결코 끝장나지 않습니다. 성경에 얼마나 많은 악인이 많습니까? 악인은 많고 의인은 소수입니다. 의인은 좁은 길로 가는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소수여서 쉽게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지키시어 승리하게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승리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중 욥의 인생은 절정을 보여줍니다. 자녀들이 죽고, 모든 재산을 잃고, 온몸에 종기가 나고, 그의 아내는 그를 저주한 뒤 떠나고, 친구들은 배반했습니다. 야고보는 “욥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결국을 너희가 보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온갖 고난에도 결말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힘들고 치쳐 포기하려고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손을 놓지 않고 붙들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24절과 잠언 24장 16절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돈을 주고 높은 곳에 올라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는 것은 안전장치를 믿기에 뛰어내려도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확신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발목에 매어 놓으신 안전장치는 세상의 어떠한 인맥이나 줄보다 훨씬 안전한 하나님 언약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이루심으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드러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을 이루어 가시고, 섭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줄 수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빌라도의 큰 착각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9장 11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권한을 주지 않으면 예수님을 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만의 권한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허락하심 안에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고난을 허락하셨지만, 욥의 생명은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경계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극렬히 타는 불속에 던져졌지만 옷에 그을린 흔적이 하나도 없었듯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단은 어떠한 공격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권한 아래 있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욥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는 과정이 녹녹하지는 않습니다. 사단이 결사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공격하는 사단의 공격에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여 결국 승리의 결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인내는 승리하게 하고, 승리는 복을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살다보면 결말에는 승리로 끝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욥에게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터무니없는 사건을 접하게 되면 쉽게 해석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답을 얻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이러다가 내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은 왜 응답하지 않으시지?’ 라며 불안해합니다. 고난이 다가왔을 때 그 과정 과정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고난이 왜 일어나고, 고난이 언제까지 지속되며, 고난을 통해 축복을 주실 것을 이야기해주시고, 등을 알면 편할 텐데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알려 주시지 않으십니다.
고난을 만난 욥도 혼란으로 가득합니다. 욥의 친구들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혼란스러운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것이 그분의 계획 아래서 오차 없이 계획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퍼즐 조각과 같아 다 맞아 떨어집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는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서 하나씩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의 결론은 승리입니다. 모든 것이 그곳을 향해 일정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의 이유를 알아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인내로 승리하고 복을 쟁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악인들의 악행은 결국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인내하는 그 시간에 많은 일을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순화시키시고, 정화시키시고, 순결하게 하시고, 성화시키시고, 더욱 견고하게 하셔서, 우리를 정금 같이 나아가게 하십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주어지는 고난은 없습니다. 다가온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인내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를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행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욥을 통해 야고보는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내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내하는 사람이 왜 복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완전한 분이시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분이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선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께서 나를 승리로 이끄실 것을 확신하며 믿는 사람만이 인내할 수 있기에 복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어렵고 힘이 들면 의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과연 세상의 주관자이신가? 하나님은 과연 선하신 분이신가?’하는 의문이 생길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오롯이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인내입니다. 삶 가운데 시련이 오고, 의문이 생길 때 그것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왜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십니까? 인내를 통해 정금같이 나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내하는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축복을 숙성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인내를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을 이끌어내셨습니다. 요셉은 10대의 나이에 노예로 붙잡혀 가서 오랜 기간 고난을 당하면서 인내했습니다.
요셉의 인내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태동시키고 구원해내시는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계획을 실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하게 하심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삶 가운데 다가온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인내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승리의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일과 사건들을 당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천하 만물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에 사용되는 소품인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아픔과 실패도 소품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실패하면 실망하고 낙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 상처, 아픔, 실패, 좌절, 낙담, 질병 등을 소품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 아픔, 배신, 질병 등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어 일일이 설명하거나 해석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 필요하며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나 되게 하시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시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무언가 잃어버리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울까 생각하십니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겨 억울해하고 원통해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더 좋은 것을 쥐어주려고 준비하십니다. 고난이 닥치면 우리는 “하나님 왜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를 지은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므로 우리를 어떻게 해야 기막힌 작품이 되는지를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내 밖에 없습니다. 그 끝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인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찬양을 합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결과를 주실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졌던 초월적 기쁨은 궁극적 승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히고, 학대를 받고, 매를 맞고, 돌을 맞지만 최후에 승리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통을 없애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미래에 주어질 영광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종종 하는 말 가운데 노년이 좋은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노년에 죽을 고생을 하는 것보다 지금은 힘들지만 끝이 좋은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결말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결말이 좋은 삶이 약속된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힘들고 불안한 것은 끝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욥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결말은 우리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 손에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것처럼 큰 자산은 없습니다. 현제가 좀 불안하고 안정이 안 됐다고 해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느긋하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시계추와 같아 어느 때는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런 삶 가운데 사람들은 왜 절망합니까? 사방을 둘러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최후의 승자가 진정한 승자입니다. 우리에게는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매 순간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부활의 신앙을 다시 한번 다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고난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대로 포기하거나 결론 내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실패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수많은 상황을 재료로 사용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며,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내하여 승리의 결말을 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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