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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영원한 도성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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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조롱과 유혹을 뒤로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로 나아갑시다.

구약의 제사보다도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신앙이 되십시오.

하나님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신앙이 되십시오.

 

히브리서 13장 12절 ~ 17절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잘 산다”는 것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사람마다 잘 사는 방법과 방향이 다를 것입니다. 내세를 모르면 ‘죽으면 다 끝’이라고 말하면서 땅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죽음은 삶의 끝’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던 그때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일에만 집중했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깨닫고 난 후로는 세상에서 잘 사는 삶이 우리를 집중시키지 못합니다. 이제는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럴 능력은 우리 안에 조금도 없어 슬픕니다. 조금씩 믿음이 성장할수록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주님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오호라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꼬?”하며 탄식을 하셨으니 우리같이 미련한 자야 오죽하겠는지요?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감당할 능력이 전무한 성도들을 돕는 편지가 서신서들입니다. 히브리서도 예외 없이 믿음의 길로 가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한 서신서입니다. 믿는 유대인들을 위한 편지였지만, 오늘날에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적용되는 권면입니다. 하나님 계신 영원한 도성에 마음을 두며 이 땅에서도 잘 살도록 성도들에게 보낸 권면입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을 향해 가는 성도로서 히브리서의 마지막 권면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하며 함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 조롱과 유혹을 뒤로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로 나아갑시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유대인 성도들의 온전한 신앙을 위해 히브리서를 기록했습니다. 다시 오시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은 그들의 생각보다 더디어졌고, 로마의 박해와 유대인들의 핍박은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견디다 지쳐 유대교로 돌아갈까 말까 갈등하는 성도들을 위한 권면입니다. 성도들의 이런 모습들은 그들을 가르치는 지도자에게는 너무 큰 고통입니다. 잘못된 길로 달려가는 자녀를 애타게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과 같은 고통입니다. 흔들리는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려고 저자는 유대인성도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수많은 구약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 인용했습니다.  


잠시 동안의 고난을 잘 견디고 믿음을 지키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고난을 못 이기고 배교하면 영원한 심판을 받는 날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명의 히브리인인 저자는 왜 “그리스도 예수”를 선택해야 하는 지를 하나하나 예를 들면서 설명합니다.
첫째, 예수는 하나님 계시의 완성이시기 때문  
둘째, 천사보다 우월하신 예수
셋째, 모세보다 우월하신 예수  
넷째,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신 예수  
다섯째, 더 좋은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시기 때문이라는 논증을 통하여 주님의 우월성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유일한 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성도는 예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세상이 타락하면 할수록 세상에 빛을 비춰야할 복음이 더욱 필요합니다. 복음이 필요하면 할수록 세상은 더욱 복음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거절하고 모욕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유혹에 끌려가지 않을수록 더욱 미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신령한 지식이 있기에 땅에서의 만족과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지 않습니다. 육체의 수명이 다 한 후에는 부활하여 영생복락을 누릴 준비를 하며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영원한 도성을 향해 나아갑니다. 본문에서 권면하는 내용도 바로 이것입니다. 히브리 성도들은 황제 숭배, 철학 숭배, 유대교 교리, 세속적 성문화, 배금 사상 등에 섞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에게 거절되고 수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가장 큰 역경은 조상대대로 믿고 배워 온 유대교적 삶의 뿌리였습니다. 가족이요, 친구, 이웃인 유대교인들의 회유와 핍박을 이겨내며 복음을 따르는 것이 얼마큼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유대인인 히브리서 저자도 공감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극도의 고통을 극복할 정공법으로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며 영원한 것을 찾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율법보다도, 모세보다도, 대제사장보다도 우월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수치를 감당하심으로 죄인을 구원했음을 깨닫고 믿고 구원받은 그들입니다. 지금은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모욕과 핍박을 그들이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들도 자기 수욕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누가 복음 14장 27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으면 제자가 아니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수욕을 짊어지고 유대교 밖으로, 영문 밖에 있는 십자가로 가자고 합니다. 그곳에서 영원한 도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박해의 환경 가운데에서 히브리서는 성도들에게 단호히 요구했습니다. 역경을 피하여 숨는 신앙이 아니라 뚫고 나아가는 신앙을 선택하라는 것이지요. 저와 여러분의 신앙에는 얼마나 강한 박해, 조롱, 회유가 있습니까? 요즘은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교회가 자주 가십거리가 되고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초하는 잘못도 있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조롱하고 수치를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그들의 박해와 조롱을 뚫고 예수 앞으로 나아가고 계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구한 도성을 찾을 수 있는 주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2. 구약의 제사보다도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신앙이 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 의식에서 제사는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을 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백성들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것으로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봉헌했습니다. 제물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보여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감사를 드리는 표현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친교를 맺고 복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영원한 제물로 받으심으로써 구약의 제사를 폐하셨습니다.

