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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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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죄를 서로 용서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왜 용서해야 하는가

 

마태복음 18장 21절 ~ 22절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인생길 가다 보면, 나만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주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 우리의 외로움을 깨끗하게 씻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 응어리진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동안 우리가 용서하지 못한 모든 것들이 다 씻겨 나가는 시원한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용서(容恕)”의 사전적 의미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줌”입니다. 얼굴 “용(容)”, 이 한자는 웃는 얼굴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라고 합니다. “容”자에서 모자를 쓴 사람이 눈이 감기도록 입을 크게 벌려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이시나요? 용서할 “서(恕)”의 문자 뜻을 살피면 “용서”의 뜻이 더 찐해집니다. 같을 “여(如)” 아래에 “마음(心)”이 놓였습니다. 즉,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라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웃는 얼굴”이 “용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얼굴이 항상 크게 웃고 있는 용서의 얼굴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누가 우리에게 가장 아픔과 고통을 줍니까? 내게 가장 많은 아픔을 주는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만큼 그 사람들이 나를 더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합니다. 그 사람을 다시 보거나 떠올릴 때 미소 지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용서”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아프고 고통스럽게 하기 전과 같은 마음으로 그 사람을 향해 활짝 웃을 수 있다면 용서가 된 것입니다.

 

1. 모든 죄를 서로 용서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오늘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질문의 내용이 이랬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용서가 아니라 사람끼리 짓는 죄를 얼마나 용서해 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당시 유대교 랍비들은 이웃의 죄를 세 번까지는 용서해야 너그럽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유대교 공동체에 속했다가 예수공동체로 옮겨간 제자들은 가족, 친지, 이웃들에게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베드로 마음에는 유대교에 대한 비교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기들을 핍박하는 유대교가 세 번 용서해 주는 것이 넓은 마음이라고 가르쳤으니, 우리는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주는 더 높은 수준의 종교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됩니까?”라는 자기의 질문에 “그렇고 말고! 그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주님의 대답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 일곱 번을 일흔 번 곱한 사백 구십 번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누군가 사백 구십 번이나 나에게 잘못한 것을 다 기억하고 셀 수 있겠는지요? 예수께서 사백 구십 번 잘못할지라도 용서해 주라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물론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도록 도와주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예수께서 모든 인류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죄인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 것처럼 그렇게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보내 주셔서 서로 무제한적인 용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지은 자도 자기의 죄를 용서했을 때, 비로소 웃을 수 있습니다. 이웃 때문에 고통당하게 된 피해자도 죄인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야 웃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인 모든 죄인들이 서로 죄를 용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이처럼 잘못을 저지른 자기 자신도 용서하고, 또한 자기를 아프게 한 타인도 동정하며 그 상황과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죄인이기에 누구든지 잘못할 수 있다는 겸손과 긍휼의 마음을 가질 때 서로 용서하고, 서로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불의한 길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도 용서하십니다. 

용서가 있는 곳에는 기쁨과 자유가 있습니다. 용서는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능력이 부어질 때에 가능해집니다. 성령이 계신 곳에는 참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가장 가까워지는 때는 서로 용서함으로써 자비와 긍휼을 주고받을 때입니다. 

 

2. 왜 용서해야 하는가?

용서와 사랑에 대해서 아무리 많이 강조하며 언급해도 여전히 중요하고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에게는 사랑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용서하지 못한 채 고통스럽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죄짓지 않을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잘못을 범하는 일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선인이어도 죄를 짓고, 의인이어도 죄를 짓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는 죄인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군들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잘못함'이 항상 양산되는 세상에서 서로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우리가 용서하는 일에 실패하면 분노, 원한, 불만 그리고 불화가 마음에 생겨납니다. 이런 부정적 마음으로는 도저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그 사람의 삶을 숯불을 머리에 이고 사는 것과 같은 괴로움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용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능히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함으로써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이 세상의 삶을 마치고 난 후에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자격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 은자를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복수심과 보상받으려는 마음을 포기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다.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도 용서해야 합니다. 나도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을 하나님께 다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가 알고도 모르고도 저지른 내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시고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나는 거저 주시는 하나님 사랑으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으면서, 내 이웃이 내게 저지른 죄는 다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도 내게 베풀어주신 용서를 회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이후(23-35절)의 만 달란트 빚진 자가 그런 사례의 사람이었습니다.  

한 주인이 만 달란트 빚진 종을 불쌍히 여겨 다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자 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주인에게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주인이 만 달란트 탕감받은 종을 다시 불러들여 마 18장 32절 ~ 35절에 말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용서받은 것처럼 내게 죄지은 사람의 죄를 다 용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제한으로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가 받은 용서도 무효가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자 자비입니다. 


용서는 가족, 친구, 이웃 등 모든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행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랑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데에 용서는 꼭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고서는 우리 역시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에게 죄지은 형제를 일곱 번 용서해주면 되겠는지를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용서를 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요, 전적으로 타락한 우리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게서 기쁨과 행복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우리와 함께 즐거워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나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음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무조건 용서함으로써 항상 기쁘고 행복한 얼굴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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