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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이웃에게 유익을 끼치는 자랑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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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된 자랑을 하려는 육체의 본능을 끊어 버립시다.

▣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과 공의를 자랑합시다.

 

예레미야 9장 23절 ~ 24절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서는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던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받은 신탁을 기록한 책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한 시점에서, 이제 남 유다의 멸망도 코앞에 이르렀다고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백성들은 미운 가시와 같이 여겼습니다. 멸망을 향해 고집스럽게 달려가는 이스라엘 때문에 하나님은 근심하며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은 거짓 예언을 하며 자기 자랑을 일삼았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를 속량 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권세를 휘두르는 포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그런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위대한 지도자라고 아부하며 따랐습니다. 그들 모두의 마음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그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심히 걱정스러운 하나님이셨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만이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듣고 알고 눈물로 살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에게 망령된 행실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멸망을 피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왕과 제사장, 선지자,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때리고, 조롱하고, 구덩이에 가두는 등 그의 대언을 무시했습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허탄한 일들을 자랑삼으며 죄짓는 길로만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망령되고 허탄한 자랑을 버리고 마땅히 해야 할 선한 자랑을 우리 입술에 담는 지혜를 배우기를 소원합니다. 

1. 헛된 자랑을 하려는 육체의 본능을 끊어 버립시다.  
히브리어로 “자랑”은 “할랄”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 뜻은 ‘찬양, 밝게 비추다’라는 뜻과 ‘미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뜻이 “자랑(할랄)”안에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랑”은 긍정적인 영향도 끼치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기 때문입니다. “자랑”의 긍정적인 영향은 누군가의 자랑을 듣고 ‘나도 저 사람처럼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영향은 ‘저 사람의 잘난 척 듣는 것이 피곤하다’는 반감을 사게 하는 경우입니다. 사실상 “자랑”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본능인 것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해야 할 자랑과 해서는 안 될 자랑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자랑하지 말 것과 자랑할 것을 구분해주시고 있습니다. 먼저 자랑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의 지혜와 용맹(힘)과 부요함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육체를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을 맨 나중에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하늘, 땅, 해와 달과 별, 공기, 동식물, 등을 창조하실 때에 어떤 사람도 동참하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홀로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신 것을 온전히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만물을 잘 관리할 능력이 그 안에 주어졌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기시고 관리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다스림의 권세 덕분에 오늘날 수많은 직업이 생기고, 지속적으로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지혜, 용맹, 부요를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 반론을 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의 주인 앞에서 모든 것을 얻은 자가 감히 내 것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도적질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랑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교만한 자의 모습입니다. 실제로 사람의 많은 소유를 세상에서는 축복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악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때에 그것을 경계하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성공과 부요를 자랑합니다. 자기의 성공과 부요를 자랑하는 이유는 교만하게 되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잠언 27장 1절에서도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말씀함으로써 자기가 자기를 주관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릴 권세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의 은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제한적이고 유한한 피조물임을 인정할 때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현재의 형통이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교만한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의 고통 역시 자신이 벗을 수 없는 굴레인 듯이 낙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좋은 때로 인한 헛웃음도 금방 지나가고, 힘든 때의 눈물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존재하시며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봄날의 꿈과 같이 지나가면 사라질 인생 자랑이 결코 우리의 자랑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도 믿는 자들에게 자기 자랑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런 자랑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자들이 하는 자랑이라고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듣는 사람을 매우 피곤하게 만듭니다. 자랑하는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들어는 주지만 복잡한 마음 상태로 들어주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웃을 피곤하게 하는 이런 세상 자랑의 본능을 끊어내야 합니다. 잠언 27장 2절에서도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기 피알’은 자기 자랑은 피하고, 주님 자랑은 널리 알리는 피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늘 말씀대로 자기의 지혜, 용맹, 부요를 자랑하는 헛된 삶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더욱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행하신 사랑과 공의를 자랑합시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람들의 “자랑”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헛된 자기 자랑은 피곤한 관계를 만들지만, 이타적인 자랑은 선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랑을 해야 한다는 신탁을 받았습니다. 자기의 지혜, 용맹, 부요함을 자랑하는 말을 그치고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깨달은 것을 자랑하는 것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멸망을 눈물로 선포해야 했던 이유가 자랑할 가치가 전혀 없는 자기 자랑에 심하게 빠진 지도자와 백성들을 각성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하나님을 자랑하는 성도로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자랑이 모든 인간의 본능이라고 볼 때, 성경을 관통하는 인간론은 항상 죄짓는 본능에 충실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구약시대의 모습이나, 신약시대의 모습이나, 오늘날의 신앙 모습이나 너무 비슷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고 세상 능력으로 살아가면서 믿겠노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모습에서 하나님께로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돌아서야 합니다.
  
본문 24절의 “하나님을 알다”라는 히브리어는 “야다”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아는 복입니다. “야다”의 의미는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서로 속속들이 체험하여“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말씀과 성령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체험하는 앎입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앎입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의 성막을 예루살렘으로 모시어 들인 날에 주의 이름을 자랑하며 찬양하는 그런 앎입니다.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랑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워지는 찬양을 드린 다윗입니다. 이런 자랑은 듣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랑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다윗과 같은 자랑이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경외가 우리의 마땅한 도리요,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선한 자랑을 하게 합니다.그런 사람은 자기 입술로 헛된 자랑을 늘어놓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자기를 자랑해 주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 이웃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즐거운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자랑이 내가 가진 재물과 지식과 건강이나 성공이 아니어야 합니다. 이런 자랑은 다 허탄한 악(우상숭배)일 뿐이라고 야고보 사도도 꾸짖었습니다. 우리는 안개같이 잠깐 살다가 사라질 육체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겸손히 순종해야할 사람입니다. 세상은 강하고, 똑똑하고, 잘 살아야 자랑할 만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내가 약함을 자랑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크고 혁혁한 업적을 이룬 사람일수록 더욱 자기가 약함을 자랑하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엄청나게 받고 크게 사용된 사람입니다. 그 은혜 덕분에 바울은 사나 죽으나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로 올라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가 간증하기를 내가 몸으로 올라갔는지 몸에서 빠져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울이 교만해지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어서 몸이 몹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바울이 그 가시가 떠나가기를 아무리 기도해도 가시가 떠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너무 큰 계시를 받았기 때문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 바울 사도가 드린 고백이 이와 같습니다.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큰 계시를 받음도, 육체에 사단의 가시를 주심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자기의 연약함을 기쁨으로 자랑하기로 결단한 바울 사도의 고백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기의 성공, 출세, 건강, 부요를 통한 자랑은 허탄한 것이요, 악한 것이라고 강조한 야고보 사도의 말씀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끊어내야 할 자랑과 더욱 분발하여 힘써야 할 자랑을 분별하는 시간을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우리는 육체의 본성을 따라 자기를 자랑하는 허탄한 죄를 끊어내야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처럼 교만한 자랑을 늘어놓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자랑은 나의 잘났음과 가진 것이 많음과 아는 것이 많음이 아닙니다. 오직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는 것과, 창조주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이 베푸신 헤아릴 수 없는 은혜와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깨닫고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는 성도가 되어 주변의 모든 이웃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의 선한 자랑을 듣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함께 하나님께 영광 돌리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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