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주일 말씀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반응형

에스더 3장 5절 ~ 7절
5. 하만이 모르드개가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매우 노하더니
6. 그들이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알리므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대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7. 아하수에로 왕 제십이년 첫째 달 곧 니산월에 무리가 하만 앞에서 날과 달에 대하여 부르 곧 제비를 뽑아 열두째 달 곧 아달월을 얻은지라


에스더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이 일은 아하수에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에스더 1:1) 에스더서는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스룹바엘에 의한 1차 귀환과 에스라에 의한 2차 귀환의 중간 시기에 바사(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왕이 즉위한 지 3년 후에 큰 잔치를 베푼 장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이 잔치가 그리스를 정복하기 위한 마지막 점검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성경은 180일동안 진행된 아하수에로의 잔치, 그리고 다시 7일간 이어지는 일반 민중들을 위한 잔치의 규모를 소개함으로 페르시아 왕국의 영화로움과 힘에 대해서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수산궁의 7일 잔치가 열릴 때는 늦은 여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여러색상의 화려한 휘장들은 화려함 뿐만 아니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먹을거리 또한 매우 풍부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시는 것도 각 사람의 마음대로 하게하였습니다. 서로 모양이 다른 수많은 금잔들, 베줄과 은 고리, 대리석 기둥,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성 등 이러한 표현들은 아하수에로 왕의 풍부함을 상징하는 묘사들입니다. 이러한 아하수에로의 화려한 잔치에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잔치로 인해 왕비 와스디가 폐위되고,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 역사가 배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산궁 잔치의 마지막 날에 아하수에로는 왕후 와스디에게 왕후의 옷을 입혀 자기 앞으로 데려오게 했습니다. 이 왕의 명령을 왕후인 와스디가 거절합니다. 

 

와스디의 거부를 아하수에로는 권위에 대한 거부로 생각했습니다. 왕의 마음 속에 불붙는 진노는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아하수에로가 이 문제를 모사들과 의논했다는 것은 왕이 이성적이고  상식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그가 진노에 마음속이 불붙는 듯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간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사 중에 하나인 므무간은, 그 나라에 사는 모든 여인이 왕후의 행위에 대해 듣게 되면 그들도 왕후의 예를 따라 여인들이 권위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왕후는 왕에게뿐 아니라 지방의 관리들과 백성 모두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왕후가 다시는 아하수에로왕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조서를 내려 그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왕후에게 속한 모든 것을 빼앗고, 그녀의 지위를 다른 이에게 넘기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나라의 모든 여인이 권위를 존경하게 되는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이라 므무간은 말했습니다. 결국, 그 잔치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은 이 므무간의 조언에 찬성했고, 왕은 므무간의 조언을 따라 왕후의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번도 없다 하더라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게 될 에스더서를 통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에스더서에서 음모로 인해 말살 위기 가운데 처하게 될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한 나라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마치 중단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이미 인간의 모든 결정 위에 계시고, 온 우주 만물뿐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분으로 당신의 뜻과 약속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이루고야 마시는 분이심을 에스더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는 그 신실한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에게 무의미한 시간이 있을 수 없고, 우리가 겪는 어떤 일도 그냥 쓸모없이 버려지는 무의미한 일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해하지 못해 답답하고, 아픔이 있다 할지라도, 주님의 섭리를 믿고, 그 주님께 우리의 삶과 문제의 통치권을 내어 드린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뤄가실 것임을 믿음으로 보게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를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감사함과 기쁨으로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어찌 된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에스더는 부모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부모세대부터 포로로 끌려온 에스더는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포로의 삶을 살아가며 조국 땅을 단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이민 2세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유와 자신의 집과 가족을 포기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잘 것 없는 포로지에서의 삶의 자리, 매일매일 절망과 민족적 자부심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자리인 아하수에로왕의 새로운 왕후 후보로 궁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왕후가 되어서도 자신의 민족을 밝힐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에스더가 의도하거나 바래왔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신이 계획하지도, 꿈을 꾸지도 않던 삶과 환경으로 내몰리는 에스더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사촌오빠이긴 하지만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었을 것이고, 스스로 조심해야 하는 절제의 삶을 살았음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민족성을 중요시하는 유대인 여성으로 민족을 숨기고 왕후가 되는 것은 그리 매력적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와스디처럼 언제 폐위되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파리 목숨 같은 황후의 자리를 탐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분명 왕후가 되는 꿈을 꾸거나 소망하지도 않았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도 없었으나 하나님은 에스더를 준비시키시고, 그 상황에 처하게 하심으로 유대민족의 구원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어떤 것도 요구하지 못하는 에스더, 누군가는 에스더의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는 에스더의 인생을 만들어가시는 분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전 왕후인 와스디가 폐위되는 것부터 에스더가 수산궁에 들어가 새 왕후가 되는 순간까지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셨고,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여인들 중에서 에스더를 사랑받게 하셨습니다. 에스더서는 하만을 아각사람 함므다다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면서 그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암시해줍니다. 이 하만이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통치시에 총리가 됩니다. 그리고 하만의 지위는 이어지는 말씀,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이 다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돼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에스더 3:2)의 말씀처럼 당대의 최고의 세도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만과 모르드개는 새끼줄 처럼 얽히고, 설키는 운명이 됩니다.

