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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성령의 열매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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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갈라디아서 5장 22절 ~ 23절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지난주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사랑과 희락에 대하여 나눴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은혜롭게 잘 지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고차원적인 사랑인 아가페 사랑이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고차원적인 사랑이란 조건 없이 무조건 먼저 베푸는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대속의 제물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사랑이라고 나눴습니다. 또 우리가 성령 충만할 때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희락 즉, 기쁨입니다. 기쁨은 긍정적인 신앙의 열매이며,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면 주님 주시는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짐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화평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마음에 평안을 유지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함이 있을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워 숨어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평안이 너희에게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안함이 임하면 우리에게 어떠한 문제가 다가와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평안입니다. 환란과 풍파가 몰아치고, 문제와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대 요동하지 않는 평안입니다. 깊은 바다는 동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바닷가는 출렁이지만 깊은 바다는 늘 고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은 바다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깊은 바다의 신앙으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함이 넘쳐나야 합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함은 극한 절망에서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아니하고 주님 주시는 은혜로 이겨내는 평안입니다. 평강이 우리 마음에 늘 넘쳐나야 합니다. 우리 삶이 순탄할 때는 평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이 순탄하지 않을 때에도 찬송가 가사처럼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강 같든지 큰 풍파로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라는 고백이 우리 마음 가운데서 우러러 나와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원하는 악한 일들에서 멀리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웃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영혼과 싸우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불편함을 주더라도 그들에게 대적하지 마시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하십시오. 옛말에 맞은 자는 두 다리 펴고 잠자고 때린 자는 웅크리고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의 평안이 임하면 어떤 문제가 다가와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넉넉히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함은 극한 절망감에서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주님 주시는 은혜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주님 주시는 평안함으로 주님 주시는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래 참음
고린도전서 13장 4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즉, 사랑의 첫출발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잘 참지 못하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차라리 쏟아내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함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 인내하며 밭과 논을 잘 일구며 관리해야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과나무를 심으면 최소한 5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많이 심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화가 나는 것을 막 눌러서 억지로 참는 그런 참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해 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믿고 견디는 것입니다. 인내는 일이 제대로 잘 풀릴 것이라는 차분한 믿음으로 희망을 바라보며 믿고 견디는 것입니다. 훌륭한 스포츠 선수들이 그냥 탄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목표를 위해 훈련하고 또 훈련하여 정상의 위치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참고 견디며 맡은 일을 묵묵히 순종하며 헌신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그 문제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흥분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자비  
다르게 표현하면 친절입니다. 이웃을 향한 우리들의 섬김의 자세가 바로 친절입니다. 친절은 사람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만들며 폭넓은 대인 관계를 이루게 합니다. 친절은 사람의 마음의 문을 열리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제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율법학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율법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 율법학자는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네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대로 행하라고 하십니다. 율법학자는 그러면 누가 제 이웃입니까?라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소위 종교 지도자라고 하는 제사장도 쓰러진 사람을 보고 지나갔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봉사하는 레위 사람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당시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존중히 여기지 않던 사마리아인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 돌봐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누가 우리의 참 이웃인지 말씀하십니다.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요건에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긍휼한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딸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러한 행실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양선
양선은 착함을 말합니다. 즉, 착한 성품, 착한 행동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자신이 착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또한 늘 착한 행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착한 마음을 넣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사모할 때, 성령님 우리 마음에 좌정하셔서 착한 마음을 심어 주시고 빛의 자녀로 살게 해 주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장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운명이 바뀐 대표적 인물입니다. 삭개오는 로마 정부의 앞잡이가 되어서 많은 세금을 거두고 일부는 로마 정부에 바치고 일부는 본인의 부를 축적하던 자였지만 주님을 만난 후 삭개오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쭈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곱절이나 갚겠나이다"라고 그 후 그는 가이샤라의 첫 주교가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부름을 받은 것은 착한 일을 넘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사랑의 빛, 용서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미움, 분노, 상처가 있는 한 우리는 삶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만일 주변 사람과 많은 문제가 있다면 주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모든 원인은 자신한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착한 마음을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착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바뀌길 기도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투고, 미워하고, 분노하며 살지 않기 위해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며 살아갈 능력을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그리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치열한 경쟁 가운데 착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깨우치지 못하고 세상 탓을 하며 지나가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주위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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