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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주일 말씀

성령의 열매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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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성

온유

절제

 

갈라디아서 5장 22절 ~ 23절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지난주까지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중 여섯 가지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나머지 세 가지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나누겠습니다. 하나님과 나와 관계에서의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그리고 나와 이웃과의 관계에서의 성령의 열매는 오래 참음, 자비, 양선까지 나눴습니다. 오늘은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의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나누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일생일대의 가장 큰 축복이고 기적이며 특권인 것을 믿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이러저러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1천만 그리스도인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화되고 성령으로 충만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완전히 새롭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할 것입니다. 그 출발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충만을 받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각종 은사가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1. 충성
성령의 열매 중 나와 나 자신과의 성령의 열매 중 첫 번째는 충성입니다. 충성은 믿음 그리고 실신함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충성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최선의 모습을 나타내 하나님께 인정받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진실하지 않게 자신 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앞에서 잘하는 척을 보이려 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충성이 아니라 아부나 위선입니다.

성공은 충성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각각의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 재능으로 열심히 일해서 주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상급이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열의 능력이 있는데 다섯까지 밖에 못하면 충성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신 분량대로 온 힘을 다했을 때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게 됩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충성스럽게 여겨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기쁨과 감사와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직분 주시고, 사명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우리의 직분은 계급장이 아닙니다. 영광스러운 섬김의 직분입니다. 평신도로 있을 때는 가끔 불평하며 부정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있는 감정을 다 표현하며 소리치고 다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직분을 맡고 제직이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섬기며 충성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직분자의 첫 출발 집사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라고 ‘섬기는 자’, ‘하인’ 등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직분자가 되었다는 것은 열심히 교회를 섬기며 궂은 일은 앞장서서 하고 예배가 은혜롭게 되도록 섬기며 충성을 다하는 직분이 바로 집사 직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맡은 자들은 주어진 여건 가운데 어떻게 충성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한 주인이 먼 곳에 가면서 세 명의 종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일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또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열심히 일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일하지 않고 그 한 달란트를 땅에 파묻어 놓고 놀았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은 그 하인들이 한 일을 보고받고 평가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긴 사람이나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 더 남긴 사람 모두 똑 같이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게을러서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그저 놀고먹었던 종은 주인으로부터 책망받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분은 우리 주님이시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우리 모두 앞으로의 삶이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함으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받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온유
부드러운 성품, 즉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온유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이 땅에서 복을 받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우리는 온유한 성품을 통해 물질이 우리를 따라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도 잘 되고 강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영광 받으시고 복을 더해 주십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 은혜 안에서 잘 되어야 하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자신의 온유한 성품’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여 소리지르고 싶을 때 자제하고, 성질부리고 싶을 때 자제해야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감정을 잘 조절해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사랑으로 권면하고 품고 대화하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뤄야 합니다. 어미 소와 새끼 소가 함께 밭을 가는데, 멍에는 어미 소가 메고 새끼 소는 어미 소 아래서 그냥 따라만 가면 됩니다. 밭은 어미 소가 다 갈기 때문에 새끼 소는 어미 소 밑에서 밭 가는 것을 보고 배우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자라서 자기가 어미 소가 되면 자기의 멍에를 메고 새끼 소를 자기 아래 놓고 밭을 갈면 됩니다. 우리도 멍에를 메고 밭을 가는 어미 소와 새끼 소와 같이 함께 세상을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멍에를 메셨으니 우리는 예수님께 본 받아야 할 모습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따뜻한 성품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져다 주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온유와 겸손으로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 기뻐하시고 주의 복이 임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닮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따라 하길 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삶 가운데 예수님 닮은 온유와 겸손함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서 온유와 겸손함으로 교회를 섬기고 구역을 섬기고 가정을 사랑으로 돌본다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드러움 입니다. 부드럽다는 것은 현실과 타협하거나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껴안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 만큼 현명하다는 것입니다. 


강한 사람이란 많은 사람들의 힘을 이끌어내는 사람임을 생각할 때 부드러움은 곧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밀림을 지배하는 힘은 강한 야성에서 나오지만 문명을 이끄는 힘은 부드럽게 포용할 수 있는 모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땅으로 가고 있는데, 그들이 감사했다면 열흘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불평함으로 4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나에 대한 불만을 한 두 사람이 이야기만 해도 속이 상하고 밥을 먹다가 그 생각을 하면 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250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가 죽을 곳이 없어서 여기로 데리고 왔느냐?” 또는 “배고프다. 고기가 먹고 싶다.”라며 불평과 불만을 쏟아 놨을 때 모세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40년을 불평하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 주고 온유함으로 참으며 갔습니다. 요즘에는 세상이 너무 사나워졌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귀다가 헤어지면 헤어졌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뉴스를 대할 때 가슴이 섬뜩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온유해져야 합니다. 온유해지지 않았다면 아직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하여 온유하신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그렇게 핍박을 받고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해도 늘 온유함으로 참고 견디고 이기셨습니다.


고함치고 소리를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면 자기의 뜻이 관철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서 그것이 관철되고 떼거지로 모여서 소리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감정을 잘 조절하여 소리치지 아니하고 온유함으로 감정을 다스려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삶 가운데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삭은 참으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가 농사를 지어 백배를 얻으니 블레셋 사람들이 그 집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공격해 왔습니다. 애써 땅을 파 우물을 만들었더니 우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당시 물이 귀했습니다. 물을 얻기 위해 땅을 파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파서 얻은 우물을 빼앗아 갔지만,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 우물을 팠고 또 물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들은 달려와서 그 우물을 또 빼앗습니다. 이삭은 여전히 싸우지 않고 그 우물을 양보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달랐습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무례하게 구나요? 그리고 주인님은 왜 그렇게 참으십니까? 이삭은 말합니다. “아니다 그들이 원하면 주고 우리가 또 가서 파면된다.” 라고 말합니다. 이삭은 또 다른 곳으로 가서 땅을 팠더니 이번에도 물이 나왔습니다. 그제서야 블레셋 사람들은 “아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 가는 곳마다 물줄기가 따라다니는구나 이젠 그만 괴롭히자”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베풀며 행복한 인생, 멋지고 아름다운 삶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절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 마지막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영어로 Self control입니다. 즉 자신을 잘 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특별히 우리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잘 절제해야 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스피드 내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면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운동 선수들은 절제를 잘합니다. 먹고 싶어도 체중 관리를 위해 절제하고, 쉬고 싶을 때에도 체력 관리를 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잠자는 것, 먹는 것 등 모든 것을 다 절제합니다. 또 늘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절제는 자기를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특히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마음을 수양하며 세상을 살아갈 때 본인의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습니다. 나라와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밑거름은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절제의 은혜가 있어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큰일 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세는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가장 뛰어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평합니다.


민수기 20장 5절에서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라고 불평했을 때, 모세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모세는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이렇게 말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온유한 모세였지만 그들을 많은 우여 곡절 끝에 가나안 입구까지 인도하였건만, 물이 없다고 목마르다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러한 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고 말씀함으로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고 인간의 모습을 나타낸 모세는 가나안 앞까지 가서 가나안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주님의 일을 할 때 절제하지 못하여 오버 하려다가 실수를 하여 문제를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며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 가운데 하나가 절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절제해야 합니다. 감정도 절제하고 삶의 모습도 절제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의지하는 삶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육체의 욕심을 절제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철저하게 절제하는 훈련을 해서 하나님 앞에서 인정 받고 이웃에게 존귀함 받는 성령으로 충만한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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