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주일 말씀

영으로 사는 사람

반응형

로마서 8장 12절 ~ 14절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오늘 말씀에서 우리 모두는 빚진 자들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죽기도 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육신대로 살면 즉, 육체의 정욕을 좇아 살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따라 산다면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여러 종류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금전적 빚을 질 때도 있지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등 빚을 지며 살아갑니다. 진 빚은 빚 진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합니다. 제 삼자에게 아무리 많은 빚을 갚아도 탕감되지 않습니다.


또, 오늘 본문은 우리가 빚을 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빚을 졌다는 것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에게 빚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빚은 죄의 본성에 진 빚이 아니기에 그 죄의 본성에 따라 살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빚을 졌다면 당연히 빚을 진 대상에게 빚을 청산해야지 엉뚱한 대상에게 청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죄의 본성에 빚진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가 죄의 본성을 따라 산다면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우리의 악한 본성과 싸워 악한 일들을 죽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 수 있음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저나 여러분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영의 사람입니다. 믿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되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하나님께서 영이시므로 우리 인간도 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영만 있습니까? 혼도 있고 육체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중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영에 속한 사람으로써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과 자신의 실력을 내세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혼에 속한 사람입니다. 혼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인본주의자입니다. 또한 육신의 감각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벳새다 광야에서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는데 해가 저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뭔가를 먹이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광야이기에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을 잘 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장 5절의 말씀처럼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시기 전에 제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시험하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때 빌립은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라고 대답합니다.


반면 안드레는 한 소년이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가져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가 가져온 것에 축사하시고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시니 군중이 모두 배불리 먹고 남는 것이 열두 바구니였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 혼에 속한 사람, 그리고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배고픈 문제가 급선무이고 먹을 것을 스스로 구할 수 없는 군중 그들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모인 군중들이 조금씩만 떡을 먹더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하며 광야에는 상점도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은 빌립은 혼에 속한 사람입니다.


혼에 속한 사람은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가능하면 도전하고 불가능하면 쉽게 포기합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영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믿고 한 소년이 가지고 온 도시락을 예수님께 갖다 드렸습니다. 안드레는 주님의 능력이 인간의 감각과 이성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믿는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부분의 사람은 육신의 감각이나 이성의 판단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리고 현대 인본주의적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과 경험으로 판단하고 해석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기적들과 부활을 부인합니다.


그저 예수님의 십자가 신앙을 본받아 심신의 평안과 인격 수양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주님의 기적과 참된 변화를 체험하려면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속이고 들어와 병들게 하는 원수 마귀는 우리들에게 믿음을 포기하고 소욕을 쫓아 살라고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야 합니다. 영의 속한 사람은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육신의 소욕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님께 순종하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빌립처럼 계산에 능하고 이성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안드레처럼 믿음으로 사는 영적인 사람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십니다.


오늘날 인간은 눈부신 과학 문명의 발달과 물질 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도 절망과 허무의 늪에 빠져 깊은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아무리 물질의 혜택을 받으며 풍요를 누린다고 해도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우리의 인생은 만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영의 속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 삶의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체험을 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으로 기쁨과 희락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체의 정욕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영, 혼, 육이 있습니다. 육신 자체는 나뿐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육신이 이끄는 대로 살면 영으로 사는 사람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정욕을 따르지 않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을 늘 의지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신의 정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성령님을 의지 한다면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육신의 정육을 따르지 않고 오직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승리의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혼을 따라 사는 삶”, 인간 중심의 생활과 생각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혼으로 사는 사람은 이성으로 깨달아지고 경험으로 증명된 사실만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으로는 성령의 역사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계시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속의 의미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혼으로 사는 사람은 인간의 힘을 의지하여 동분서주하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쉽게 삶의 목적과 가치를 상실하고 허무와 절망에 빠집니다. 결국 죄책과 허무와 죽음이라는 인생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체 염려하며 허무한 삶을 살다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내 이성적 생각으로 인간 중심의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사람,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고,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보혜사 성령님을 늘 의지하고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이 저주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즉, 성령을 알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면 “예수님을 주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시므로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지혜와 지식과 판단력과 능력을 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을 절제하고 이성과 교만을 깨트려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사는 사람은 늘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므로 마귀뿐 아니라 세상 유혹에도 걸려들지 않고 빛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세상 중심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택한 야곱이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나의 벗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낳은 독자 이삭보다 하나님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나의 벗”이라고 인정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영적 존재입니다. 육체의 정욕과 인간 중심의 생활을 단호하게 물리치고 영의 사람이 되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존귀하고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