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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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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감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감겨 있던 믿음의 눈을 뜨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열왕기하 6장 13절 ~ 17절
13.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일을 인식하고, 꿈꾸고, 말하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지 않는 것이 믿음의 세계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이에 대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즉, 믿음으로 생각하고, 꿈꾸고, 선포하고, 노력한 것들이 마침내 실제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 5:4에서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라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으로 현실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음을 증거 합니다.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눈을 뜨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세상을 이기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면서 든든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눈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1.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열왕기하 6장 8절 이하의 본문은 북이스라엘과 아람의 전쟁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람왕은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길만한 곳마다 군사들을 매복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그 작전들을 다 알아차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요리조리 피하도록 조언을 했습니다. 결국 아람 왕의 모든 작전은 실패해 버렸습니다. 그런 일이 여러 번 발생하자 아람 왕은 자기 신하 중에 이스라엘첩자가 있다고 의심합니다. 그러자 신복 중의 하나가 자기들 중에 첩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가 아람 왕이 침실에서 한 말까지도 다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아람왕은 밤에 엘리사가 있는 도단으로 많은 말과 병거와 군사를 보내 성을 포위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열왕기하 6장 8절부터 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아람왕은 엘리사만 잡아 죽이면 이스라엘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계산으로 도단을 에워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엘리사를 죽이는 일에 철저히 실패를 합니다. 아람왕은 사람이 결코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사실, 아람 왕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이미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바로 앞 장인 열왕기하 5장에는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왕의 조서를 받아 가지고 엘리사를 찾아가서 문둥병을 고침 받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문둥병은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이기에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씀만으로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아람왕은 자기나라의 일등공신을 치료해 준 엘리사에게 사례의 예물을 보낸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를 죽이기만 하면 이스라엘을 정복할 수 있다는 산술적인 계산을 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을 고쳐준 사람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상을 섬긴 자요,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와 다투는 것은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육체의 모습이요, 믿음의 눈을 뜨기를 거부하는 세속적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 내가 하는 악한 일을 훼방하시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믿음의 눈이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아람 왕과 별반 다른 것이 없지는 않은가요? 믿음의 눈이 없으니까 내 속을 뒤집어 놓으며 항상 방해꾼 노릇만 하는 사람을 위해 예수님 죽으셨다는 것을 못 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방해꾼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대신 죽이실 만큼 사랑하셨음을 못 보는 겁니다. 믿음의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 왕의 탐욕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려고 악한 계획을 무너뜨리는 엘리사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르는 계획과 소원은 다 이루어 주시지만, 사람의 악한 계획과 악한 소원은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사용하여 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면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부모나 친척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이웃이 될 수도 있고, 평소에 원수였던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을 억지로 이루려다가는 아람 왕처럼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엘리사를 죽이려 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나의 일을 가로막는 사람을 없애버리려는 패역한 아람 왕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서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눈이 없었던 아람 왕처럼 살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믿음의 눈을 감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인물은 믿음의 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믿음의 눈은 있으나 감겨져 있었던 엘리사의 시종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엘리사를 보필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 그의 눈에 도단성을 빽빽이 둘러싼 아람 군대의 마병과 전차와 군사들이 보였습니다. 혼비백산하여 엘리사에게 고하는 사환의 말이 본문 15절입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오리까” 두려워하며 탄식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는 엘리사를 항상 따라다니는 자였으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위기를 당하자 곧바로 탄식합니다. 절망합니다.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좋을 때는 할렐루야!지만, 힘들 때면 믿음을 잃어버리는 돌밭 같은 마음을 가진 모습입니다. 믿음의 눈을 꾹 감은 사람의 모습을 엘리사의 사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나를 사랑하사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이 믿어지고 느껴지십니까? 그 크신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을 갚아드리기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셨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마다 그런 마음을 다 가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하니 너무 힘이 드는 겁니다. 