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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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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십시오.

▣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십시오.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십시오.

 

유다서 1장 20절 ~ 23절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그동안 전 세계 교회들이 COVID19로 인해 예배와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계속 구했습니다.
아직 온전한 회개에 이르지는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시고 더 은혜로운 세상을 예비해 두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혜를 기대하며 서로 위로하시고 좀 더 견뎌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곧 자유롭게 예배하며, 경제적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다시 하게 될 것을 기대합시다. 그런 기회를 다시 주시면 더욱 영혼구원에 온 힘을 다하는 예배자로 살 것을 결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유다서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여러 교회에 회람하도록 쓴 공동 서신서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는 모습을 본 후에 믿고 복음 전도자로 헌신했습니다. 이 편지는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의 교회에는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이단들이 교회에 들어와 성도의 믿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교회의 정통 가르침, 전통 및 권위에 대항하여 개인의 영적 신비체험의 지식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원죄와 회개 대신에 신비적 환영과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유다는 그런 그릇된 가르침에 대항하여 힘써 싸우라는 강한 어조의 편지를 3절에 썼습니다. 유다는 “믿음의 도”인 구원의 진리를 훼손하는 이단적 가르침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성도들이 올바른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서 군사적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당부했습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된 이단들의 침투는 오늘날 더욱 기승을 부리며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유다 사도의 권면을 들으며 저와 여러분도 참 믿음을 위해 하나님의 길을 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십시오.
유다는 영지주의자들을 “교회의 애찬에 암초,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 바람에 불려 가는 물 없는 구름,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같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으로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고 했으며, 다음으로는 “원망하는 자, 불만을 토하는 자, 정욕대로 행하는 자, 자랑하는 말을 하며, 아첨하는 자”라고 통렬히 비판했습니다. 즉,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는 악인의 정욕만 있을 뿐이지 진리가 없다는 고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버리고 사탄의 교만으로 고묘히 위장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의 이단들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사람을 우상화 하는 도구로 이용합니다.

 

사람을 우상화한 그곳에는 죽이고 도적질하고 멸망하는 사탄의 왕국이 있을 뿐입니다. 유다는 그것을 경고하며 성도들에게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라”말했습니다. 유다가 말씀한 “지극히 거룩한 믿음”이란 과연 어떤 믿음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가 궁금해서 저는 깊이 묵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광야의 백성들에게 “나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명령하신 레위기 19장 2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야한다는 것은 하나님 명령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믿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한 분이시지만, 죄인인 사람에게는 그런 거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혀 거룩하지 못함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진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회개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의 진실한 회개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신 후에 의롭다고 칭해주십니다. 우리의 “의”가 “칭의(稱義)”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의”는 죄가 없는 상태로서 하나님이 요구하신 거룩함을 회복한 상태입니다. 우리가 늘 성령께 의지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이유도 거룩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영지주의는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들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했습니다. 물질인 육체는 본래 악한 것이니 방탕과 음란을 저질러도 상관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악한 물질인 육체가 부활하는 일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도들의 신앙근본을 흔들리게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 말씀을 뭔가 독특하게 해석하며 미혹하는 것이 이단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거짓 가르침을 세우기 위해 상상할 수 없는 지적 노력을 하는 것도 이단의 특징입니다. 이런 이단사설에 대한 분별이 필요할 때에는 교회의 사도성에 권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성도들에게 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기록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 분열을 일으키는 자, 육에 속한 자, 성령이 없는 자”임을 성도들은 기억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 역시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명령이요, 자녀로서 부모를 배우고 닮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매 순간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십니다. 그 “칭의”로써 우리의 거룩을 회복시켜야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임이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된 회개로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2. 성령으로 기도하십시오.
성경 등장인물 중 기도를 가장 많이 드리고, 기도를 가장 강조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주님은 직접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셨으며, 무시로 기도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기도의 모범이신 예수님의 모든 기도는 성령으로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기도를 들으시고 구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도의 모범은 당연히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의 모든 기도도 성령으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성령으로 하는 기도일까요?

