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마른 사람들
▣ 믿는 자 안에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넘치는 성령님
요한복음 7장 37절 ~ 39절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성령으로 인도받고, 도움 받고, 채움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를 증거하는 영, 교회를 세우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기도, 성령 충만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찾아가시기도 하고, 오라고 초청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초막절에 이런 일들을 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초막절은 일주일동안 광야 40년 동안 돌보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초막 안에서 지내는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장막절이라고도 불리는 초막절, 이 세 명절에는 모든 노동을 멈추고 동거하는 이방인들까지도 명절을 지내라고 명하셨습니다. 초막절이 다가오자 동생들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세상에 이름을 알리자고 했습니다. 동생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육체의 자랑거리로 삼으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아직 올라가지 않겠다”고 집에 남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결코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며칠 후, 초막절 명절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홀로 올라가셨습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에는 제사장이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와 성전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40년의 광야 생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신 일을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속 배경은 바로 이 초막절 마지막 날입니다. 명절 마지막 날, 물 붓는 관행이 있는 날에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마른 사람들
육체의 목마름과 상관없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갈증이 있습니다. 시원한 물을 실컷 마시고난 다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이 갈증은 영적갈증입니다. 이것은 ‘본성적 갈증’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본성적 갈증’은 생태계의 여러 동물들에게서도 ‘귀소본능’, 또는 ‘회귀본능’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 안에는 하나님을 찾아가는 귀소본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기에 그 목마름을 해결할 길을 찾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으로 잃어버린 회귀의 길에서 헤매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의 ‘회귀본능’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는 물줄기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인생인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일 년에 세 번 하나님께 제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규례였습니다. 원근각처에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족들과 함께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서 회개의 제사를 드림으로써 관계를 회복하고 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일주일 동안 명절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은 물을 마시지 못해서 느끼는 목마름이 아니었습니다. 시원한 냉수를 아무리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영적목마름으로 갈급한 영혼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러한 목마름을 보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조상대대로 하나님을 믿어온 사람들이고, 모세오경과 시가서와 선지서와 예배도 있었습니다. 매주 안식일마다 회당에 모여서 말씀을 배우고, 명절에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며 하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각 가정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릎에서 모세오경을 암송하고, 율법을 잘 지키도록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에게 영적지도를 열심히 받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을 다스릴 권세를 가진 로마군병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로마세력을 개와 같이 비천하게 여길 정도로 영적우월감도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믿음만이 거룩한 믿음이라는 영적우월감이 이스라엘민족의 자존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민족만을 하나님 백성으로 선택했다는 선민사상이 특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몹시 목말라 있음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 못에서 길어온 물을 제단에 붓는 날에 그들을 찾아오셔서 “내게로 오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개처럼 천하게 여기고 상종하지 않는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셨던 예수님입니다. 천한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꾼 천하디 천한 사마리아여자가 한 낮에 사람들을 피하여 우물로 나왔습니다. 자기의 괴로운 인생으로 사람들의 시선조차 피하고 싶은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셔서 다시 목마르게 될 샘물 말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영생의 샘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자가 말합니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 사마리아여인의 고백이 모든 인류의 고백입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이 사마리아 여자나 명절을 마친 유대인들이나 다 목마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본향으로 돌아가는 물길을 찾아 헤매는 연어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긍휼이 가득한 마음으로 명절에 모인 사람들을 주님이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여전히 목마른 모습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과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어떤 모습일까요?
2. 믿는 자 안에서 생수의 강처럼 흘러넘치는 성령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도, 율법도, 지도자들도, 예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목마를 수밖에 없는 영혼들에게 주님은 내게로 와서 물을 마시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 중 이사야서, 에스겔서. 요엘서, 스가랴서에는 ‘구원의 샘’, ‘생수의 강’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증언한 물을 얻을 길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장 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의 생수(Living water)가 흘러넘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어도 예수님을 믿어야 다시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그들이 알아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가 되어야 영적 갈증이 해결할 수 있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수의 강은 곧 성령이라고 39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생수는 성령을 말씀합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의 충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이 계속적으로 부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은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시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이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둘째, 왜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요? 유대인들은 모든 감각과 정서를 신체의 각 부위로 표현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심장과 배는 가장 내면적인 정서와 감각의 자리이자 전인격을 가리키는 깊은 곳입니다. 즉, 사람의 ‘내면, 안의 안, 마음의 속’과 같이 깊은 내면을 “배”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와 정서, 가장 깊은 욕망의 원천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상태가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셋째,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아직 성령이 그들에게 계시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아직 성령이 오시지 않은 것은 예수께서 부활의 영광을 받으시기 전(前)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오순절 날에 마가다락방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이, 불의 혀가 갈라지는 것과 같이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모인 사람이 각각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이로써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에게서 성령의 생수의 강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박해와 모욕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 돌아온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들의 배에서 성령의 생수가 강같이 흘러넘치므로 결코 목마르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사도와 성도들에게 부어주신 이러한 성령의 생수가 명절 마지막 날을 맞이한 유대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예배를 드리며 초막절 명절을 지냈어도 여전히 목마른 상태였습니다. 성령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가 그 안에 없는 사람에게는 성령도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날마다 성령이 임하시는 상령 충만이 계속 되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치는 은혜가 날마다 더해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조상대대로 하나님을 믿어온 유대인의 초막절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크게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인생은 목마릅니다.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목마릅니다.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성경 지식이 풍부해도, 온힘을 다 해 헌신하고 봉사해도 목마릅니다. 그 사람 안에 생명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목마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와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 받고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은혜로 우리는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을 받는 은총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주임을 믿는 자의 깊은 곳에서 성령의 생수가 흘러나옵니다. 그 생수의 강은 영혼이 목마르지 않도록 성령 충만의 기쁨과 평안으로 영혼을 적셔줍니다. 이것은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늘 평안과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회귀본능’을 이끌어주시는 생수입니다. 모든 영혼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은 지금도, 또 장래에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렇게 외치실 것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와서 성령의 생명수를 마시라”
우리 일생을 다하는 날까지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하나님께 돌아감으로 생수의 강을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게 하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오직 말씀과 기도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근본은 말씀, 기도, 성령 충만입니다. 여러분의 깊은 곳에서 성령의 생수의 강이 항상 흘러넘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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