모르드개의 가슴 속에는 절대자 하나님 이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경배하지 않고 굽히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이 원칙 때문에 모르드개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모르드개 뿐만이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가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하만은 인간적인 자존심을 걸고 한 민족을 말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만은 왕에게 유대인을 말살 하도록,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보물 창고에 바치겠다고 말합니다. 은 일만 달란트는 지금 가치로 3조정도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만은 그가 가진 재물의 부함을 의지하여 권세도 얻었고, 스스로를 든든하게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하만은 미신을 의지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유다인 말살에 재수 좋은 날, 곧 길일(吉日)을 택하고 싶어서 사술에 의지했습니다.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대표적인 원수였습니다. 옛날 베냐민 지파의 조상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의 목숨을 멸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득죄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베냐민 지파의 후손으로 아각의 후손인 하만과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선조 사울의 사건을 알고 있었으며, 이 싸움의 승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굳게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에서 나타납니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스더 4:14) 모르드개의 믿음은 진리 앞에 담대함과 확신으로 움직이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라는 말씀을 우리는 항상 적용해야 합니다. 내가 성공한 것은 이때를 위함이라.내가 아픔을 지나온 것은 이 때를 위함이라. 내가 재물을 얻는 것은 이 때를 위함이라 등등… 우리의 성공과 실패, 경험과 배경, 건강과 아픔은 모두가 ‘이때’를 위해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준비시켜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들 속에서 모든 일상들을 일사각오를 이입(移入)하기에 너무 비장해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사각오의 기도는 모든 환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새롭게 바꾸어 놓는 힘입니다. 전민족이 함께 한 일사각오의 기도는 그 민족을 구해 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 쎈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이 일사각오의 기도로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고자 했던 나무에 도리어 하만이 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기도에 귀를 세우셨고, 모르드개의 손을 번쩍 들어주셨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마음으로 삼일 밤낮을 금식한 후,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갑니다.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그 사람이 누구이던지 사전 허락 없이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은 죽음을 담보하는 일이었습니다. 궁 안 뜰에서 에스더를 본 왕은 이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금 규를 그녀에게 내밉니다. 에스더의 접견을 허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에스더는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이것이 왕이 금 규를 내밀어 그녀의 접견을 허용한 이유입니다. 에스더라는 이름은 이렇게 사랑받는 이름이며, 여자로써 ‘가장 예쁨’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에스더는 매우 예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외모 만 예뻤던 것이 아닙니다.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라고 번역된 히브리 원어는 이성적 호감이나 남녀의 감정을 넘어선 표현으로, 왕으로부터 ‘은혜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자태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곧 ‘매우 사랑스러우므로’라는 표현은 ‘은혜를 받을 만한’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은혜 아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멸망에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여인이었다면 하만은 그 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하만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자기를 신뢰하고 자기 가진 것들을 자랑하는 사람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자기 짐을 지고 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가 자기가 준비한 높은 장대에 자기가 매달리는 인생이 된 하만의 삶의 결론이 된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지기에 힘들고 버거운 인생의 짐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일사각오로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기 힘과 가진 것을 자랑할 것이 없는 그 사람은 반드시 자기 인생을 섭리해 주시는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의 위기까지도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합니다. 

우리의 현재 삶의 자리가 막막하고,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에 처해있다면,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가 너무 간절함을 아뢰며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께 일사각오의 기도로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간절히 부르짖는 자를 구원하시고 낮은 자를 높여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깊이 체험한 모르드개, 에스더, 유다 민족과 같은 일사각오의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고난과 위기를 잘 극복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섭리하심을 체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반응형

'성경 >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롭게 되어야 할 나의 신앙  (0) 2020.08.16
마음을 기경 하자  (0) 2020.08.08
헌신  (0) 2020.07.26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  (0) 2020.07.18
하나님께 구해야할 것 한 가지  (0) 20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