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이 왜 기쁨인가?
▣ 고통 속에 감춰진 은혜
▣ 연약함 속에서 배우는 기도
고린도후서 12장 7절 ~ 10절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여러분 때때로 간절하게 기도하시며 살아가실 텐데 기도에 응답 받은 때는 언제입니까? 기도한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응답으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믿으십니까?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는 130여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 등으로 말미암아 초토화된 이 땅에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축복하셨고,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받은 축복의 은혜를 우리는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선하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 당연히 기도한 대로 응답 받기를 원하며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로 응답받아서 좋은 경우도 있지만, 기도한 대로 응답받지 않아서 더 유익한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통의 해결을 위하여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바울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기도한 대로 응답되지 않았지만 바울은 크게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이 자신의 자랑이요,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왜 기도에 응답되지 않았음에도 기뻐했고, 자신의 약한 것과 고통이 오히려 기쁨이라고 이야기 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고통이 왜 기쁨인가?
바울은 육체의 가시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가 겪은 고통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문 9절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나서 바울은 더 이상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외적인 상황을 바꿀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적의 변화입니다. 모래바람이 불고 뜨거운 열기로 숨이 막힐 것 같은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베푸신 호의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은혜라고 합니다.
많은 문들을 다 닫아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문만이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다른 문을 다 닫아두십니다. 바울은 고통 속에 감추어두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통당하는 것을 본문 7절에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고통당할 때 우리는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커서 자만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의 가시를 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는 교만을 제어하는 장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자만하지 않고 겸손함으로 각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삶 속에서 꼭 기억해야 합니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것은 큰 나무이지 잡초가 아닌 것입니다. 바울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는 상당히 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삶의 고통과 육체의 가시로 나를 쳐서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주님의 뜻임을 깨닫고 범사에 겸손히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통 속에 감춰진 은혜
바울의 교회를 향한 눈물과 희생과 수고는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바울의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내세울 것이 있고 자랑할 것이 있으면 드러내고 싶어 참지를 못합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온전히 알 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결코 겸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교만해집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교만은 결국 그 사람을 망치게 합니다. 고통이 우리를 망치게 하지 않습니다. 교만이 우리를 망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 우리를 겸손하게 만져 주십니다. 우리가 겸손한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 인생의 주인공은 늘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영원한 주인공 되시며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는 유혹보다 더 큰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결정하려고 할 때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결정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하는 것은 자신이 왕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뿐 아니라 어떤 일을 성사 되었을 때, 이 모든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자랑거리로 여기며, 하나님을 왕따 시킬 때가 많습니다. 사탄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강자가 되라고, 힘 있는 자의 모습으로 살라고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 유혹에 빠지면 우리는 자아도취 되어 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사탄은 이용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었던 바울은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능력 있고 생산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간구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거절하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응답을 들은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부터 오는 고통이 있었음에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들였습니다. 참 응답임을 바울은 알았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고통 가운데 있느냐가 아니라 고통으로 말미암아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고통과 약점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면 고통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고통보다 무겁고 힘든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울에게도 고통은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통을 받아들였습니다. 고통보다 은혜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의 비밀을 꼭 알아야 하겠습니다. 건강을 잃고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이 행복한 상황은 아닙니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밀려오는 내적 상태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공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없이도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교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제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제가 능력을 행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 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이 드러나셔야 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히 약해짐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함은 삶 속에 불편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약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채워집니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할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많이 채워집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갖추면 잘되리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질그릇과 같은 약한 그릇에 담깁니다.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통을 영광스럽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약함이 그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원이자 동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약함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점을 바꾸어야 합니다. 약함은 불행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모자람도 축복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자신의 약함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나됨을 만들어가는 자랑거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약함이 아니었다면 나의 나됨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에 여러 가지 연약함이 있는데, 그것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자신의 연약함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의 나됨을 만들어가는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연약함 속에서 배우는 기도
바울은 자신의 고통과 가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였고, 하나님 앞에 더 많이 엎드려 기도 하였습니다. 만일 고통이 없었다면 바울은 하나님께 더 나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위기를 느꼈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가 길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갖습니다. 하나님께 더 엎드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머무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엎드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더욱 분명하게 들립니다. 연약함으로 인해 기도가 길어질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약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약함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은 계속 숨겨져 있습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고, 강함과 완전함을 자랑하고 주장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숨이 끊어질 듯합니다. 몸을 가눌 수조차 없습니다.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동서남북이 가로막혀 출구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부활’이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지 않아서 기도를 배우지 못합니다. 의지할 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딴짓을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척할 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다 자신을 더 믿습니다. 죽을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바울은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는 기막힌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삶의 깊은 고통 속에서 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간절한 기도 가운데서 깨달았습니다. 본문 1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약해지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그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자신에게서 사라지지 않는 어려움을 기뻐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연약함 가운데서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가 붙드는 것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답은 없습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살고 있습니까? 잘난 것을 의지하면, 그런 것에 미련을 두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삶이 어렵고 절망적이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여겼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런 삶을 주목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삶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약함을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부끄러워도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입니다. 그 연약함이 나를 나됨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망했다고 여기는 때가 인생의 꽃을 피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잘 나간다고 생각될 때가 오히려 망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절박함, 육체를 찌르는 가시, 말뚝처럼 박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약함과 고통으로 하나님만 의지 한다면 그 속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하나님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삶에서 매우 큰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떠한 처지와 형편에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는 망하지 않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허튼 것을 바라보며 방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여 간절히 부르짖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리 큰 고통도 연약함 보다 더 크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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