 

우리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할 때보다는 지치고 낙심할 때, 상처 받고 외로울 때, 죄짓고 두려울 때, 나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낄 때에 성령님은 우리 마음을 살펴 주시고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위해 기도의 감동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찾고 찾음으로써, 모든 문제들을 해결 받도록 기도할 마음을 부어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즉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그 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실 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 자녀로 살도록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과 예수님은 간절함으로 우리를 중보 하시는 분이심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에는 예수님과 성령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없는 기도는 혼자 중얼거리는 넋두리로 끝나버릴 위험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죄 지은 자들을 주님이 계신 자리로 오라고 간절히 부르십니다.
찬송가 528장에서도 주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어서 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는 주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는 성도라면 주님의 간절한 부르심이 들려야 합니다. 문을 닫고 숨거나, 다른 곳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찾아다닌다면 크게 잘못된 상태입니다. 이단에 깊이 빠지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아파할 때 성령과 예수께서 그들을 간절히 부르셨을 것입니다. 그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고 다른 것을 찾아 나섰기에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와 아픔이 있을 때 성령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 없는 사람이 될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유다는 성도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으로 기도하라”권면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원한다면, 매 순간 성령의 감동을 따라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함을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십시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갈망하는 주님은 안 오시고, 로마의 박해와 유대교의 핍박,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다가와 성도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 상황이 길어지자 믿음 지키는 것을 힘들고 피곤하게 느끼는 성도들이 생겼습니다. 유다는 이런 성도들을 독려하는 편지를 써야만 했던 것입니다.   
유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은 첫 믿음을 영생에 이르는 날까지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끝까지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의 한없는 자비와 긍휼을 입고 믿었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삶과 사역은 소외되고 가난한 자에게 긍휼을 베풂이었습니다. 배고픈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죽은 아들의 관을 붙잡고 우는 과부를 위해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저주의 불치병인 문둥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셨고, 장님, 벙어리,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을 긍휼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영원히 죽을 죄인들이 불쌍해서 구원시키려고 십자가에 달려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긍휼을 얻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의 긍휼은 한 영혼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영생을 얻기 원하는 긍휼입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그의 편지에 써서 기다림에 지친 모든 교회에 회람하도록 보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주님의 인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에도 인내가 요구됩니다. 한 영혼도 멸망하지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긍휼 때문에 재림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하나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우리 믿음이 점점 더 성숙하고 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십시오
예수님의 긍휼은 죄인들을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 주신 긍휼이었습니다. 그 긍휼을 입었기에 성도들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받은 긍휼로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권면합니다. 거짓 가르침에 속아 믿음의 첫사랑을 잃어버린 이웃들을 불쌍히 여겨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미혹시킨 거짓 가르침을 듣고 저지른 죄는 미워하되 영혼은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들이 저지른 죄를 나도 저지를 수 있다고 겸손히 인정하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자기는 절대로 죄 짓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구원을 겸손히 도와야 합니다. 교회는 죄 짓지 않는 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지은 자를 불쌍히 여기고 대신 회개하여 구원받게 하는 긍휼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을 믿음이 강한 지체가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긍휼은 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부분까지 불쌍히 여기고 힘써 돕는 마음입니다. 교회는 어려운 지체들을 도움으로써 긍휼사역을 통해 전도와 선교를 감당합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에 학교와 병원, 고아원 등의 사역을 선교사들이 감당했습니다. 그 은혜를 입은 나라로서 이제는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구제와 긍휼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영혼 구원과 구제의 긍휼사역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초대교회 안에 들어온 이단의 가르침으로 성도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도 있지만, 이단 사설을 따르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평안할 때보다는 위기가 닥치면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법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유다는 강한 어조로 이단들의 그릇된 모습을 폭로하며 성도들을 돌봤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첫 믿음을 잘 지키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자신을 건축하라. 성령으로 기도하라.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연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구원을 도우라.

이런 가르침으로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성도들을 안전한 생명선에 승선하도록 도왔습니다. 즉 믿음의 첫 사랑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는,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음을 책망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여러 곤란한 형편과 처지들은 우리 믿음의 진로를 막는 장애물이 될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사랑하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 모두 어떤 상황 앞에서도 믿음의 첫사랑을 소중하게 키워나가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잘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단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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