그리스도인 되기 위해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이 멋진 것 같아서 따르려고 했는데, 막상 좁은 길로 걸어가는 말씀대로 실천하려니 죽을 것 같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믿음의 길을 버리고 세상 사람의 방식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믿음의 눈은 질끈 감고, 세상을 보는 눈을 크게 뜨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을 동행하여 선교훈련생으로 따라나섰던 청년 마가 요한이 그랬습니다. 주님께 받은 은혜에 감격해서 두 사도를 따라 나섰는데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닌 겁니다. 추위, 배고픔, 유대인들의 박해, 가까이서 보게 되는 바울 선생님의 강한 성품, 등등 모든 것에 회의가 오고 준비되지 못한 자기 모습에 조차 회의가 드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교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환경에 눌려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감겼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눈이 있어도 그 눈을 감고 있으면 누구라도 마치 믿음 없는 사람처럼 구는 겁니다. 엘리사의 사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말씀의 은혜를 받기보다 바깥 환경을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성도가 하루의 시작을 주님 앞에서 말씀 묵상과 기도로 시작하지 않으면 환경에 굴복합니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인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창고에 던져두고 맨몸으로 나간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공격 앞에서 방어도 못하고, 공격도 못하고, 주저앉거나 도망치게 되는 겁니다. 그나마 이 사환이 기도하고 있는 엘리사 앞으로 나아간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던 엘리사가 그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처럼 믿음의 눈을 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이 보입니다. 기도로서 믿음의 눈을 뜨고 있던 엘리사는 도단성을 에워싼 아람군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하나님의 천군천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이미 보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 역시 때때로 둔하여져서 믿음의 눈을 감고 있다가 큰 문제를 만났다면, 이 사환처럼 믿음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면 곧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엘리사는 믿음의 눈을 감고 있는 사환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엘리사와 같이 믿음의 눈을 감고 있는 이웃이 눈을 뜨도록 서로 중보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3. 감겨 있던 믿음의 눈을 뜨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믿음의 눈을 감고 있었기에 놀라고 두려워 절망한 사환을 위해 엘리사가 중보했습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자기를 케어해 줄 수 있는 엘리사를 찾은 사환은 곧바로 중보기도를 받고 믿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엘리사가 본 하나님의 불말과 불 병거를 그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눈을 뜨게 하는 방법을 "기도"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도로 믿음의 눈을 뜨면 하나님께서 내 곁에 계셔서 나를 위해 일하심이 보입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일하고 계십니까?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곁에 계십니다. 자녀인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믿음의 눈이 열리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 곁에 계셔 나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세상에는 큰 것, 웅장한 것, 화려한 것을 향해서 눈을 뜨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보기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매우 소중한 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중한 일들을 잘 하도록 많은 일꾼들과 중보자들을 세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두에게 똑 같은 달란트를 맡기지 않으셨으며, 각 사람이 감당하기에 적당하도록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맡기신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사용하며 충성하는 일꾼을 기뻐하십니다. 충성하는 일꾼마다 믿음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를 위한 중보자들을 세워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많은 중보자들을 세우셨음을 믿습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도 믿음의 눈을 뜨도록 엘리사 같은 중보자를 세우셨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많은 중보자들을 예비해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에게 믿음의 눈을 뜨도록 중보 하는 기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저희를 위한 중보기도의 천사들이요, 함께 동역하는 동료 역시 부족하고 미련한 저희를 위한 중보기도의 천사들입니다. 우리 가족 또한 저희를 위한 중보기도자입니다. 저희 역시 성도 여러분과 우리 가족, 동료들이 믿음의 눈을 뜨고 주를 바라보도록 중보 하는 자로 세움을 받았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실 성령님을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시어 들임으로써 믿음의 눈을 크게 뜨고 오직 주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인생의 위기를 만났다면 어떻게 그 위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 인생을 물샐 틈 없이 에워싼 아람군대를 물리쳐주시기 위해 주의 불말과 불병거를 준비해 두신 하나님을 바라보시면 됩니다. 믿음의 눈을 열어 내 곁에 여호와 닛시- 승리의 하나님으로 와 계신 주를 바라보시면 됩니다. 예수님도 많은 문제들을 만나셨지만,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셨습니다. 단 한 번도 원망, 탄식, 두려움 없이 성령님과 함께 문제들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로,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믿음의 눈을 감은 사람은 큰 문제를 만나면 화들짝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몰라합니다.믿음의 눈을 열고 주를 바라보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요?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 주실 지를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예수님이 보내주신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주를 믿고 따르다가 실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감을 때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십시다. 우리에게 임한 아람군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불말과 불병거로 둘러 진치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우리 곁에 문제는 항상 있지만, 그 문제를 이겨주실 주님은 문제와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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