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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성도는 어떤 모습으로 사는 것이 마땅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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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주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과 경건으로 세상을 향해 모범을 보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 10절 ~ 14절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베드로후서는 예수님의 승천 이후 A.D. 60년대 후반, 오늘날의 터키 북부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쓴 베드로 사도의 편지입니다. 당시의 교회는 외부로부터는 로마황제 네로의 기독교 박해 절정기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내부에서는 거짓선지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 재림을 의심하는 위기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베드로사도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음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현재 로마에 의해서 순교를 당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교회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가지 못할까 봐 근심했습니다. 죽음을 앞 둔 사도의 앉으나 서나 교회 사랑, 성도 사랑이 느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사도는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더욱 확고히 하려고 편지를 쓴 것입니다. 베드로후서에 나타나는 이 상황은 그 시대에만 존재한 특별한 상황은 아닙니다. 교회는 훼방과 핍박을 계속 마주해 왔고, 앞으로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세상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가져와 하나님의 진리를 훼손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마주하고 물들지 않기 위해, 바른 길을 가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바로 종말이기에, 우리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이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죽음 앞에서 선 사도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는 도전의 내용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유언과 같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종말을 사는 성도의 바른 신앙의 길을 찾기를 소원합니다.    

1. 성경에 주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수님의 설교와 가르침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들의 선포를 기록해 둔 구약 성경을 인용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제자들도 성도들을 가르쳤고 그것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선지자들과 예수님과 제자들의 설교들이 많이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동영상을 통해서 계속 들을 수 있듯이,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설교와 제자들의 설교를 계속 읽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베드로는 선지자의 예언과 예수님의 명령과 사도들이 전한 내용들로 두 통의 편지에 썼다고 했습니다. 즉, 믿음의 가장 기본 원칙을 성경에서 찾아야 하는 타당성을 깨닫게 하려는 베드로입니다. 그의 편지들은 자기 말이 아니라, 예언자들과 예수님의 말씀, 사도들의 설교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나타난 거짓선지자들의 유혹하는 말을 믿어야 하는지, 선지자와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지 분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쓴 시점은 주님 승천 후 30년이 넘은 때였습니다. 그 시점에 활동한 거짓선지자들이 외치는 가르침은 주님의 재림이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재림이 자기들의 생각보다 지체되자 세상 상식에 맞는 새로운 믿음을 정립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판단으로 해석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성경을 자기 주관으로 해석하려는 여기에서 이단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포장지 밑에 불신앙의 독약을 숨기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런 식으로 믿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이 교회의 근심거리입니다.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구속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홍수를 대비할 커다란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실 정도로 관영한 죄를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심판의 홍수를 믿지 않았기에 아무도 노아의 방주에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방주가 완성되고 나자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쏟아져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았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이 “의”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결단코 세상의 계산과 판단을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종말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비드-19 창궐도 성경을 통해 적용해야 합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바에 의하면 역병, 즉 전염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역병을 그치게 하는 가장 빠른 길은 진실한 회개라는 것을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역대상 21장을 보면,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 인구를 계수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 백성 중 칠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었습니다. 다윗이 잘못을 깨닫고 회개할 때, 이스라엘에 내렸던 전염병이 그쳤습니다. 

