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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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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을 통하여

▣ 환경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에베소서 1장 1절 ~ 2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공동체인 교회는 무엇인가?’를 가르침으로써 ‘교회는 예수님이 현존하시며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이라는 교회론의 핵심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한 하늘의 능력을 부여받았는데, 그러한 특권에는 내적으로는 거룩한 삶, 외적으로는 복음의 전파라는 선교적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 또한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런 에베소서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납니다. 사랑 가운데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신 교회를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에베소 교회를 향해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책망하십니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견책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바울이 '사랑'을 그토록 강조했건만 결국 그 첫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가 안타깝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첫 사랑, 교회에 대한 우리의 첫사랑은 어떠한지가 따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by the will of God)”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고 밝힙니다. 참으로 담대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된 사도의 정체성으로 편지를 하고, 담대하게 교회를 축복하는 바울입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임을 선포할 수 있는 바울은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님들도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 그들 대부분의 고백입니다. 그것은 겸손한 말 같지만, 실은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함께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1.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현재와 장래의 우리와 온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된 말씀인 성경은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대를 거쳐서 영원토록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통합 찬송가 202장에 기록되어 있듯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귀하고 중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가난과 저주가 벗어지게 하시려고 이 땅에 가난하고 낮은 자로 태어나셨고,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려고 험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을 믿는 자마다 구원받고 하나님 자녀가 되어 천국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죽어 마땅한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세토록 전하는 성경말씀이니 어찌 귀하고 중한 말씀이 아닐 수 있겠는지요?
   
변함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 뜻대로 순종할 때 우리도 바울과 같이 담대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록된 말씀에서 분명한 언약을 찾아낼 때 이것이 곧 담대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언약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언약을 확실히 알고 믿는다면 ‘주님의 뜻이라면 응답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여 이것은 주께서 약속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고, 간구하오니 응답해 주시옵소서’라고 확신에 찬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보서 4장 19절의 “나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는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살아 나가려면 먹을 것, 입을 것,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이 필요하므로 그것들을 채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에게 절대로 필요한 것을 공급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이 분명합니다. 또 마태복음 6장 32절에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이런 필요를 구할 때에 ‘아버지시여!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이 아버지의 뜻임이 분명한 즉, 나의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죠지 뮐러가 오만 번의 기도 응답을 받으며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을 그대로 믿는 담대한 기도를 드렸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아들을 돌보며 먹이고 입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성경에 기록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분명한 언약을 찾아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연구해야 됩니다. 그리고 기도드릴 때는 그 언약의 말씀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해야 응답이 확실하게, 정확하게, 빠르게 오는 법이며 성경을 정독하여 하나님 뜻을 잘 분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2. 환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환경 가운데 나타내실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환경들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시는 것도 아니고 꿈이나 환상이나 소원과 확신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환경이 우리를 어떤 곳으로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의 마음이 평안이 있으면 환경이 아무리 답답하고 절망적일지라도 걱정하지 말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평안한 마음을 주시는 것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혀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지진이 일어나고 그들을 묶고 있던 차꼬들이 풀리고 문이 열렸습니다. 당연히 바울과 실라가 도망쳤을 것으로 안 간수가 자결하려 할 때, 바울이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두 사람의 매 맞은 상처를 치료해주고 그의 온 가족이 다 믿고 세례를 받았고 구원받았던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환경은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게 하는 축복의 문이 열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고난과 역경의 환경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시며 인내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라는 환경의 텃밭에 나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어느 곳, 즉 인도로 갈지, 아프리카로 갈지, 중국으로 갈지 또는 그 밖의 어디로 가야할는지는 환경이나, 형편에 의하여 인도하십니다. 때로는 환경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나갈 길을 막기도 하시고, 또는 여시기도 하는 것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는 주요한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른팔이 없는 사람을 부르셔서 오른팔을 써야할 일을 시키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양육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그의 환경을 선교사로 갈 수 있는 형편이 되게 하시기까지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환경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는 안전하고도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안전한 방법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확신을 받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확신을 받지 않고, 그저 주위 환경이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여 덮어 놓고 그 길로 나가다가는 그릇된 길로 나가기 쉽습니다.

여호수아 9장의 기사에 이러한 예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그 땅에 거주하는 자들을 다 멸하라는 원칙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는 오래전부터 그 땅에 거주하던 기브온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자기네가 그 땅에 사는 민족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면, 자기네의 운명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 기브온 거민들은 먼 나라로부터 찾아온 대표인 듯이 꾸몄습니다. 그 증거로서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 조각을 내 보이면서 여호수아에게 나아왔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보고서 그들과 화친을 했습니다. 여호와께 묻지도 아니 하였습니다. 우리는 환경가운데 일어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령께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뜻은 선하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마침내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녀는 좋은 환경에 너무 치우치지도 않고, 어려운 환경에 눌려서 주눅 든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이 환경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명히 보게 해 주실 때를 기다리는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 성령으로 말미암아
여호수아가 기브온 백성의 속임수에 속은 것과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지 않으면, 성경 말씀이나 주위 환경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에 방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우리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병자가 앓다가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또는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주실 최종적이며, 유일하신 분은 성령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도록 구하십시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님 환영합니다. 인정합니다. 모시어 드립니다. 의지합니다. 지금 오시옵소서’라고 성령님을 간절히 초청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사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을 부르셔서“본토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고, 어린 사무엘에게 나타나사 ”사무엘아, 사무엘아“부르시고는 엘리 제사장에게 전할 말씀을 하셨고,
아나니야를 부르셔서 “사울을 찾아가서 안수하라” 말씀하셨고, 빌립에게 에디오피아 여왕 내시의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라고 하셨으며, 안디옥에 있던 제자들이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으로 당신의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생각의 차이를 메워주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기도드릴 때, 우리의 좁은 생각을 넓혀주시고, 우리의 낮은 생각을 높여주시고,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을 이타적인 생각으로 변화시켜주시고, 내 중심의 생각에서 하나님 중심의 생각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 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항상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시어 들이시며 하나님의 듯을 잘 분별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 직분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자의 권위로 편지하고 축복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바울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완전히 다름과 같이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다른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 가지 환경 가운데 계시하시는 하나님 뜻에 잠잠히 순종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위에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잘 깨달아 믿고 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분의 뜻대로 기도하여 구하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다 받는 행복한 자녀요, 복된 크리스천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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