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의 모습
▣ 믿음의 눈을 뜨게 하는 사람
▣ 기도는 감겨 있던 믿음의 눈을 뜨게 합니다.
열왕기하 6장 13절 ~ 17절
13.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지난 한 주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돌보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을 접종하며 역병을 극복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곧 일상을 회복하고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이 되게 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 날이 심히 가까움을 기대하시며 지금의 어려움들을 조금 더 인내하시기를 바랍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인정하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을 인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상황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 않는 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에 대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증언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실체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5장 4절에 우리의 믿음으로 현실의 상황을 이길 수 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봄으로 세상을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계심을 바라보면서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의 모습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람왕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길만한 곳마다 군사들을 매복할 작전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그 계획들을 다 알아차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요리조리 피하도록 조언을 하는 겁니다. 결국 아람 왕의 모든 작전이 실패해 버렸습니다. 그러한 일이 여러 번 발생하게 되자 아람 왕은 자기 신하 중에 이스라엘의 첩자가 있다고 의심을 합니다. 그러자 신복 중의 하나가 자기들 중에 첩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가 왕이 침실에서 한 말까지도 다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람왕은 밤에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많은 말과 병거와 군사를 보내 성을 포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엘리사를 죽이는 일에 철저히 실패를 합니다. 아람왕은 사람이 결코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뿐입니다. 사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아람왕은 나아만을 고친 이야기뿐 아니라 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한 기적들을 다 들었을 겁니다. 듣고 알고 있어도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별개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별개라고 생각하는 마음은 믿음이 없는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내가 하는 일에 방해꾼 노릇만 하는 사람이 내 눈 앞에서 사라져 주는 것을 기뻐하고 좋아한 아람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내가 하는 일을 훼방하시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아람 왕과 별반 다른 것이 없지는 않은가요?
믿음의 눈이 없으니까 내 속을 뒤집어 놓으며 항상 방해꾼 노릇만 하는 그 사람을 위해 예수님 죽으셨다는 것을 못 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대신 죽이실 만큼 사랑하는 분임을 못 보는 겁니다.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왕이 탐욕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려고 엘리사같이 아람왕의 계획을 무너뜨리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는 계획과 소원은 다 이루어 주시지만, 사람의 악한 계획과 악한 소원은 물리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아람 왕의 악한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악한 소원 역시 들어 주시지 않는 것이 다행이요, 도리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사용하여 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면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부모나 친척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이웃이 될 수도 있고, 평소에 원수였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을 억지로 이루려다가는 아람 왕처럼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엘리사를 죽이려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나의 일을 가로막는 사람을 없애버리려는 패역한 아람 왕과 같은 위치에 서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눈이 없었던 아람 왕처럼 살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의 눈을 뜨게 하는 사람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물은 믿음의 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믿음의 눈은 있으나 감겨져 있었던 엘리사의 시종의 모습입니다. 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엘리사를 보필할 준비를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본 광경이 도단성을 빽빽이 둘러싼 아람 군대의 마병과 전차와 군사들이었습니다. 그는 엘리사를 늘상 따라다니는 자였으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위기를 당하자 곧바로 탄식합니다. 절망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좋을 때는 할렐루야 하지만, 힘들 때면 믿음을 잃어버리는 돌밭 같은 마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믿음의 눈은 있었지만, 질끈 눌러 감은 눈을 가진 자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눈을 꾹 감은 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엘리사의 사환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사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믿어지고 느껴집니다. 그 크신 사랑을 받았으니 나도 갚아드릴 길을 찾기 원해 헌신을 서원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하니 너무 힘이 드는 겁니다. 그리스도인 되는 길이 좁은 길로 가는 거라는 말씀은 멋진 것 같아서 따르려고 했는데, 막상 좁은 길로 걸어가는 방법을 실천하려니 죽을 것 같이 힘이 듭니다. 믿음의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눈을 크게 뜨고 믿음의 눈은 질끈 감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엘리사의 사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말씀의 은혜를 받기보다 바깥 환경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성도가 하루의 시작을 주님 앞에서 말씀 묵상과 기도로 시작하지 않으면 환경에 금방 굴복합니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인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창고에 던져두고 맨몸으로 나간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공격 앞에서 방어도 못하고, 공격도 못하고, 주저앉거나 도망치게 되는 겁니다. 그래도 이 사환이 기도하고 있는 엘리사 앞으로 나아간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던 엘리사가 그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처럼 믿음의 눈을 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이 보입니다. 기도로서 믿음의 눈을 뜨고 있던 엘리사는 도단성을 에워싼 아람 군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하나님의 천군천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미 보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 역시 때로 둔하여져서 믿음의 눈을 감고 있다가 큰 문제를 만났을지라도, 이 사환처럼 믿음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면 곧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엘리사는 믿음의 눈을 감고 있는 사환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엘리사와 같이 믿음의 눈을 감고 있는 이웃의 눈을 뜨도록 서로 중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3. 기도는 감겨 있던 믿음의 눈을 뜨게 합니다.
믿음의 눈을 감고 있었기에 놀라고 두려워 탄식하며 절망한 사환을 위해 곧바로 엘리사가 중보 했습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자기를 케어해 줄 수 있는 엘리사를 찾은 사환은 곧바로 중보기도를 받고 믿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리고는 엘리사가 보고 있던 산에 기득한 하나님의 불 말과 불 병거를 그도 보았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믿음의 눈을 열고 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눈을 여는 방법을 "기도"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믿음의 눈을 열면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위해 일하심이 보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일하고 계십니까?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곁에 계십니다. 자녀인 우리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믿음의 눈이 열리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 곁에 계셔 나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서 믿음의 눈을 뜨도록 기도해 주는 많은 중보자들을 예비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동료, 그리고 가족 또한 중보기도자입니다. 서로 서로에게 믿음의 눈을 뜨도록 중보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시어 들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를 만났다면 어떻게 그 위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현실의 문제만을 바라볼 때는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그 문제 위에 계신 주님을 뵙는 눈을 떠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물샐 틈 없이 에워싼 아람 군대를 이겨주시기 위해 항상 주의 불 말과 불 병거를 준비하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은 어찌해 볼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져 인생을 포기합니다. 믿음의 눈을 감은 사람은 그 문제 때문에 화들짝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믿음의 눈을 열고 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기도합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주실 지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성경은 주를 사랑하는 사람, 주의 시키신 일에 충성하는 사람일수록 환란 풍파가 많았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환란 풍파를 겪으면서도 주를 섬기는 일을 기뻐했기에 그들의 삶도 죽음도 가치를 발할 수 있었던 겁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이 많습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다는 성경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인생에 고통이 다가올 때마다 주님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한 번도 실망시키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따르다가 실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감을 때입니다. 우리에게 임한 아람군대를 무너뜨리시고 불말과 불병거로 우리를 둘러 진 치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믿음의 눈을 열고 오직 주만 바라보십시다. 우리 곁에 문제는 항상 있지만, 그 문제를 이겨주실 주님은 문제와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주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대신 죽이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많은 문제들을 만나셨지만,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셨습니다. 단 한 번도 원망 탄식 두려움 없이 성령님과 함께 문제들을 해결하셨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내 곁에 임마누엘로 와 계신 주를 바라보십시오. 사랑의 주님 안식 주십니다. 우리 함께 믿음의 눈을 크게 뜨겠노라 결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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