자신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진실하게 회개할 때 하나님의 용서와 재앙의 끝을 보게 됩니다. 과학자들이 밝혀내고, 개발해낸 백신과 체료제로는 이 코로나 역병을 끝내지 못합니다. 전 세계가 거의 2년을 코로나와 싸웠지만, 결국 With Corona시대로 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의 회개와 거룩을 회복함이 코로나19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길임을 성경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잠언 16장 20절은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말씀합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당시의 교회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주의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길 만이 한 영혼도 멸망치 않고 회개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세상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 말씀에 주의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마땅한 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성도들이 가장 간절히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본문 12절부터 14절에 가르칩니다. “바라보다”라는 단어를 세 번 반복하여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이것들을 바라보며 거룩하고 흠 없이 살라고 다시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성도가 추구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임을 가르친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가장 최고의 가치를 두고 가르쳐야 할 것도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교회들이 되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보다는 “잘 살고 성공하는 크리스천의 삶”을 더 사모하게 하는 설교들이 선포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모두 다 성공에 목을 매며, 최고, 최대를 꿈꾸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라고 독려했습니다. 전도를 잘 하기 위해서라도 잘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것을 염려하셨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것이라는 가르침은 교회의 주된 가르침이 아니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이 가난한 것이 하나님 뜻이라고 가르치라는 것 역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창초 때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에게와 사람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에 대한 모세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심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녀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맹세와 언약까지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언역과 맹세를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지키고 계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약속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복을 받으라’ 보다, ‘믿고 순종하라’에 더 집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믿고 순종해야 복을 받는 것”이 성경이 증거 하는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로마의 박해와 거짓선지자들이 미혹에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전한 것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주님 오실 날을 간절히 사모하는 것이 복되다’입니다. ‘박해를 벗어나기 위해 배교하는 것 보다 박해를 당하다가 주님을 맞이하는 것이 더 복되다.’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것은 성경의 약속임을 믿는 것이 복이다’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재림을 가르쳐야 하고, 성도들은 이것을 사모해야 마땅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믿음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이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되겠습니까? 재림의 소망이 없다면, 어떻게 말씀에 육체를 복종시키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다시 오시는 날을 믿기에 주님 다시 뵈올 날을 사모하며,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멀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요? 이렇게 세상에서 믿음 지킨 우리를 주님 품에 안아주시고,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나의 종아” 칭찬해 주실 주님을 기대하며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사람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습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대로 주님 다시 오실 그날이 반드시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매 순간 믿음의 허리를 동이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3. 거룩과 경건으로 세상을 향해 모범을 보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됩니다. 그러나 믿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아닌지요? 광야를 통과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으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죄뿐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을 요구하시는 것은 사실 너무 버거운 소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마음가짐을 삶으로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거룩하게 살 능력이 없는 죄인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 받고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날마다 조금씩 거룩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더디고 느릴지라도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애를 써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날이 왜 이렇게 길어지고 있습니까? 너무 지루해서 기다릴 힘조차 없습니다.’ 박해와 영적 미혹에 시달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은 탄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말씀을 적용해야 함을 베드로는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의 변화가 얼마나 느리고 더딘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저도 성령 받고 변화 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옛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많음을 종종 발견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느리게 변화되어도 느리다고 탄식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멘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당하지 않고 다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9절) 회개한 영혼만이 구원받을 수 있고,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신부로 참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지금 오신다면 저와 여러분은 그분 앞에 세마포 입은 신부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우리 때문에 주님은 지금 당장 재림하실 수가 없습니다. 아직도 회개하지 못한 나의 영혼을 구원하셔야하기에 재림이 자꾸 미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앞에서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8절) 

우리의 첫 회개는, 주님이 나 같은 죄인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음을 깨닫던 날의 “회심”이었습니다. 세상에 잠겨 있던 나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놓던 날이기에 회심(回心)입니다. 이후의 회개는, 매일의 삶 가운데 본능적으로 저질러지는 죄들을 순간순간 회개합니다. 마지막 회개는, 어느 날 홀연히 주님이 임하실 때, 미처 회개하지 못했던 남은 모든 죄악을 다 회개하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주님이 오시는 날이 도둑 같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도둑이 생각지도 못한 때에 몰래 잠입하듯이 그렇게 갑자기 재림하실 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죄를 회개하되, 날마다 좀 더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해야”합니다. 그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마땅히 살아야 할 모습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요구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너그럽게 대합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아버지가 거룩하신 분이요, 죄를 싫어하시는 분이심을 세상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모르는 체하며 살아서는 안 되겠지요? 우리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종말의 시계가 너무 빠르게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모습임을 기억하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성도는 오직 성경에 주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세상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한 제자 베드로 사도가 성도들에게 보낸 유언과 같은 가르침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에 더욱 주의하며, 거룩한 행실과 겅건함으로 세상에 모범을 보이며,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종말 시대를 사는 성도로서의 마땅한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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