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안의 축복을 빌어줌
▣ 감사함으로 성도를 생각함
▣ 기쁨으로 성도를 위해 기도함
▣ 성도의 구원을 확신함
빌립보서 1장 1절 ~ 6절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때 유럽에 개척한 첫 교회입니다. 원래 바울은 1차 때 선교했던 소아시아 교회들을 돌아보고자 했으나, 성령께서 허락지 않으셔서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통과하여 무시아 앞에 이르게 됩니다. 그곳에서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으나 또 성령께서 허락지 않으셔서 드로아로 내려갔습니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환상을 보게 되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요청하기를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선교는 소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임을 깨달은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와 네압볼리를 경유하여 빌립보에 이르게 됩니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야 첫 성이며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바울은 이곳에서 며칠을 머물며 기도할 장소를 물색하다가 강가에 앉아 있는 여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주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 1차 구금되었을 때에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Epistle)입니다. 빌립보를 떠난 지 오래되었어도 로마에 구금된 바울을 끝까지 돕는 빌립보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저희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성도들의 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안으로는 다툼이 있고, 밖에서는 박해를 당하고 있는 빌립보에 편지를 보내 격려하고 권면한 4권의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바울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늘 동역했던 빌립보 교회에 대한 안부와 감사의 인사로 시작하는 편지를 통해 성도들을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평안의 축복을 빌어줌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편지로 인사를 합니다. 수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감독과 집사들입니다. 그리고 서신을 보내는 자는 바울이지만 디모데를 함께 언급합니다. 디모데가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설립하는데 동역했기 때문이고 빌립보 교회는 디모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바울의 서신서마다 꼭 등장하는 평안을 비는 축복을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모든 좋은 선물들입니다. 모든 인류와 피조물에게 공통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일반 은혜라고 하며, 구원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우리는 특별 은혜라고 합니다. 특별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 안에서 평강(peace)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자녀에게 베푸시는 인도하심과 특별한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 전도사, 소그룹 리더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성도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그들을 리더십으로 세워주셨고 하늘의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들과 아이들은 교회의 리더십들을 축복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우리의 구하는 것을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권세가 자녀 된 성도들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축복의 말이 넘쳐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주의 종들의 입술에 성도들을 축복하는 말이 항상 넘쳐나야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들은 성도들과 아이들은 서로를 축복하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될 때 세상을 비추는 등불로서의 교회의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될 때, 가족을 축복하는 가장, 이웃을 축복하는 가족들이 됩니다. 우리 입술에는 이웃을 축복하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있음을 항상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축복의 말이 자주, 많이 나오게 함으로써 축복이 넘쳐나는 교회를 함께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럼으로써 바울 사도가 성도에게 평안과 은총이 있기를 늘 축복했던 그 사랑을 우리도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감사함으로 성도를 생각함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 감사했을까요?
그 이유를 빌리보서 5절에서 밝히고 있는 바울입니다. 바울을 칭찬하고 자랑해 줘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옷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줘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첫날부터 로마에 감금되어 있는 지금까지 늘 바울의 사역을 돕고 있는 것에 너무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낳았더니, 잘 자라준 자녀가 되어준 것이 감사하다는 것이지요.
바울 곁에도 그런 성도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바울 버렸었다고도 했으며, 알렉산더와 후매네오는 믿음에 관하여 파선했다고도 했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고,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많은 해를 끼치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바울에게 많은 근심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사역자는 말씀 안에서 잘 자라나 복음의 일에 열심을 하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늘 기쁘고 감사합니다. 잘 자라난 성도들 역시 행복하게 살아가며 삶 가운데 선한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성도들로 인하여 감사가 넘치는 교회가 될 때에 성도들에게도 복이 많고, 부흥도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가 성도 여러분을 인하여 감사가 더욱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기쁨으로 성도를 위해 기도함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 기도할 때마다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쁨으로 간구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과 만난 첫날부터 빌립보 서신을 기록하는 순간까지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선교 사역에 기도와 선교 헌금을 통해 동참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항상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기쁨의 기도가 넘쳐나야 합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축복하며 드리는 사역자의 기쁜 기도가 넘쳐나야 합니다. 또 사역자들을 위하여 축복하는 성도들의 기쁜 기도도 넘쳐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만나주셔서 당신의 거룩하시고 아름다운 뜻을 이루십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보다 더 많은 은혜와 복을 받으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4. 성도의 구원을 확신함
바울은 복음을 위한 착한 일을 꾸준히 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했고, 기쁨으로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마지막 날까지 그들의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한다고 축복합니다. 비록 바울을 버리고 떠난 사람도 있고, 괴롭힌 사람도 있고, 세상을 사랑해서 믿음을 버린 사람도 있었지만, 바울의 사역을 도운 빌립보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증되어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사역자들의 사역 현장에는 많은 영혼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습니다. 이민이나 발령 등의 평온하고 일상적인 헤어짐이 아니라 시험에 들어서 교회를 떠난다든지, 믿음을 져버리는 경우는 몹시 아프고 슬픈 헤어짐을 체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종들은 헤어진 모든 사람들조차 마음에서 내보내지를 못합니다. 그 영혼들을 위하여 계속 기도하며 성령께서 끝까지 구원해 주실 은총을 확신하며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그들 속에서 감동 감화하심으로 이 선한 일들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들이 주님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능력과 의지로써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그것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의지는 자기의 욕심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점도 흠도 전혀 없으신 완전한 분이십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을 정도로 영원히 일정하신 사랑으로 성도들을 위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런 사랑이 빌립보 성도들의 구원을 완성시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리더들이 성도들을 향해서 품어야 할 마땅한 마음입니다.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지금은 불완전하고, 비틀거리고, 교회 공동체를 괴롭히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영혼일지라도, 주의 종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그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고 그의 구원을 확신하며 끝까지 양육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이처럼 성도의 구원을 끝까지 견인해 주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넘쳐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며,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목회자, 부모, 교사, 셀리더 등, 영적 리더들이 할 일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착한 일이 성도의 영혼 안에서 끝까지 완성될 것을 확신하며 축복하고 지지하는 것입니다.
공동체 community라는 라틴어 ‘communis’는 ‘함께 com’과 ‘선물 munis’가 결합된 말입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그래서 ‘함께 선물이 되는 이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공동체라는 헬라어는 ‘kommein’입니다. 그 뜻은 ‘함께 나눈다’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근본 의미는 기꺼이 선물이 되고, 나눌 수 있는 모임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할 삶의 모습입니다. 바울에게 복음을 배운 바대로 바르게 성장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 나누는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선물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울 역시 빌립보 공동체에게 구원의 선물을 나누어 준 귀한 존재였습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에 평안을 빌어주는 축복이 넘쳐났고, 생각할 때마다 감사가 넘치는 은혜가 흘렀습니다. 서로를 위하여 기도로 섬길 때 기쁨이 넘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 품 안에서 다 함께 만날 확신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가 지향할 공동체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가족 공동체도, 사회 공동체도 서로에게 이 같은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공동체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확장되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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