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주일 말씀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사람들

반응형

▣ 육신으로 나타내신 생명의 말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의 충만한 기쁨

 

요한일서 1장 1~ 4절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서신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에베소교회를 향해 사랑의 편지를 보냅니다. 당시 에베소교회는 영지주의 이단세력의 공격으로부터 시련을 크게 겪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靈知主義 , gnosticism)는 ‘지식’(gnosis)이라는 헬라어에서 유래했습니다. A.D. 1세기 중엽에 발흥해 3세기 초에는 로마 제국 내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상에 영향을 받아 교회 내부에 큰 혼란을 초래했던 이단사상입니다. 그들의 중심주장은 자신들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신비한 지식'을 가졌다는 것과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다는 ‘이원론’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태어나셨음을 거부했습니다.  

 

밖에서는 로마제국의 박해와 안에서는 영지주의의 공격에 노출된 성도들을 위해 사도요한은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단들의 미혹하는 가르침을 경계하고 올바른 그리스도론을 정립하기 위한 편지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증거 합니다. 예수님을 직접 모시고 다녔던 사도 요한이 증언하는 “나타내신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육신으로 나타내신 생명의 말씀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를 시작하자마자 생명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1절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태초부터 함께 계시면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도 같은 의미의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창조의 말씀이 성육신하신 성자하나님이 예수님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부르신 12명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이런 증언을 할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먼저 쓴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귀로 들었고, 그 몸을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 들려주셨던 말씀들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 성령을 보내주셔서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앞에서 주님의 죽음을 지켜본 유일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에 모든 제자들과 요한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오순절에 모여서 기도하다가 120명의 성도들과 함께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모여서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분부에 순종했기에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야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나신 분이심을 확실하게 깨닫고 사도가 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셔서 제자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담대하게 전하도록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 모든 제자들은 권능 있는 예수님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60년 동안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온 노(老) 사도가 증언하며 전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태초부터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나타나신 생명의 말씀이심을 깨닫고 믿게 해 주신 분은 성령님이셨습니다. 생명의 말씀이 예수님으로 나타나신 것을 눈으로 보고 듣고 만졌다고 담대하게 증언하게 하신 분이 성령님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 영원한 생명이 육신으로 나타나셨음을 직접 본 증인의 증언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도의 편지를 읽게 될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나타내신 생명의 말씀”이심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라는 말씀처럼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자들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를 믿게 해 주실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도 믿는 우리가 정말 복 있는 사람임을 믿으십시오. 게다가 우리는 보지 못한 예수님을 힘써서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보고 믿은 사도들과 같은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육신으로 나타내신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더욱 열심히 전하는 복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더불어 누리는 사귐의 충만한 기쁨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불어 누리는 충만한 기쁨이 있습니다. “생명”은 “살아있음”을 의미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특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움직임을 감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식물은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음으로써 살아있음을 온 세상에 나타냅니다. 살아있는 동물 역시 본능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자기가 살아 있음을 나타냅니다.  

본문 3~4절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사귐에 대해 말씀합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고 들은 바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사귐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전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가 충만한 기쁨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요,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하나님께서 다 창조하셨지만, 사람은 특별한 창조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창조물은 오직 사람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우리가 생명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듣고 배우고 점점 하나님을 닮아갈 때에 하나님께 얼마나 큰 기쁨이 더 해지겠는지요? 하나님의 형상은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완벽하게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그것입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의 성품을 본받음으로써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항상 바라봐야” 합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듣고 배운 것처럼 성도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 있는 사귐”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사귐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그분께 들은 바를 예수를 못 본 성도들과 나누었습니다. 바로 그 나눔을 누리는 자리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이 느끼시는 기쁨과 행복을 공유하도록 역사하십니다.    


말씀을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 예수님을 누리는 나눔이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시는 예배와 성도의 교제에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귐을 누리는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풍성한 사귐입니다. 이 “사귐”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하나님과 성도의 fellowship(교제)을 말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사귐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서를 쓰게 된 이유와 목적은 한 가지였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나누는 풍성한 사귐의 기쁨을 모두가 더불어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태초로부터 항상 함께 계셨던 말씀이신 예수님을 방황하는 우리에게 보내셨음을 전했습니다. 한 영혼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녀들이 되게 하셨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 것처럼 잃어버린 죄인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처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과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더불어 풍성한 교제(사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당부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바로 그 한 사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보내셨음을 힘써 전하는 사도 요한과 같은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반응형

'성경 > 주일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  (1) 2023.04.08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지혜  (0) 2023.04.04
아름다운 고난을 본받읍시다.  (0) 2023.03.20
모세의 믿음  (1) 2023.03.13
믿음의 눈을 뜨십시오.  (1) 2023.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