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만이 인생에게 도울 힘과 소망이 되십니다.
▣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신실하게 돕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시편 146장 6절 ~ 10절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오늘은 일주일 중에 가장 감사가 충만한 예배일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부어주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날마다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시편 146편부터 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 ‘할렐루야 시편’입니다. 여기에서 “할렐루야”는 ‘할렐루’와 ‘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는 ‘찬양하다, 자랑하다’라는 ‘할랄’의 복수 명령형입니다. ‘야’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줄인 형태입니다. 그러므로 “할렐루야”는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할렐루야’가 ‘할랄’의 복수 명령어로 만들어진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혼자뿐만 아니라 온 성도가 함께 찬양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온 마음으로, 모든 악기로, 온몸으로,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온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함을 의미합니다.
다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에게 더 큰 행복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백성들을 창조하신 목적은 찬양을 받기 위함이라고 사도행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 생각에, 마음에 하나님 찬양이 넘쳐 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찬양함이 지극히 마땅하다고 생각하시는 여러분은 “할렐루야!”를 외쳐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시편 146편의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5절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복이 있다는 선포이고 6~10절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하는 자를 진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들을 영원히 통치하시는 진실하신 하나님을 평생토록 찬양하기로 결단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하나님만이 인생에게 도울 힘과 소망이 되십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자기를 향해서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한 후에, 그렇게 할 것을 다짐합니다. 시인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심임을 알기에 평생토록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에게도 시인과 같은 찬양과 결단이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3~5절은 자기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없다고 말하는 시인입니다. “귀인들”은 권세도 있고, 재력도 있는 고위층 세력가들을 말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이런 사람들 찾아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있는 고위층이어도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피조물일 뿐입니다. 한편 도움보다는, 내 편을 들어줄 것 같은 친한 사람일지라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위층도, 힘없는 이웃도, 나 역시, 모든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갈 처지일 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서는 피차일반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무능해집니다.기도도 안 나오고, 잠도 안 오고, 음식도 안 넘어 갑니다. 살아 있기는 하나 더 이상은 살아 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 도와줄만한 사람 같아서 찾아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온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내 속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온 주변 사람들이 내가 말한 내용을 다 알고 있었던 적은 없었나요? 사람을 믿고 의지하려다가 오히려 더 낭패를 당해 본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낭패를 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쉽게 사람을 의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곁에 있어서 눈에 보이니까요. 눈에 보이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쉽게 찾아가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하나님은 너무나 멀리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다급한 문제가 닥치면 하나님은 아예 먼 곳으로 숨어버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내 형편 도와줄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더 피곤하고, 더 상심한 인생이 되어버립니다.
시인 역시 이것을 너무나 깊이 체험했기에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자기의 소망을 누구에게 두어야 복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도움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있음을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게 될 사람은 재난당한 자에게 소망을 줄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도움과 소망을 주실 분이라는 말씀을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신탁하셨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다급한 일이 닥쳤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면 들어주시고,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고난을 위하여 태어나 자기 고생을 지고 인생길을 간다고 욥기에서도 말씀합니다.
불에 타는 것 같은 인생 고난에 빠졌을 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사람 중에 어느 누가 재앙을 만났을 때 자기를 찾아오면 도와주겠다고 할 수 있겠는지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희망을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재앙이 닥친 이유를 아시고, 재앙에서 구원하시고 더 좋은 미래를 예비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 이후로 어떤 귀인도, 힘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않기를 결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도움으로 삼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신실하게 돕고 계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시인은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유를 창조하신 만물을 진실하게 지키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는 이 하나님은 바로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치인데,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거룩한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을 하셨고 성실하게 지키시고 계시기에 그 진실하심이 영원합니다. 영원히 진실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요동하는 마음일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조석변(朝夕變)’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분초마다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닌지요? 세상이 빨라지면서 사람 마음의 변화도 빨라져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더욱더 귀인들도, 힘이 없는 인생도 진실하게 살지 못함이 당연합니다. 오직 영원히 당신의 진실함을 지키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7~9절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소망을 둔 사람들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는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찬양합니다. 사람은 정의롭지 못한 심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겪는 자들을 외면하거나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려움을 당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신 분이심을 시인은 찬양합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갇힌 자에게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정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만이 힘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소망이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8절에서는 말씀하기를,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비굴함으로 엎어진 자들의 자존감을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애쓰는 자들을 의인이라 칭하시며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9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같은 약자를 돌보시는 분이시며 악인들은 멸망하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경계하고 외면하며, 고아와 과부 같은 경제적 사회적 약자들을 무시합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 속에 내재되어있는 악한 죄의 본성이 표출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들에게 선을 베풀어야 함을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약자들을 진실하게 돌보아주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시며 또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본문 10절에서 찬양하고 있습니다.
“시온아”는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백성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모든 백성들아 하나님은 영원히 진실하심으로 통치하시는 분이시니 다 함께 찬양하여라”입니다. 영원한 통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진실하심으로 백성들을 지키시며 돕는 분이십니다. 천국 영생을 보장해 두었으니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억눌리고, 주리고, 갇혀서 괴롭게 살라고 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맹인으로 살고, 비굴한 인생으로 살며, 나그네와 고아처럼 떠돌다가 만나자고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시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땅에서도 우리의 도움이요, 소망이 되어 주시는 진실한 통치자 하나님이심을 찬양한 시인입니다.
이 시편 146편의 찬양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이런 선한 일들을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서 행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돌리게 해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심으로써 이 땅에 사는 모든 눌린 자, 병든 자, 갇힌 자, 고아와 이방인과 과부로 살던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의 일을 이당에서 행하는 종들을 통해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고 계십니다. 믿는 자들에게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자유와 치료를 주신 하나님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저와 여러분도 우리를 자유케 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찬양을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천국에서의 영생복락만을 바라보게 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도움으로 삼고 의지하는 자에게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건강하게 해 주시고, 마침내 천국의 영생복락까지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야말로 구원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도 시인과 같이 할렐루야로 시작하고 할렐루야로 마치는 매일을 살기로 다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46편의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께 자기도 찬양 드릴뿐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믿는 자들도 그 하나님을 함께 찬양함이 마땅하다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외친 것입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의 말대로 다 되실 것을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복 있는 우리 성도님들이 다 되어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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