예수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어 온 인류를 위한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좌와 허물을 사하시려 대신 죽으셨음을 믿는 자마다 더 이상 피의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완전한 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제물이 되어 단번에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피의 제사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드리는 입술의 찬송과 선을 행하고 나누는 삶의 예배를 정성껏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제사의 시대를 끝맺고 예배의 시대를 불러왔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유대인들이 제사에 쏟는 정성보다 더 지극한 정성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드려야 할 예배에 대하여 로마서 12장 1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을 삼는 예배를 드리라고 합니다. 영적인 거룩함이 육체의 거룩함으로 나타날 때에 하나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문란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사는 우리 자녀들에게 삶의 예배자로 살도록 권면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입술에서 이웃을 비방하는 말, 거짓말, 더러운 말, 음란한 말, 공격적인 말을 잘라내야 합니다. 이것이 훈련되지 않고는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예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으로 술 취하고, 마약 복용, 매춘, 간음, 흡연, 도둑질, 도박에 빠져서는 선을 행하는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하면서 회개하고 그런 종류의 말들을 다 끊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입술에 합당한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우리의 입에서는 오직 찬송만 나와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가 교회 안에서의 예배뿐 아니라, 삶 전체가 예배여야 한다는 것을요. 우리가 이 요구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될 때에 세상이 교회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말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참 되게 예배하는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누구보다 먼저 구약의 제사보다도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하나님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는 신앙이 되십시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훈련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순종”이 아닐까 싶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자유와 풍족함을 누리던 아담과 하와가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것도 말씀에 순종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주된 내용이 순종에는 복이요, 불순종에는 저주와 심판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순종하는 삶에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순종을 위한 권세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도여서도 아니고, 바람직한 제도 여서도 아닙니다.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의해 세워주신 왕정제도를 통해 왕, 제사장, 선지자,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 백성, 종, 등의 질서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했던 그 질서에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질서 있게 유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의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성직자들의 직분의 권위에도 순종해야 됨을 말씀합니다.


부모나 정부의 통치자들의 권위가 그렇듯이 성직자들의 권위도 분명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복종이나 순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목회자들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하며, 스스로가 매우 현명하며 훌륭하므로 목회자들에게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들의 가르침이 기록된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대신에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집니다. 하나님은 목회자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보다 성도들 영혼을 돌봐야하는 더 중한 의무를 목회자에게 지우셨습니다. 목회자들은 이러한 일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유익을 위해서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 다하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훈련하려고 애를 씁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영혼에 해가 되는 것들에 항상 주의하며, 그들이 위험스러운 잘못에 대해 경고하고, 사탄의 유혹을 경계하도록 경고하고,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 그들에게 경고해 줍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추구하기보다 영원한 본향을 향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이런 목회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성도들의 신앙 모습입니다. 


본문 17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 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목회자가 즐거움으로 목회를 하도록 돕고 근심으로 목회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목회자가 근심하며 목회하게 하는 성도에게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목회자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자원해서 목회자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우셔서 하나님의 양을 돌보는 것이 목회의 직분입니다. 부르심, 소명, Calling이 없으면 감당되지 않는 직분입니다. 눈물 골짜기를 지나며 많은 물을 저장한 샘을 준비하는 길을 가야하는 외로운 직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며 목회자 홀로 뿌린 많은 눈물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못났어도, 부족해도, 조롱과 멸시를 당할 만한 실수를 해도 부르심에 순종하기 위해 눈물 골짜기를 묵묵히 지나가고 있는 목회자를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똑똑하고 잘난 성도일지라도 못난 목회자를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똑똑한 성도를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이요, 못난 목회자를 창조하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들을 한 교회로 부르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면전의식, In front of God의 신앙으로 목회자를 존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목회자자들은 교인들이 잘 되는 것을 자기의 가장 큰 기쁨으로 삼습니다.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회개하고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주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에 함께 주님 앞에 서는 것이 목회자들의 기쁨과 면류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대한 핍박이 절정에 이르고 있던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 히브리 성도들의 믿음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너무 안타깝게 여긴 무명의 히브리인 지도자는 구약을 일목요연하게 인용하면서 예수의 우월성을 기록하여 교회마다 회람하게 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도들을 장차 올 영원한 도성으로 인도하실 유일한 분이심을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과 동화되고 끌려가는 믿음에서 범사에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아가는 믿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구약의 제사보다 더 정성껏 예수 이름으로 찬양을 드리고, 선을 행하며 나누어 주기를 기뻐하는 삶의 예배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 세우신 권위에 복종하는 마음으로 목회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의 가르침에 순종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와 같은 신앙 모습을 통하여 영원한 도성을 찾아 나아가는 순례자로 살아가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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