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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모세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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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선택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믿음 상 주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 ~ 26절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에 감동입니다. 우리의 바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의 은혜와 사랑을 더하여 주십니다. 오늘 드리는 예배에 큰 은혜가 있길 기대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흔히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면서 믿음으로 산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믿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녹이 어떻게 믿음대로 살았고,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그리고 모세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았는지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모세는 영웅적으로 산 사람입니다. 그의 삶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서 생명을 보존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가 사막의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은 참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애굽의 통치자 바로와 싸우면서 출애굽하는 장면은 얼마나 드라마틱합니까? 성경 전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름은 예수님 이외에 모세가 812회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 보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의 시체는 하나님에 의해 감추어져서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성경은 모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붙여질 수 있는 모든 이름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칭호라고 생각됩니다.

출애굽기 33장 11절 상반절에 보면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정한 친구와 교제하듯이 모세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라고, 역사상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모세의 이 위대한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믿음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믿음은 무엇입니까?

1. 믿음은 거절할 것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거절하고”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더 좋은 선택, 보다 나은 선택을 위하여 지금까지 우리가 소중히 여기던 것을 포기하고 거절할 필요를 만나게 됩니다. 모세가 거절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시 모세는 애굽의 18 왕조에서 후에 애굽의 역사에 단 세 명만 여자 바로가 된 사람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바로인 핫셉수트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런 바로의 아들이었습니다.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 권력, 부(富)였습니다. 모든 명예, 권력, 부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에 집착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도를 가르치면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모, 처자, 형제, 자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더 소중한 애정의 대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그녀(공주)가 소중하다고 느낄수록 그녀를 만나게 하시고 공주의 아들로 자기를 자라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더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맡기시는 사명을 위해 이제는 바로 공주의 품을 떠날 때가 된 것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바로의 공주라는 존재가 혹은 공주의 아들로서 자기에게도 돌아올 수 있었던 왕권이 그의 우상이 되게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애굽의 궁중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명예를 거절하였기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거절하고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움켜잡은 그것들(우상) 때문에 하나님이 준비하신 더 좋은 선물을 받지 못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손을 놓으세요. 그래야 자유합니다. 포기할 줄 알아야 더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포기할 것을 포기할 줄 알고, 거절할 줄 아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선택할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절한다는 것이 소극적 차원이라면 “선택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자주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한 철학자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에 있는 C(Choice)이다’라고 하였습니다. B와 D사이에 C가 있듯이 탄생과 죽음 사이에 선택이 있습니다.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거절은 거절을 위한 거절이 아니라, 선택을 위한 거절입니다. 거절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에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는 무엇을 선택하였습니까?


25절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그런데 그다음 26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고난 받기로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한 능욕의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살기로 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산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산다거나 그리스도를 위해 살겠다는 것은 결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위해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위해 산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그의 부모(아므람과 요게벳) 통해 그에게 분명한 가치관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이상 하나님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시는가가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깨우쳐 주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관심이 그의 백성들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위로하고 섬기는 일에 기꺼이 자신의 생애를 드리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일이 애굽의 모든 보화를 소유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가치관을 보려면 그의 선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기업 하시는 분들도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 비전과 핵심가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돈 벌기 위한 기업으로 인식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사람들은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보다는 죄짓는 인생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일까요? 본문 25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답이 있습니다. 죄에는 낙이 있습니다. 곧 쾌락이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죄짓는 것은 죄를 지을 당시에는 쾌락을 줍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낙(樂)은 잠시 잠깐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잠깐의 쾌락이 지나가면 죄는 반드시 우리에게 대가를 받아냅니다. 그 대가는 심판이요 영원한 파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잠시의 죄의 낙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고난과 보람의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는 광야(고난)의 시간이 없으면 기복신앙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홀로 광야에 내던져 있을 때 그때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광야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늘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 이후 잠깐의 쾌락을 버린 모세에게 하나님은 영원한 기쁨을 주셨고 애굽의 호화로운 삶의 버린 그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고, 공주의 아들에게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고, 바로의 궁궐의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짧은 고난, 잠깐의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그렇게 모세를 길러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당하는 이 모든 고난은 우리들을 귀하게 쓰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우리의 성격과 인격이 다듬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때에 순종하고 의지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있어야 부모가 귀한 줄도 알게 되고 가족이 귀하고 교회가 귀하고 몸이 아파보아야 건강이 귀한 줄도 알고 물질의 어려움이 있어야 물질의 어려움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깨끗하게도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단장하는 것도 고난인 것입니다.


우리는 대체로 고난을 피하려고 하고 고난이 있으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또 고난당할 때 누가 이럴 때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은 혼자 감당해야 할 자신의 몫이 있습니다. 고난이 빨리 지나가면 가치가 없습니다 

3. 믿음 상 주심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어떤 가치관을 가졌기에 세상 사람들이 다 원하고 부러워하고 놓기를 싫어하는 그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받는 어려움의 자리로 찾아가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받는 것을 더 큰 영광의 보화로 생각했습니까? 이는 그가 인생은 이 세상뿐 아니라 영원(영생과 부활이 있음)하다는 관점에서 믿음의 눈으로 인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지 그것은 우리의 가치관과 신앙을 나타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의 "믿음의 주여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이 이 땅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여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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