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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우리를 친구로 부르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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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복 있는 친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 ~ 16절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 끝 날이 이르러도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입니다. 그 주님 품에서 늘 평안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버지, 나, 너희, 친구, 종, 등의 호칭이 나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과의 대화 중에 부른 호칭들이었습니다. 가정적 호칭, 사회적 호칭을 섞여서 부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호칭들이 사랑으로 연결되어진 호칭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으로 부르고,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불러질 때에 따듯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너희는 나의 친구”라고 부른 대상은 주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르신 것은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아직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갈릴리의 비천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나의 친구”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에게 진심을 다하셨던 분입니다. 제자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친구로 부르신 것입니다. 
본문의 주님 마음을 깊이 헤아림으로써 예수님의 친구다운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유월절 전날 밤에 제자들과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7장이 유월절 전날 밤에 제자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본문들입니다. 예수님이 떠날 시간이 다가왔지만, 제자들은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제자들은 갈 수 없다는 말씀에 제자들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날 저녁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일일이 씻기셨습니다. 그 밤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떠나고 안 계시면 남은 제자들끼리는 서로 사랑만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실상 주님과 함께 다니는 동안 제자들은 누가 더 큰 자인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 자인지 다투고 시기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고, 큰 자가 되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시며 다툼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이제 주님이 떠나고 나면 제자들을 더 이상 가르치실 수 없는 주님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제자도, 공동체도, 친구도 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12절에서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한 것 같이” 주님이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13절이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을 분명하게 증언합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침내 그런 사랑을 예수님은 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우리가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못한다는 것을 주님도 다 아십니다.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그 사랑은 너희가 할 수 없음을 나도 안다. 그러므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내 계명만 잘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나의 친구가 분명하다고 인정해 줄께 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우끼리, 가족끼리 서로 미워하지 말고, 다투지 말고, 시기하지 말고 섬기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이 대신 죽어 주셔도 아깝지 않을 친구로 불러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은 오늘의 우리 역시 깊이 깨달아야하는 중요한 계명이기도 합니다. 서로 다투고 미워하는 교회나 가정은 예수 제자들의 공동체가 될 수 없습니다. 다툼, 시기, 미움, 분노, 분열은 사탄을 기쁘게 하는 악덕들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고, 화목함으로써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공동체를 이루어야 예수님의 제자도 되고, 친구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신 그 사랑을 받은 예수님의 못난이 친구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계명을 꿈속에서조차 지키려고 애쓰는 예수님의 친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이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사실상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主, Lord,)”로 불렀습니다. 그 호칭의 뜻은 상전, 주인입니다. 주님과 자신들의 관계가 주종의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고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더 이상 주종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15절에서 “친구”라는 말은 ‘필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육체적인 우애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베다니에 살던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였습니다. 둘 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미 필로스(친구)라고 제자들을 불러오셨던 주님이었습니다. 종이 아니라 친구이므로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것들을 다 알게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과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을 존중하시고 친구로 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를 택하여 친구라고 부르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족과 귀족을 친구로 택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작은 어촌의 어부들과 죄인이라고 멸시 당하던 세리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들을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일 뿐 아니라 죄인을 영접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버림받아야 마땅한 죄인들을 선택하셔서 친구로 삼고,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결코 죄의 종노릇에서 자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못난 친구들의 대속물로 지불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친구가 되는 영광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대가도 치루지 않고 죄의 종노릇에서 자유해졌지만, 실로 값비싼 예수님의 목숨이 지불된 결과입니다. 그 값은 은이나 금으로도 살 수 없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만 가능했습니다. 죄인을 위한 피흘림의 믿음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가 예수님의 친구로 선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입었음을 항상 기억하고 그분의 계명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잘 지키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지요? 

3. 예수님은 우리가 복 있는 친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친구라고 불러주신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과의 사이에는 비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비밀이 없는 친밀한 친구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숨기는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아브라함이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역시 친구들이 주님 덕분에 항상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다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신 예수님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나무에 잘 붙어 있는 가지는 포도나무와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포도나무를 잘 압고 공동운명체가 됩니다. 그렇기에 가지에 잘 붙어 있는 가지가 포도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열매를 맺어야 예수님의 친구로서 합당할까요?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의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닮은 모습, 작은 예수가 된 모습을 보시려고 친구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 붙어 있도록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이 담대하게 나가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와 선교에 힘쓰며 교회를 세우고 제자 삼는 열매 맺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기도와 말씀에 붙어 있는 사람에게 임하십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열매를 맺듯이, 말씀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잘 붙어 있어 성령의 열매 맺는 친구되게 하려고 우리를 선택하신 것을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좋은 친구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구한 것들이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서로를 사랑하는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 성령 안에서 무시로 말씀과 기도드림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친구 삼으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로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비천한 죄인인 우리를 찾아 오셔서 친구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못난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은 우리를 예수님의 친구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의 영원한 친구가 되는 비결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와 가정에서, 직장에서 다투고 분노하지 않는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복 있은 친구로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친구가 된 우리입니다. 예수님의 친구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깊이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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